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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첫 노벨상 자랑스러워 … 류샤오보 가둬선 안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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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호 03면

홍콩 경찰이 지난해 12월 25일 류샤오보에 대해 11년 형이 선고된 뒤 중국 정부의 파견기관인 홍콩·마카오 연락판공실 건물을 경비하고 있다. [홍콩AP=연합뉴스]

“류샤오보가 노벨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친구가 문자로 보내줘서 알았어요. 그런데 기분이 묘하네요.”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 노벨평화상 수상, 중국인들 시각은

9일 오전 홍콩 뤄후(羅湖) 세관 앞. 중국 후난(湖南)성'에서 밤 열차로 광둥(廣東)성 선전(深<5733>)에 도착한 대학생 자오(여·22)는 중국 정부의 보도통제로 중국 언론이 보도하지 않은 류샤오보(劉曉波)의 노벨평화상 수상 뉴스를 잘 알고 있었다. 휴대전화·인터넷과 입소문을 통해 밤새 중국 인민들에게 퍼질 대로 퍼졌다는 것이다. 자오는 “중국인이 받은 첫 노벨상이어서 자랑스럽지만 적잖은 사람들이 서방에서 노벨상을 빌미로 중국 내정에 간섭한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홍콩의 민주단체 회원들이 8일 밤 홍콩·마카오 연락판공실 앞에 ‘류샤오보와 모든 양심수를 석방하라’는 표어를 붙이고 있다. [홍콩AP=연합뉴스]

이날 선전 난산(南山)구 대형 쇼핑몰에서 만난 20~40대 중국인들은 대부분 이중(二重)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에서 출장차 왔다는 류웨이(柳衛·38)는 “사상과 가치관을 표현한 것 갖고 사람을 벌하고 옥에 가두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류는 “류샤오보 문제는 중국 내정 문제다. 다른 나라가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화난 중국, 불편한 심기 드러내
류샤오보의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미·유럽과 중국 간의 ‘인권 공방전’이 가열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는 언론들은 이날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를 겨냥해 맹렬한 비난을 쏟아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의 영문판 글로벌타임스는 9일 사설을 통해 “노벨위원회가 스스로 명예를 떨어뜨렸다”며 “노벨평화상은 반중(反中)이라는 목표를 위한 정치적 도구로 전락했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1989년 티베트 독립운동을 펼친 달라이 라마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사실도 거론했다. 그러면서 “노벨위원회는 지난 30여 년간 가장 주목할 만한 경제·사회적 진보를 이룬 국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오만과 편견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화통신과 인민일보, 중국중앙(CC)TV와 홍콩의 친(親)중국계 신문·방송들은 아예 이를 뉴스로 다루지 않았다.

미·유럽의 인권 개선 압박도 가열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류샤오보의 즉각 석방을 촉구했다. 지난해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오바마는 성명을 통해 “노벨위원회는 평화적이며, 비폭력적인 방법을 통해 보편적 가치의 진전을 설득력 있고 용감하게 대변해온 인물을 선정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이번 노벨상은 중국의 정치개혁이 경제발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물론, 기본적인 인권이 존중돼야 한다는 점을 재삼 일깨워주고 있다”고 밝혔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중국이 국제인권법의 의무를 지키고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라”고 촉구했다.

유럽연합(EU)과 캐나다·스위스 정상들은 류샤오보의 석방을 촉구하는 성명을 잇따라 발표했다. 캐서린 애슈턴 EU 외교안보 대표는 특히 ‘수감 중인 류샤오보가 직접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해 중국 정부를 자극했다.

