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특수고용·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는 이미 우리 사회에 상당한 규모를 쌓았지만 여전히 특수하다는 고정관념에 시달린다. <매일노동뉴스>는 이들의 일을 조명하고 노동권과 기본권 현황을 비정기적으로 연속보도한다. <편집자>

족저근막염이라는 질환이 있다. 표현 그대로 발바닥 아래 근막에 염증이 생긴 병이다. 족저근막은 발뒷꿈치뼈에서 발바닥 앞쪽으로 발가락까지 닿는데, 서울대병원 의학정보에 따르면 발의 아치를 유지하고, 충격을 흡수하고, 체중이 실린 상태에서 발을 들어 올릴 때 도움을 준다. 잘 다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인 손흥민 선수가 2015년 족저근막염으로 6주간 휴식을 취하면서 인식이 확산됐다.

족저근막염이 발병하면 아침에 일어나 처음 발을 디딜 때 심한 통증을 겪는다. 조금 더 움직이면 통증이 잦아든다. 책상에 앉는 등 움직임이 없다가 다시 움직이면 또 통증을 느낀다. 통증은 수시로 찾아온다.

발생 원인은 발을 무리하게 사용해서다. 평소 운동량이 적던 사람이 많이 운동하거나, 마라톤 또는 조깅을 한 경우, 바닥이 딱딱한 장소에서 운동을 했을 때, 장시간 서 있을 때, 딱딱한 구두를 신은 경우 등이 그렇다.

코로나19로 생업 잃고 대리운전
예상 못한 질환 “대못 찔린 듯 아파”

주로 운동화를 신고, 주로 운전석에 앉아 있는 모습이 떠오르는 대리운전기사에게는 생소할 줄 알았다. 그러나 웬걸. 대리운전기사의 ‘직업병’이란다. 지난 22일 <매일노동뉴스>가 만난 한철희(53·사진)씨는 2년째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

한씨는 코로나 전 의류 관련 사업을 해 중국에 매장도 내는 등 제법 잘 나갔다. 그러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중국 수출길이 막히면서 졸지에 생업을 잃었다. 그가 매장까지 내면서 사업을 했던 곳이 중국 우한이라 충격은 더 컸다. 그래서 생계를 위해 남의 차 운전대를 잡았는데 발병이 나버렸다고 한다.

“어릴 때 대못에 찔린 것처럼 아프고 발을 딛질 못해요. 지금은 괜찮은데 자고 일어나면 걷지 못할 정도예요. 그러다 살살 걸어 보면 이제 통증이 가시고요. 가족들이 보면 (대리운전을) 그만두라고도 합니다.”

처음엔 안 하던 일을 해서 그런가보다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통증이 지속되고 아픔이 가시지 않아 동료 대리운전기사들에게 말을 전하다보니 남들도 다 유사한 증상을 앓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주변에 친한 대리운전기사들에게 말하니 모두 족저근막염 같다고 하는 거예요. 알고 보니 지팡이를 짚고 다니던 아저씨도 족저근막염 때문에 그랬더라고요.”

이재 기자
이재 기자

10분 내 도착 바라는 고객들
늦으면 배차 취소 “다른 기사 찾았다”

발생 원인 중에 부합하는 것을 찾아 보니 많이 걷기 때문이다. 대리운전기사는 차를 운전하기 위해 15~20분 되는 거리를 걸어 다닌다. 아니 뛰어 다닌다. 한씨는 “대리기사 앱에 15분 되는 거리라고 안내를 해도 고객들은 10분 내외로 도착하길 바란다”며 “일찍 도착하지 않으면 다른 대리운전기사가 먼저 도착했다며 배차를 취소하는 일도 있어 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어쩌다 교통편이 없는 지역의 배차를 잡게 되면 걸어 나올 수밖에 없다.

마침 전날에도 그랬다고 한다. 21일 저녁 9시께 광화문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강남에 볼 일이 있어 삼풍아파트 콜을 잡았다. 3만5천원짜리 콜을 타고 갔다가 법원거리까지 30여분을 걸었다. 1.8킬로미터 정도 됐다. 법원 주차장에서 잡은 5만2천원짜리 콜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미동까지 가는 콜이었는데, 도착했더니 주택단지라 밖으로 나가는 콜이 없어 미금역으로 옮겼다. 미금역 인근 아파트에서 보낸 콜은 송파구 방이동 먹자골목행이었다. 고객이 있는 곳은 미금역에서 걸어 18분 거리였는데 12분 만에 주파해 콜을 잡았다. 2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단숨에 걸었다. 대리운전을 끝낸 뒤 “이제 집에 가야지” 했지만 수원 영덕동 콜이 보여 홀린 듯 잡았다고 한다. 4만8천원짜리였다. 마지막 일을 끝냈는데 나올 길이 없었다. 마침 폭설이 내린 날이라 껌껌하고 추운 눈길을 50분을 내리 걸었다. 발이 아파 걸을 수 없어 결국 택시를 불렀다. 이날 벌이는 17만원 정도인데, 여기서 수수료 20%를 제하고, 왜 납부하는지 알 수 없는 기사관리비 등을 내야 온전히 손에 쥘 수 있다. 물론 이동을 위한 택시비 따위는 당연히 한씨의 지갑에서 고스란히 나간다. 아침마다 통증을 느끼지만 치료는 받지 못하고 있다. 바빠서다. 한씨는 손흥민 선수가 아니라서 6주간의 휴식 따위는 기대할 수 없다.

산재보험 들어도 쉴 수 없는 환경
“산재승인돼도 일당보다 낮은 휴업급여”

대리운전기사들의 상황은 대부분 마찬가지다. 지난해 7월 산재보험 전속성 폐지로 산재승인을 받을 가능성이 더 커졌지만 산재승인은 대부분 업무상 사고에 머문다. 대리운전노조측은 “업무상 사고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고 있지만 질병 사례는 노조가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는 없었다”며 “족저근막염은 업무상 질병 개연성이 크지만 아직 구체적인 접근은 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실 업무상 사고도 대부분 “현장 은폐된다”는 주장이다. 대리운전기사 업무의 특성상 업무상 사고의 대부분은 교통사고다. 사고를 당해도 산재급여보다 교통사고 보험료가 더 큰 경우가 많다. 기사가 사고를 내면 문제가 더 크다. 기본적으로 보험을 적용하지만, 고객이 기존의 차량 고장이나 훼손을 ‘덤터기’를 씌우는 일도 많다고 한다. 대리운전기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객의 ‘은밀한’ 요청에 응하는 실정이다.

게다가 이들이 ‘특수고용직’인 한 병원 치료는 엄두를 내기 어렵다. 한씨는 “사고든 질병이든 다쳐서 쉬면 급여가 일당보다 낮은데 어떻게 쉬느냐”며 “지난해 5월 콜을 잡고 뛰려다 종아리 근육이 파열된 적이 있었는데 진통제만 먹고 버텼다”고 말했다. 근로계약이 아닌 위탁계약을 체결하는 이들의 특성상 유급휴가 같은 제도가 없고 병가도 쓸 수 없어 아파도 쉬지 못하고, 휴양급여를 받아도 효력이 크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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