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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한번 뒤져보세요…푼돈주고 산 종잇장에 인생역전 가능합니다 [올어바웃스포츠]

류영욱 기자
입력 : 
2023-12-23 08:00:00
수정 : 
2024-03-20 17: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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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의 전설 미키맨틀의 신인시절 출시된 ‘야구카드’ <출처=AP>

“완벽한 중심과 표식, 4개의 손상되지 않는 날카로운 모서리, 최상급 품질의 1952년산입니다”

지난해 8월 세계 유수의 경매장중 하나인 헤리티지 경매장의 이사중 한명인 크리스 아이비는 무려 1260만달러(약 164억원)의 낙찰가를 기록한 한 경매품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경매품의 원 소유주였던 앤소니 지오다노가 1991년 5만달러(약 6500만원)에 구입한 ‘이것’은 미국 뉴저지의 익명의 입찰자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이것’이 시간이 흐른 뒤 다시 한 번 시장에 나온다면 낙찰가가 1억달러(약 1300억원)에 육박할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31년 만에 250배가 넘는 가격 상승을 기록한 ‘이것’은 바로 미국 메이저리그(MLB)의 전설적인 강타자, 미키 맨틀의 신인 시절 야구카드입니다.

네 맞습니다, 야구카드. 특별할 건 없습니다. 맨틀의 ‘인생경기’를 기념한 것도 아니고, 몸에 지닌 채 타석에 들어선다고 공이 수박만 하게 보이는 능력을 부여하지도 않습니다. 1952년 탑스(Topps)라는 야구카드업체가 판매했던 공산품이지요. 그러나 스포츠 기념품을 모으는 이들에게 이 공산품은 NFT(대체불가능토큰)처럼 거액을 투자해 수집할 가치가 있는 물건입니다.

코로나팬데믹 이후 스포츠 기념품 거래 시장은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수집품 시장에서 마이클 조던의 농구화, 펠레의 축구복은 이제 반 고흐, 피카소의 손길이 들어간 작품들의 위상을 좇고 있습니다.

이 분야에 생소한 사람들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스포츠 기념품’의 세계. 어떤 물건들이 거래되고, 누가 거래하는 것일까요.

‘서사’가 담기면 가격이 뛴다...마이클 조던의 ‘라스트댄스’가 더한 웃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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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60득점 게임볼’을 찾으러 상대편 라커룸으로 뛰어 들어간 NBA 밀워키 벅스의 야니스 안테토쿰보 <출처=NBA on EPSN>

미프로농구(NBA)의 최우수선수(MVP)를 2회나 차지한 밀워키 벅스의 야니스 안테토쿰보는 최근 인디애나 페이서스와의 경기가 끝난 후 분노를 참지 못했습니다. 그는 경기가 끝난 후 상대팀 라커룸으로 득달같이 뛰어들었고, 같은 팀 그를 선수들도 뒤따라가 팀간 충돌이 벌어졌습니다.

경기를 지켜보던 팬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안테토쿰보는 이 경기에서 생애 첫 60점 이상을 득점했고, 팀 역시 대승을 거뒀기 때문이지요.

NBA 최고 선수의 분노를 불렀던 것은 바로 경기에서 사용된 ‘농구공’이었습니다. 그는 첫 60점이란 대기록을 기념할 수 있는 ‘게임볼’을 얻기 원했지만, 페이서스 측에서 이를 가져가버렸다는 주장이지요. 하지만 페이서스 역시 할 말은 있었습니다. 팀의 신인 선수가 그 경기에서 NBA 첫 득점을 기록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농구공을 챙겼다는겁니다.

