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야화 ⑸가난한 집 며느리
입력 : 2008-02-01 00:00
수정 : 2008-0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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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색시가 시집이라고 와보니 살림살이가 말이 아니다.

신랑은 서당에 다니며 공부에 매달렸고 시아버지란 사람은 꼴난 양반에 까짓것 초시라고 사랑방에서 양반다리를 꼬고 앉아 오가는 선비들 다 끌어모아 밥 주고 술 주며 살림만 축내고 있었다. 조상한테서 문전옥답 토실하게 물려받았지만 매년 한자리씩 팔아치워 앞으로 4~5년이면 알거지가 될 판이다.

어느날, 며느리가 들에 갔다 집에 오니 사랑방에 시아버지 글 친구들이 잔뜩 모였다.

“얘야, 술상 좀 차려 오너라.”

며느리는 부엌에 들어가 낫으로 삼단 같은 머리를 싹둑 잘라 머슴에게 건네며 그걸 팔아 술과 고기를 사오라 일렀다. 머슴은 그걸 들고 사랑방으로 가 시아버지에게 보였다. 사랑방에 싸늘한 침묵이 흘렀다. 글 친구들은 슬슬 떠나고 시아버지는 혼자 남아 애꿎은 담배만 피워댔다.

벌벌 떨고 있는 머슴에게서 머리카락을 싼 보자기를 빼앗아 든 며느리는 저잣거리로 향했다. 며느리는 집으로 돌아올 때 삐약삐약 병아리 서른마리를 사왔다. 며느리는 손수 닭집도 짓고 도랑을 파서 지렁이를 잡아 먹이며 정성껏 키웠다.

봄이 됐을 땐 그간 족제비가 서너마리 물어갔지만 병아리들은 토실하게 자라 중닭이 됐다. 가을이 되면 장닭도 팔고 암탉이 낳는 달걀도 팔 꿈에 부풀어 있던 어느날 장보러 왔던 친정아버지가 찾아왔다.

며느리 눈치를 보던 시아버지가 신이 났다.

“얘야, 사돈 오셨다. 닭 한마리 잡아서 술상 좀 차려라.”

며느리가 닭을 잡으려고 좁쌀 한줌을 쥐고 마당에 뿌리며 “구구~” 하자 닭들은 놀라서 화다닥 울타리 밖으로 줄행랑을 쳐버린다.

며느리가 닭을 잡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걸 보다 못한 시아버지가 나왔다.

쌀독에서 쌀을 한줌 쥐고 나와 뿌리며 “구구~” 외치자 닭들은 장독대로, 지붕으로 날아올라 도망친다. “구구~”를 계속 외치며 닭들을 뒤쫓느라 하수에 빠지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가시에 찔려 시아버지의 몰골은 말이 아니다. 저녁나절 닭장에 들어오면 잡겠다고 닭장 안에 쌀을 뿌리며 “구구~” 외치자 닭들은 모두 마당 옆 감나무로 올라가 가지에 앉아 밤을 샐 작정이다.

결국 사돈은 빈 입으로 떠나갔다. 시아버지는 화가 치밀어 이놈의 닭들 다 잡아버리겠다고 장창을 써봤지만 며느리가 머리 잘라 산 걸 그가 어쩌겠는가. 이튿날 시아버지가 마실가고 없을 때 며느리가 겉보리를 마당에 뿌리며 “훠이, 훠이~” 외치자 닭들이 몰려들어 그녀 발밑에서 모이를 쪼아 먹는다.

며느리는 닭들이 모이를 다 먹자 훈련시키는 걸 잊지 않았다. 부지깽이로 닭들을 후려치며 “구구~” 하고 외쳤다. ‘구구’소리를 듣자마자 닭들은 줄행랑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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