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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살의 손흥민은 여전히 최고의 골잡이일까? [올어바웃스포츠]

류영욱 기자
입력 : 
2023-11-23 13:00:00
수정 : 
2023-12-05 15: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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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중국 선전 유니버시아드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한국과 중국의 경기에서 선취골을 넣은 손흥민의 세리머니[사진 출처=연합뉴스]

“우리는 한국 역대 최고의 팀으로 거듭나고 싶습니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2차전에서 중국을 상대로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3:0 완승을 이끈 남자축구 국가대표 손흥민(토트넘홋스퍼) 선수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습니다. 4강 신화를 이끈 2002년 월드컵 대표팀을 뛰어넘고 싶다는 포부를 숨기지 않았죠.

손흥민의 야망은 허투루 들리지 않습니다. 이강인(파리생제르망), 김민재(바이에른뮌헨)를 비롯해 두텁고 탄탄한 선수들이 경기장 곳곳에 포진해있고, 그 중심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출신인 본인이 건재하기 때문이죠. 팬들은 3년뒤 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8강 진출 혹은 그 이상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2030년 월드컵은 어떨까요. 만 38세가 되는 손흥민이 여전히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을까요. 박지성(33세), 이천수(34세) 등 시대의 아이콘들이 은퇴를 결심한 나이를 떠올리면 쉽지 않은 도전으로 보입니다.

희망은 있습니다. 스포츠 스타들의 시간은 점점 느리게 흐르고 있습니다. 역대 최고의 미식축구 선수 톰 브래디는 46세가 된 올해에 21년의 NFL 생활을 마쳤습니다.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는 40세가 된 2021년까지 손에서 라켓을 놓지 않았고, 손흥민보다 5살 많은 리오넬 메시는 지난해 5번째로 출전한 월드컵에서 우승하며 역대 최고 선수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프로스포츠에서 ‘젊음’이란 무기의 강력함은 더이상 예전같지 않습니다. 코트 위에 노병들이 설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 노익장의 원천은 무엇인지 알아봤습니다.

르브론·조코비치 “내 나이가 어때서?”...스포츠판에서 들려오는 ‘노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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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21번째 시즌을 맞이한 르브론 제임스(LA레이커스)의 호쾌한 드라이빙 덩크[출처=NBA ‘X’]

21세기 미국프로농구(NBA)의 아이콘 르브론 제임스(LA 레이커스)는 39세인 올해 자신의 21번째 시즌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팀내 최고이자 어쩌면 리그에서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선수입니다. 20년 넘는 프로생활동안 다져진 기술과 경험에 여전히 리그 최상위권인 운동능력을 모두 가진 그에게 나이는 그야말로 숫자일 뿐입니다. 지금과 같은 퍼포먼스가 이어진다면 수 년 내 그의 첫째 아들이 NBA에 입성해 역대 최초로 부자(父子)가 한 코트를 밟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될 듯 합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노병’은 제임스 혼자만이 아닙니다. 35세인 케빈 듀란트(피닉스 선즈)와 스테판 커리(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는 각각 리그 평균득점 5위 이내에 자리잡은채 NBA를 폭격중입니다. NBA의 2021~2022시즌 은퇴 선수들의 평균 연령이 36.5세였던 것은 감안하면 이들이 최고선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전성기가 지나고서도 선수생활을 이어가는 모습은 예전에도 심심찮게 발견됐습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는 선수들은 확실히 과거보다 많아졌습니다. 남자 테니스 4대 메이저 대회를 14차례나 제패했던 원조 테니스 황제 피트 샘프러스는 32세에 은퇴했습니다. 반면 사상 최고의 테니스 선수라는 평가를 굳힌 노박 조코비치는 32세 이후 10차례나 메이저대회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조코비치, 페더러와 테니스 ‘빅3’를 구성한 ‘클레이코트의 황제’ 라파엘 나달 역시 30대 들어서 7차례의 메이저 타이틀을 따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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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회색)과 2020 도쿄올림픽(청록색) 출전선수단 나이분포 그래프 [출처=Peak Performance Age in Sport. 2021. Australian Research Council.]