이처럼 어떤 물품들은 선수들, 아울러 팬들에게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서사가 포함된 경기의 운동복과 도구들은 그 자체만으로 가치가 있다는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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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마라도나가 ‘신의손’ 사건 당시 입었던 선수복 <출처=소더비>

스포츠 기념품 시장에서 ‘서사’의 가치는 무한합니다. 코로나19 기간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마이클 조던의 6번째 NBA 우승 도전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라스트댄스’는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이 영향은 기념품 시장에 즉각 반영됩니다. 지난해 소더비 경매에서는 조던이 마지막 우승을 장식한 1998년 NBA 파이널(결승전) 1차전에서 입었던 농구복이 1010만달러(약 131억원)에 낙찰되며 ‘미키맨틀 카드’에 이어 두번째로 비싼 스포츠 기념품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심지어 1차전는 조던의 시카고 불스가 유타 재즈에게 내 준 경기였는데 말이죠.

불스가 이긴 2차전에 조던이 신었던 ‘에어조던 13’도 금덩이었습니다. 올해 봄 낙찰된 이 신발의 가격은 220만달러(약 28억원)로, 역대 운동화중 가장 비싼 값이 매겨졌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전 잉글랜드와의 맞대결에서 골키퍼와 공중경합중 왼손 주먹으로 공을 쳐서 골을 넣었습니다. 경기 후 마라도나는 “신의 손에 의해서 약간, 나머지는 마라도나의 머리에 의해서 득점한 것”이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했고, 아르헨티나는 이 대회에서 두번째 우승을 차지합니다.

마라도나가 ‘신의 손’ 경기에서 입었던 축구복은 지난해 소더비 경매에 출품됐습니다. 그리고 930만달러(약 121억원)에 낙찰되죠. 최근엔 리오넬 메시가 지난해 우승을 차지한 카타르월드컵때 입었던 축구복들도 역시 경매시장에 나왔습니다. 총 6벌의 축구복의 가격은 780만달러(약 100억원)에 익명의 낙찰자에게 돌아갔습니다.

이밖에 무하마드 알리가 1974년 조지포먼을 상대로 이긴 WBC(세계복싱평의회) 헤비급 타이틀전 벨트(618만달러), 베이브루스의 이적 문서 등(440만달러) 등도 서사에 어울리는 가격으로 수집가들에게 흘러갔습니다.

담배곽으로 시작한 야구카드가 ‘귀하신 몸’ 된 까닭은?...300조원 시장 넘보는 ‘스포츠 기념품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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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만달러에 낙찰된 베이브루스의 1914년 ‘루키카드’ <출처=포브스>

유명 스포츠 선수들의 땀과 이야기가 스며든 용품들이 입이 벌어지는 가치를 지닌 것은 이해가 갑니다. 그럼 미키 맨틀의 ‘루키 카드’와 같은 스포츠 카드는 무슨 가치를 지닌 것일까요.

이 스포츠카드야말로 수집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있는 매니아들의 영역입니다. 일반인들은 관심이 없지만 매니아들에겐 희소성 하나만으로 수백억원이 넘는 금액을 지갑에서 꺼내게 만듭니다.

스포츠카드의 역사는 150년이 넘습니다. 초기 스포츠카드는 담배나 사탕을 파는 회사가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야구 선수 사진이 들어간 카드를 제품에 포함시키면서 탄생했습니다. 이 카드들은 담배 등을 보호하는 역할도 했는데, 그만큼 보존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야구의 신’ 베이브 루스가 1914년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데뷔할 당시 출시된 ‘루키카드’는 최근 경매에서 720만달러(약 93억원)에 낙찰됐습니다. 야구카드중 역대 3번째로 높은 금액이지만 베이브 루스의 상징성과 야구계의 위상을 감안하면 역대 최고가 아닌 것이 의문스럽지요. 그러나 베이브 루스의 카드는 미키 맨틀 것보다 보존 상태가 다소 떨어진다는 약점이 있었습니다.

담배곽에 끼워진 스포츠카드가 수집품의 반열에 오른 것은 1950년대부터였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는 미국 최고의 스포츠였던 야구선수들의 카드를 수집하기 시작했고, 업체들도 수집을 목적으로하는 ‘트레이딩 카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MLB뿐 아닌 NBA 등 여타 스포츠와 관련된 카드도 출시됐습니다.

