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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댁' 된 우즈벡 미녀 앵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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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즈베키스탄 공영방송인 우즈텔레라디오의 인기 미녀 앵커였던 닐루파(29), 그 녀는 지금 강원도 원주에서 평범한 한국인의 아내로 살고 있다. 17세 때부터 7년간 인기를 누려왔던 앵커 생활을 접고, 지난 2005년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낯선 나라 한국에 왔다.
원주에서 만난 그 녀의 첫 인상은 편안함이었다. 한국에 온 이유를 묻자, 남편 심재국(40)씨를 가리킨다.

우즈벡 미녀 앵커, 한국 며느리 되다

닐루(닐루파라는 발음이 어렵다고 한국에선 그냥 닐루로 부른다)는 2004년 방송국 동료와 지중해 몰타로 어학연수를 갔다. 1년간의 연수가 끝나가던 어느 날, 카페를 찾은 닐루에게 낯선 외국 남성이 다가왔다. 그 남자는 닐루의 얼굴을 그린 그림 한 장을 내밀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 제 얼굴 그림을 선물해서 놀랐어요. 첫 인상이요? 잘 생기지도 않았고 평범했어요. 제 스타일은 아니었죠. 그런데 느낌이 좋더라고요. 여성을 배려하는 매너도 좋았어요.”

두세 번을 더 만난 뒤 닐루는 우즈벡으로, 여행중이던 심씨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은 이메일로 사랑을 키워갔고, 8개월 후 심씨는 우즈벡행 비행기에 올랐다. 일주일간 우즈벡에 머물던 심씨는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말로 청혼했다.
딸을 외국인과 결혼시킬 생각을 하지 못했던 닐루 어머니의 반대는 컸다. 어머니는 곧장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닐루의 아버지는 아프간 대통령의 주치의로 아프간에 머물고 있었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우리 딸이 외국인, 그것도 한국인과 결혼하겠다고 한다'고 했더니 아버지께서 농담이냐고 미쳤냐며 절대 안 된다고 하셨대요.”

치과의사였던 부모님 덕분에 우즈벡에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고, 더구나 선망의 직업인 앵커이다 보니 닐루의 인기는 많았다. 우즈벡의 ‘우먼즈 데이’라는 기념일이면 닐루의 아파트는 뭇 남성이 보낸 꽃으로 가득 채워졌다. 그런 귀한 딸을 11살이나 많은 외국인에게 시집을 보내다니, 절대 안될 일이었다. 부모의 권한이 절대적인 우즈벡에서는 부모가 허락하지 않은 결혼은 할 수 없다.

심씨는 닐루 부모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자신의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 우즈벡을 찾았다. 그런 심씨의 정성에 닐루 부모님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었다. 강하게 반대하던 아버지도 심씨에게 "나와 많이 닮았다(사진을 보니 심씨는 실제로 닐루 아버지 젊었을 때 모습과 닮았다)"며 결혼을 허락했다.

성대한 결혼식, ‘우즈벡’ 축제의 날

우즈벡에서 열린 결혼식에는 우즈벡 인기가수와 사회 고위층 등 내로라 하는 유명인사들이 참석했다. 방송국은 현장 중계를 했고, 잡지 표지에 실릴 정도로 현지언론의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 남편은 결혼식 당일에서야 닐루의 인기를 실감했다고 한다.

“닐루가 갑자기 결혼한다고, 그것도 상대가 외국인이라고 하니 방송국 동료가 놀랐나봐요. 그래서 저를 미워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다던데 결혼식날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더라고요.”

부모님의 반대와 주변의 시샘을 극복하고 닐루와 결혼에 성공한 심씨, 그는 닐루를 처음 만났을 때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걸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카페에 앉아있는데 내가 항상 상상했던 사람이 들어오는 거예요. 대화를 해보니 학식까지 있더라고요. 솔직히 예쁜 사람은 많아도 지성까지 겸비하기는 쉽지 않은데 닐루는 모든 것을 가졌죠. 그래서 반했어요.”

외국인 며느리 위해 신혼집 꾸민 시어머니

우즈벡 테르메스에서는 남성이 결혼 준비를 하는 전통이 있다. 심씨는 결혼 준비는 물론 한국의 신혼집도 직접 꾸몄다.