1983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은 “중국이 받기를 원치 않았던 노벨상을 받았다”며 “우리는 중국을 두려워하지 말고 중국이 문명의 길로 들어서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중국 정부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발표한 8일 밤 베이징 주재 노르웨이 대사를 소환해 불편한 심기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류샤오보는 죄인’이라는 입장을 강조하며 국제사회에서 중국 인권문제가 쟁점화되는 걸 막으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노르웨이 외교부 라그닐트 이머슬룬트 대변인은 “중국은 주중 노르웨이 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노벨평화상 수상자 선정에 관한 중국의 반대 입장과 항의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머슬룬트 대변인은 “오슬로 주재 중국대사도 ‘중국의 항의 입장을 전하기 위해’ 노르웨이 외교부 장관과의 면담을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위안화 절상 문제를 놓고 날카롭게 맞서고 있는 중국과 미·유럽 사이의 갈등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국은 천안문 사태 이후 90년대 후반까지 중국의 인권 문제를 이슈로 삼으며 정치적·경제적 압력을 가했다. 하지만 2000년 이후엔 테러와의 전쟁, 북한·이란 핵문제, 중국의 외환보유액 증대 등으로 인권 문제는 뒷전으로 밀렸다. 류샤오보의 노벨상 수상이 이런 흐름에 미묘한 파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주홍콩 한국총영사관 전가림 선임연구원(중국 정치학·호서대 교수)은 “류샤오보를 통해 중국 인권 문제가 크게 부각되는 바람에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대중 외교에서 국내외 여론의 압박을 의식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민주화 운동 불씨 살아날까
중국의 민주화를 촉구해온 홍콩·대만과 해외의 중국인들의 반응은 환영 일색이다. 지리멸렬했던 중국 내 민주화 세력의 부활 가능성도 점쳐진다.

1989년 6·4 천안문 사태의 주역인 왕단(王丹·41) 대만 정치대 교수는 “류샤오보의 노벨상 수상은 중국 민주화 운동의 이정표”라고 말했다. 그는 “류 변호사의 수감 사실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 받으면서 대국으로 굴기하려는 중국의 국가 이미지에 타격을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천안문 사태의 막후에서 활동한 천즈밍(陳志明)은 “탄압받는 중국의 민주 인사들에게 큰 격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과의 화해협력을 모색해온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은 “괄목할 경제발전을 이룬 중국이 인권 차원에서도 진전을 이룬다면 평화적 부상(和平堀起)이란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고 대만인과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우둔이(吳敦義) 대만 행정원장(총리 격)도 “류샤오보가 주장하는 자유와 인권은 인류 보편적 가치”라며 “경제발전과 개혁·개방에 따라 더 많은 대륙인들이 이를 받아들이기 시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콩민주당·홍콩기자협회 등은 8일 오후 “류샤오보를 비롯한 중국 반체제 인사들을 즉각 석방하라”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주목받는 부분은 중국 내부 민주화 세력의 움직임이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장기적으로 류의 노벨상 수상이 중국인들에게 공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광둥성 광저우의 한 언론인은 “옥중에서 받은 류샤오보의 노벨상은 중국 내부의 억눌려온 민주적 정치개혁 욕구를 분출시키는 촉매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거꾸로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 다양한 색깔로 분화된 계파들이 다시 보수 색채로 일원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위안화 절상 문제로 서방과 대치하고 있는 ‘국난적’ 상황을 빌미로 대외 강경 노선을 채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홍콩의 외교소식통은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설득해온 온건파들이 매국노로 내몰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 정부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전후해 인권 상황이 크게 개선됐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국제 앰네스티는 여전히 중국을 최악의 인권국가로 꼽는다. 중국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국가 안전을 위협한 혐의’로 체포된 사람은 2005년 296명에서 2008년 1700명으로 늘었다. 앰네스티에 따르면 중국의 사형 집행 건수는 전 세계의 절반에 달하는 수준이다. 지난 3월 앰네스티는 “지난해 중국에서 1000건 이상의 사형이 집행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중국 정부는 민주 인사들을 ‘반체제’ 혐의로 옭아매거나 소수 민족 시위에 대한 강제 진압, 불법 고문과 노동 착취 등 다양한 형태의 인권 침해를 자행하고 있다고 앰네스티는 주장한다. 류샤오보처럼 일당독재 폐지와 민주개혁을 요구하는 인사들을 국가전복선동죄와 같은 중죄로 몰아 탄압한다는 것이다. 2009년 11월엔 쓰촨대지진 때 희생된 자녀의 부모들을 돕던 반체제 운동가 황치(黃琦)가 징역 3년형을, 올 2월엔 인권 운동가 탄쭤런(譚作人)이 체제전복 교사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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