1980년대부터는 스포츠카드의 황금기가 시작됐습니다. 베이비붐 세대는 이제 돈을 버는 성인이 됐고, 카드를 모으는데 유감없이 많은 돈을 쏟아부었습니다. 글로벌 스포츠카드 시장은 2022년에만 126억달러(약 16조원)에 도달했고, 2030년엔 2배에 육박하는 230억달러(약 29조원)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유관 산업들도 발전중입니다. 오늘날엔 카드가 진품인지를 따지는 감정인, 평가와 인증을 받은 업체들이 카드의 가치를 보증합니다. 고가의 스포츠카드에 대한 전문 보험 상품도 마련되는 등 미술 시장과 유사한 구조를 띄고 있는 실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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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딘·헤리티지 스포츠경매 매출 추이 <출처=artnet>

요즘엔 더이상 우표 수집을 하는 사람들을 찾을 수 없습니다. 우체국을 통한 편지가 이메일로 대체되면서 어린 세대들은 얼마 안가 우표의 존재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포츠는 세대를 거듭해 팬들을 끌어들입니다. 기념품과 카드를 수집하는 이들이 꾸준히 공급된다는 뜻이고, 시장 역시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실제 지난 7월 미국 시카고에서 개최된 스포츠 수집가 컨벤션엔 10만명의 인파가 몰렸는데 이는 4년전보다 2배에 달한 수준이었습니다.

컨설팅그룹 마켓 디사이퍼는 2021년 세계 스포츠 기념품 시장의 가치가 261억달러(약 34조원) 수준이라고 추산했습니다. 시장은 계속 커져 2032년엔 2272억달러(약 296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연평균 성장률만 21.8%에 달하는 수준입니다. 스포츠 경매 분야에 강점을 지닌 골딘 경매장과 헤리티지 스포츠 경매장의 매출로도 이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2019년 골딘 경매장의 스포츠 경매 매출은 연간 2000만달러(약 260억원)수준이었지만 2021년엔 6월까지만 2억달러(약 2600억원)로 10배가 뛰었습니다. 헤리티지 경매는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한느 것은 한계가 있다”며 “수집품 시장은 큰 폭의 성장을 보이고 있고 스포츠 분야도 같은 궤도를 밟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돈이 되는 스포츠 기념품...‘홈런 신기록’이 부른 잠자리채와 잔칫집 망친 언론인 출신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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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홈구장에서 시즌 69호 홈런을 때린 배리본즈. 그 해 본즈는 MLB 한 시즌 최다홈런(73호) 기록을 갈아치웠다. <출처=MLB>

스포츠 기념품이 돈이 되다보니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시기가 오면 진풍경이 벌어지곤 합니다.

2001년 MLB 시즌 막바지가 다가오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홈구장인 오라클 파크 주변엔 소형배인 카약떼가 출현했습니다. 오라클 파크는 해변을 따라 지어져 우측 담장 건너편이 바다였습니다. 여기에 카약을 탄 팬들이 득실댔던 것이지요.

이는 당시 자이언츠의 배리 본즈가 마크 맥과이어가 보유하고 있는 한 시즌 최다 홈런(70홈런) 경신할 것이 유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좌타자이자 당겨치기에 능한 본즈의 홈런은 우측 담장을 넘어 바다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만약 그렇게 바다로 향한 홈런공이 ‘역대 최다 홈런 기록’의 상징이라면? 그 가치는 어마어마했겠지요. 이때문에 일부 팬들은 야구경기는 뒷전으로 한 채 담장 밖 바다에서 하염없이 홈런이 터지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지요.