혹자는 시간을 거스르는 능력이 스포츠 역사에서 손꼽히는 재능들에게만 주어졌을 것이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통계는 다릅니다. 호주정부 산하의 호주리서치평의회(ARC)에 따르면, 하계올림픽 출전 선수들은 점점 늙어가고 있습니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한 참가자들의 평균 나이는 25세, 중위값(나이순대로 세웠을때 가운데 값)은 23세였습니다. 그러나 2020 도쿄올림픽에선 각각 27세, 25세로 두 살씩 많아졌습니다. 메달을 획득한 선수들 역시 전체 평균값과 같은 궤도를 그렸습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세계 테니스 랭킹 100위 이내 선수들의 평균 연령을 조사해봤습니다. 1990년 남자 테니스 상위 100명의 평균나이는 24.6세였지만 2017년엔 28.6세로 상승했습니다. 여자 선수는 22.8세에서 25.9세로 뛰었죠. 30세 이상 남자선수가 톱100을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6%에서 2017년 40%까지 치솟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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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2017년 UEFA 챔피언스리그 출전선수 평균나이 추이 [출처=Are Soccer Players Older Now Than Before? Aging Trends and Market Value in the Last Three Decades of the UEFA Champions League.2019.Anton Kalén]

세계 최고의 축구가 펼쳐지는 UEFA 챔피언스리그 출전 선수들 사이에서도 이같은 경향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992년부터 2017년까지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한 선수 1만6062명의 나이를 분석한 결과, 평균 연령은 24.9세에서 26.5세로 뛰었습니다. 골키퍼부터 수비수와 미드필더, 공격수할 것 없이 모두 비슷한 ‘노령화’를 겪고 있습니다. 스포츠 세계에서 노익장 열풍이 선택받은 이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지요.

커리는 왜 영하 150도 드럼통에 들어갔을까? 스포츠 과학 발전이 불러온 ‘회춘(回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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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온 회복요법인 ‘크라이오테라피’ 기계에 들어가는 스테판 커리(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출처=유튜브채널 Sam Ailpour]

인간은 아직 노화를 멈추는 마법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최신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약 35세부터 매년 근육량의 1%를 잃고 인대와 힘줄도 뻣뻣해집니다. 연골 역시 지우개처럼 닳아 부상에 더욱 취약해집니다.

그러나 최첨단 훈련과 컨디셔닝 방법 덕분에 선수들은 나이가 들어감에도 운동능력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제는 일반인들도 접할 수 있는 ‘크라이오테라피’가 대표적입니다. 영하 150도 이하의 액체 질소가 가득찬 기구에 들어가 경기 후 만신창이가 된 몸을 회복하는 요법입니다. 뇌는 몸이 얼어붙고 있다고 착각해 천연 진통제인 엔도르핀을 마구 방출하고, 이것이 근육통과 염증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줍니다.

크라이오테라피의 효능 유무에 대해선 엇갈린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지만 스포츠스타들에게는 인기 만점입니다. 르브론 제임스와 스테판 커리 등 NBA 선수는 물론 NFL의 스타 라인배커 본 밀러, 은퇴한 복싱선수 매니 파퀴아오와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도 ‘크라이오테라피’를 즐겨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NBA의 덴버 너깃츠 등 팀 단위로 이같은 최신식 회복 시설을 갖춘 곳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밖에 근력운동시 근육에 혈액을 붙잡아 저강도 운동으로 높은 효율을 얻을 수 있는 Kaatsu 요법, 관절에 무리를 최소화하기 위한 수중 런닝머신 등도 올림픽 레벨의 운동선수들 사이에서 퍼지는 최첨단 훈련법입니다.