“필요한 살림살이를 물었더니 식기세척기, 커다란 TV, 침대, 소파, 카펫 등 이것저것 적어 주더라고요. 제가 다 준비할거라 생각 못했을텐데 전 닐루가 원하는 건 다 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다 준비했죠.”

한국 신혼집에 처음 간 날, 닐루는 깜짝 놀랐다.

“아파트를 보여주는데 모든 게 갖춰져 있더라고요. 큰 침대에 예쁜 침구는 물론 내 사진이 들어있는 액자에 화장품까지요.”

신혼집 인테리어는 우즈벡까지 따라나섰던 심씨 어머니의 작품이다. 심씨는 결혼 성공의 일등공신으로 어머니를 꼽는다. 닐루가 시댁에 올 때면 어머니는 젓가락질이 서툰 며느리를 위해 포크를 준비한다. 지금까지도 닐루를 위해 따로 양식을 준비할 정도로 며느리 사랑이 남다르다.

낯선 한국…하수구에 버린 시어머니 김치

남편과 시댁 식구들의 지극한 사랑에 "결혼생활이 정말 행복하다"고 말하는 닐루. 하지만 아직까지도 적응하지 못하는 게 있다. 바로 음식문화다.

“한 번은 시어머님이 김치를 많이 주셨어요. 그런데 일주일 후에 열어보니까 냄새가 나더라고요. 상한 줄 알고 버렸어요. 특히 임신했을 때는 김치 냄새가 싫었어요. 그래서 남편이 발코니에 나가 김치를 먹을 정도였죠. 그런데 친정 어머니가 그 모습을 보고 집안의 가장한테 그러면 안된다고 혼내셨어요.”

닐루가 한국 문화에 적응하는게 힘들었다면 남편 심씨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 버거웠다.
“주위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더라고요. 동물원 원숭이가 된 느낌? 마치 바지를 벗고 다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사업을 정리하고 우즈벡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내 꿈을 사랑해주는 닐루가 고맙죠”

경기도에서 입시미술학원을 하던 심씨는 학원을 정리하고 아내와 함께 우즈벡으로 갔다. 부동산에 투자를 했는데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집값이 폭락하면서 투자금이 절반으로 폭락했다. 좌절을 겪고 다시 한국에 온 부부는 지난 여름 원주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심씨는 그림에 집중하고, 닐루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주머니 사정은 어려워졌지만 꿈이 있어 행복하다.

“지금은 당연히 어렵죠. 하지만 행복해요. 저는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구했고 동료와 친구도 생겼어요. 남편은 분명 화가로 성공할 거예요. 경제 사정은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잖아요. 지금은 잠시 어렵지만 다시 좋아질 것으로 믿어요. 그리고 아직 젊잖아요.”

심씨도 자신의 꿈을 사랑해주는 아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는다.

“다른 여자라면 '경제적으로 어려운데 팔리지도 않는 그림 그리냐'고 할 거예요. 그런데 닐루는 내가 화가로서 성공하길 간절히 원해요. 내 꿈을 사랑해 주는 게 고맙죠.”

아내의 내조 덕분일까. 심씨는 지난 1일부터 10일까지 벨기에에서 열린 전시회에 자신의 작품을 출품했다. 벨기에가 주최한 이번 전시회는 세계 각지의 화가들이 참가했다. 꿈을 향해 노력하는 남편과 그 남편을 응원하는 아내, 그리고 러시아어와 우즈벡어, 영어, 한국어 등 4개 언어를 구사하는 귀여운 딸(3)까지. 부러울 게 없는 부부는 지금 또 다른 일을 계획하고 있다.

“아내가 지금 책을 쓰고 있어요. 한국 생활에 적응하며 힘들었던 점과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우즈벡과 러시아 이야기들을 영어 동화책으로 만들 예정이에요. 아내가 글을 쓰고 제가 그림을 그리는거죠.”

닐루의 우즈벡 앵커 시절 모습과 성대했던 결혼식, 부부의 인터뷰는 아래 동영상 또는 TV중앙일보에서 볼 수 있다.

뉴스방송팀 송정 작가·이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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