한국인들에게도 기시감이 느껴지는 장면입니다. KBO 역대 최고 홈런타자 이승엽 선수가 아시아 최대 홈런 신기록을 기록한 시즌, 삼성 라이온스 경기가 벌어지는 야구장엔 홈런볼을 얻기 위한 잠자리채 무리가 외야 관중석을 가득 채우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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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언론인이 훔쳐간 NFL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쿼터백 톰 브래디의 선수복 <출처=멕시코 법무부>

돈이 몰리는 분야에 범죄도 빠질 수 없지요. 미국프로풋볼(NFL)의 역사상 최고 선수 톰 브래디는 2017년 슈퍼볼에서 자신의 5번째 우승을 완성합니다. 문제는 그가 우승을 자축하기 위해 라커룸에 도착했을때 입었던 경기복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결국 미국 FBI(연방수사국)의 수사로 이어집니다. 한 달 뒤 밝혀진 범인은 멕시코의 중소 언론사 편집장 마우리시오 오르테가였습니다. 선수와 구단이 우승에 취해 어수선한 경기장에서 언론인 자격으로 출입이 허용된 오르테가가 유니폼을 훔쳐간 것이지요. 2010년대 들어선 미국 노스다코다주의 스포츠 박물관에 절도범이 침입해 MLB 명포수 요기 베라의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비롯한 수십개의 기념품을 훔쳐가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계좌에 수백~수천억원이 없다면? 제2의 미키맨틀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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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NBA에 데뷔한 ‘초대형 신인’ 빅터 웸반야마(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스포츠카드는 벌써부터 온라인 경매에서 수천달러에 낙찰되고 있다. <출처=USATODAY>

수백~수천억원의 스포츠 기념품 기록을 보다보면 현실감각이 조금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십만원도 채 안되는 ‘최애’ 선수의 선수복을 사는데도 고민하는 일반적인 팬들에게는 먼나라 이야기지요.

이런 경우엔 미래의 슈퍼스타를 보는 안목을 키우는 것도 꽤나 좋은 대안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재능을 만개할 유망주들의 팬이 되는 겁니다.

1260만달러 야구카드의 주인공 미키 맨틀은 7번의 월드시리즈 우승, 3번의 MVP, 월드시리즈 최다 홈런, 득점, 타점 기록을 보유한 미국 야구의 전설중 한 명입니다. 그의 카드 가치가 완벽한 보존상태도, 희소성도 아닌 야구실력에 기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죠.

못다 끝낸 이야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앞서 소개한 NBA 스타 안테토쿰보에게 ‘60득점’ 게임볼을 빼앗긴 선수는 페이서스의 오스카 치브웨 선수입니다. 결과적으로 그에겐 2개의 게임볼중 하나가 건네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기에 직접 쓰인 공이 아닌 만일에 사태에 대비한 ‘리저브볼’을 받은 것이지요. 안테토쿰보의 게임볼은 지금이 고점이지만, 치브웨의 리저브볼은 오늘이 가장 저렴할 수 있습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치브웨의 리저브볼이 제 2의 ‘미키 맨틀 카드’가 될 수 있을지를요.

<참고문헌과 외신>
◎https://news.artnet.com/market/sports-memorabilia-market-1986946
◎https://news.artnet.com/market/mickey-mantle-baseball-card-record-2166849
◎https://journaltimes.com/sports/most-expensive-sports-collectibles/article_9901132d-7fac-5027-94d4-6087c4e661dc.html
◎https://www.withvincent.com/research/history-sports-cards
◎https://theathletic.com/5134710/2023/12/14/lionel-messis-shirts-sold-for-7million-michael-jordan-record/
◎https://bleacherreport.com/articles/10099733-babe-ruth-1914-baltimore-news-rookie-card-sells-for-72m-3rd-highest-price-for-card
◎https://robbreport.com/shelter/art-collectibles/sports-memorabilia-raking-in-millions-at-auction-1234865811/
◎https://www.nytimes.com/2017/10/27/arts/sports-memorabilia.html?searchResultPosition=11

≪[올어바웃스포츠]는 경기 분석을 제외한 스포츠의 모든 것을 다룹니다. 스포츠가 건강증진을 위한 도구에서 누구나 즐기는 유흥으로 탈바꿈하게 된 역사와 경기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문화, 수백억원의 몸값과 수천억원의 광고비가 만들어내는 산업에 자리잡은 흥미로운 내러티브를 알게 된다면, 당신이 보는 그 경기의 해상도가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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