스포츠과학 기자인 제프 베르코비치는 “한 세대 전의 운동선수들은 훈련은 더욱 많이 할수록 좋다는 생각에 지배당했지만, 지금은 시즌 중간에 휴식을 취하는 것이 전혀 낯설지 않은 일이 됐다”고 밝혔습니다.

샌디 쿠팩스가 1974년 이후 태어났더라면...의학발달로 이뤄진 ‘선수생명 연장’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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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전 5년간 메이저리그를 지배했던 투수 샌디 쿠팩스(브루클린-LA 다저스). [사진출처=MLB 명예의전당]

의학기술의 발달도 선수 생명 연장에 톡톡이 기여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 미국 메이저리그(MLB)를 풍미했던 샌디 쿠펙스는 30세에 은퇴를 선언합니다. 은퇴 직전 5년(1962~1966년)간 최고 투수에게 주는 사이영상을 3번 수상하고 트리플크라운(평균자책점·탈삼진·승리 1위 동시 달성)을 3회나 기록한 선수였지만 고질적인 팔꿈치 인대 부상이 그를 마운드에서 끌어내렸습니다.

쿠팩스가 조금만 늦게 태어났다면 결과를 달랐을 겁니다. 신체 다른부위의 힘줄로 팔꿈치 인대를 대체하는 ‘토미존 수술’이 1974년 탄생했기 때문이죠.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저스틴 벌렌더는 37세였던 2020년 토미존 수술을 받고 2년 뒤 자신의 3번째 사이영상을 수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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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NBA 파이널에서 아킬레스건 파열 부상을 당한 케빈 듀란트(당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사진출처=ABC]

케빈 듀란트도 의학기술의 수혜를 받았습니다. 그는 2019년 NBA 파이널 5차전에서 아킬레스건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습니다. 느린 화면을 통해 그의 다리 안에서 팽팽한 근육이 ‘뚝’ 끊기는 순간을 알아챌 수 있을만큼 심각한 부상이었고, 모두들 듀란트가 이전의 기량을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봤습니다. 듀란트 이전 NBA 선수중 심각한 아킬레스건 부상을 입은 18명중 7명은 영영 돌아오지 못했고, 복귀한 선수들은 복귀 직후 2년동안 시즌의 70% 이상을 결장했습니다. 실력 하락은 말할 것도 없었지요.

그러나 부상을 입은 듀란트와 계약을 체결한 브루클린 넷츠는 바이오 센서를 통한 부상부위 점검과 수중 런닝머신 훈련 등 최첨단 기술을 동원해 그의 회복에 힘썼고, 역대 최고의 득점머신은 성공적인 복귀를 할 수 있었습니다. 듀란트의 최근 3시즌간 평균득점은 선수생활 전체 평균(약 27점)보다 높은 경기당 29.5점입니다.

번돈의 절반을 비행기값으로 써야하는 세계랭킹 92위...소득양극화가 부른 ‘고인물’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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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2017년 남자 프로테니스(ATP) 랭킹 톱100(주황색)과 톱1000(파란색)의 평균연령 추이 [출처=https://medium.com/@mathzero/why-are-tennis-players-getting-older-eb2fb5895929]

일부 종목 선수들의 ‘롱런’ 뒤엔 소득 양극화가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앞서 테니스 랭킹 100위권 내 선수들의 평균 연령이 1980년 중반이후부터 2017년까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승했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범위를 상위 1000위로 확대하면 결과는 예상을 벗어납니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30년 넘게 23~24세 밴드 안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는 나이든 선수들이 최상위 레벨에 도달하면그 자리에 머무르는 시간이 점점 길어져 세대교체가 안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원인은 당연하게도 돈입니다. 테니스 4대 메이저 대회중 하나인 윔블던대회의 총상금은 1984년 150만파운드(약 24억원)에서 올해 4470만파운드(약 729억원)로 30배 가량 늘어나는 등 테니스 대회의 상금규모는 기록적으로 증가중입니다. 그러나 과실은 최상위 선수들이 독식하다시피 합니다. 프로테니스투어인 ATP의 총상금은 매년 증가일로지만, ‘마이너리그’ 격인 ATP 챌린지의 총상금은 2010년을 전후로 25%가량 감소하기도 했습니다.

