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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사과’ 농법으 로 세계적 스타 농부 된 기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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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일본 아오모리현에서 농약·비료 없이 사과를 재배하고 있는 기무라 아키노리가 자신의 사과밭에서 가지치기 작업을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그의 이야기는 논픽션 작가 이시카와 다쿠지의 『기적의 사과』라는 책을 통해 국내에도 번역 소개됐다. [김영사 제공]

일본의 기무라 아키노리(60)는 세계에서 유일한 사과를 생산하는 농민이다. ‘농약 한 방울, 비료 한 주먹’ 없이 키운 사과다. 태풍이 불어도 나무에 붙어 있고, 사과나무에는 병충해가 덤비지 못한다. 그래서 그가 생산한 사과는 ‘기적의 사과’라 불린다. 지난달 21일 경기도가 주최한 ‘G푸드 쇼 2009’ 행사장에서 만난 그는 소박한 농민의 모습이었다.

“31년 전인 1978년께였어요. 사과밭에 농약을 뿌리면 아내가 며칠씩 앓았어요. 안쓰러워 농약을 안 치고도 자라는 사과를 재배하자는 결심을 했습니다.”

무공해 사과 재배 동기를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기무라는 일본의 유명 사과 산지인 아오모리현의 이와키산 자락 6500㎡의 사과밭에서 농사를 지었다. 가족 대대로 가꿔온 과수원이었다. “무공해 사과를 재배하겠다”는 그의 결심을 들은 동네 사람들은 ‘확률 제로 게임’이라 했다. ‘가마토케시(파산자)’ ‘아오모리의 돈키호테’라는 별명도 붙었다. 현실은 더 가혹했다. 세월이 10년이나 흘렀지만 사과는 한 개도 열리지 않았다. 농약과 비료에 길든 사과나무의 야성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수입이 없어 밑바닥 생활을 했어요. 삶의 막다른 골목에 몰린 심정이었죠.”

그는 호구지책으로 나이트클럽 호객꾼으로 나서기도 했단다. 폭력배에게 맞아 치아가 두세 개만 남고 모두 빠졌다. 목숨을 끊을 생각으로 산에 올랐다.

“산에서 우연히 탐스러운 열매를 맺은 도토리나무를 봤어요. 순간 머릿속에 섬광이 스치는 것 같았다. 비밀은 흙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 길로 사과재배법을 또 한 번 바꿨다. 과수원의 잡초도 뽑지 않았다. 아예 관리를 하지 않는 원시 그대로 과수원을 팽개친 것이다. 그래서 그의 사과밭은 ‘방치원’이라 불렸다. 기무라는 “흙이 본래의 생명력을 회복할 때까지 기다린 것”이라고 했다. 그는 “비료나 농약을 수십 년간 뿌려왔던 땅은 딱딱해져 잡초조차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며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면 흙도 기름져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무농약 자연농법을 시작한 지 10년이 지난 87년 그의 눈가가 촉촉이 젖었다. 사과 두 개를 발견한 것이다. 크기는 탁구공만 했다. 기무라는 “희망이 보였지만 실망도 컸다”고 했다. 4년이 흘렀지만 사과가 열리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91년에 과수원이 발갛게 물들었다. 나무마다 탐스러운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린 것이다. 기무라는 “농약을 친 나무에 열린 사과보다는 개수가 적었지만 꽤 많은 양이었다”고 회고했다.

91년에 그의 농법은 큰 주목을 받게 된다. 아오모리현에 상륙한 대형 태풍 때문이었다. 주변 과수원의 사과 90%가 땅에 떨어졌다. 하지만 기무라의 사과는 80% 이상이 그대로 달려 있었다. 아무도 모르는 새에 사과나무가 땅속 20m까지 뿌리를 내렸고, 가지가 굵고 단단했기 때문이다. 그해 기무라의 사과는 수험생 가족에게 ‘합격 사과’라는 이름으로 팔렸다. 일반 사과의 두 배 가까운 가격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2006년 일본 NHK에 소개돼 일본 국민에게 큰 감동을 줬다. 한국에선 『기적의 사과』라는 책으로 그의 일생이 소개됐다. 기무라에게 “‘기적의 사과’라고 해도 수량이 너무 적으면 그림의 떡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자연농법에 의해 흙이 다시 살아나 사과나무에 사과가 일단 열리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3~4년 후에는 수확량도 함께 늘어난다”며 “지금은 일반 사과나무의 수확량에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엔 탁구공만 하던 사과가 매년 조금씩 커지고 있다”며 “맛도 해마다 조금씩 달랐다”고 했다. 어떤 해는 너무 달아 칼로 자르면 사과가 칼에 달라붙을 정도였고 어떤 해는 달지 않아 “소금을 쳐서 먹었다”는 소비자의 편지를 받은 적도 있다. 기무라의 사과와 일반 사과의 가장 큰 차이는 농약 잔류량과 부패 속도다.

“일반 사과는 껍질에만 농약이 일부 남아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론 과육에도 잔류해요. 농약 등 유해 성분은 뿌리를 통해 흡수되기 때문이죠. 내 사과는 1년이 지나도 썩지 않아요. 수분이 빠져 크기는 줄어들죠.”

기무라의 사과밭(2만6000㎡, 약 8000평)에선 연간 40t의 사과가 생산된다. 22㎏들이 한 상자에 4200엔(약 5만5000원)에 팔리지만 인터넷·전화 등을 통해 1년 전에 예약이 마감된다. 기무라는 “10년간 일본의 암 사망률이 3배나 늘어나 연간 30만 명이 암으로 숨지며 일본인의 60% 이상이 알레르기 등 과민증을 앓고 있다”며 “우리가 매일 섭취하는 먹을거리 탓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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