부익부 빈익빈은 경기를 준비하는데서부터 차이를 만듭니다. 로저 페더러는 선수시절 두명의 코치와 영양사, 피트니스 트레이너는 물론 가족과 보모, 가정교사와 함께 호화로운 전세계 투어를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013년 세계랭킹 92위였던 마이클 러셀은 한해동안 벌어들인 7만5000달러중 3만5000달러를 이코노미 비행기값으로 날렸습니다. 값싼 숙소를 전전했던 그에게 로저 페더러와 같은 수준의 컨디셔닝을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한 해 테니스 프로선수 중 남성 336명과 여성 253명만이 빚을 지지 않고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는 분석결과도 있습니다.

돈이 돈을 낳는 구조가 지속되니 상위 선수들은 ‘고인물’이 됩니다. 1980년대 중반 남자 테니스 랭킹 100위권에 새로 진입한 선수는 30여명이었지만, 2010년대 들어서는 20명 안팎으로 줄어든 상태입니다. 테니스 ‘빅3’ 시대의 이면엔 과도한 소득 양극화란 그늘이 있었던 겁니다.

CEO·노벨상·영화배우도 ‘올드보이’ 전성시대...‘롱런’의 마지막 키워드는 ‘동기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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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ATP 파이널스에서 7번째 우승을 차지한 노박 조코비치[사진출처=신화통신]

올드보이들의 활약은 비단 스포츠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지난 100년간 노벨상 수상자의 평균 연령은 56세에서 65세로 상승했습니다. 미국 S&P 500 기업들이 고용한 최고경영자의 평균 연령은 2005년에서 2019년 사이에 14세나 늘었습니다. 1996년 미션임파서블의 주인공이었던 톰 크루즈는 올해 61세의 나이로 같은 역할을 맡았습니다.

수명이 늘어나고 몸과 마음의 건강함도 과거보다 오래 유지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뜻한 바를 이를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진 셈이죠. 어쩌면 코트위의 노익장들은 이런 변화를 먼저 알아채고 끊임없는 동기부여를 통해 그자리에 남아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기회의 창을 스스로 닫아버리곤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말이죠. 결국 ‘롱런’의 마지막 키워드는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고 목표를 향해 다가가는 마음가짐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항상 최고의 야망과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년에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올해 테니스 왕중왕을 가리는 ATP 투어 파이널스 대회에서 7번째 우승을 차지한 35세 노박 조코비치의 말입니다.

<참고문헌과 외신>
◎Peak Performance Age in Sport. 2001. Australian Research Council.
◎https://nba-playoff.co/what-is-the-retirement-age-of-nba-players/
◎https://www.bbc.com/news/uk-45019737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6360147/
◎https://www.theverge.com/2018/6/15/17468432/jeff-bercovici-play-on-sport-health-age-fitness-science
◎https://www.economist.com/game-theory/2017/01/29/roger-federer-and-serena-williams-defy-age-at-the-australian-open
◎https://medium.com/@mathzero/why-are-tennis-players-getting-older-eb2fb5895929
◎https://www.si.com/nba/2021/10/21/how-long-can-we-play-daily-cover
◎https://www.sbnation.com/nba/2018/1/27/16940178/nba-achilles-injury-history-kevin-durant-golden-state-warriors-future
◎https://www.outsideonline.com/2269941/zapping-your-brain-can-alter-your-physical-limits?scope=anon
◎https://www.forbes.com/sites/miguelmorales/2013/08/26/aces-into-assets-how-michael-russell-has-made-a-profitable-career-in-the-demanding-world-of-pro-tennis/?sh=7dd1dc3a4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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