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농산물 스토리텔링]포도
입력 : 2016-08-03 00:00
수정 : 2016-08-03 00:00

수분·당분 함량 높고 유기산·비타민·무기질 다량 함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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컷_우리농산물 스토리텔링
 8월 말이나 9월 초쯤 터키 아나톨리아 지역인 카파도키아 일대를 여행하다 보면 드문드문 포도밭과 마주치게 된다. 포도밭이라고 해서 우리나라 충북 영동과 충남 천안, 경북 김천·경산·영천 등 포도 주산지 풍경을 떠올려서는 곤란하다. 멀리서 보면 돌과 모래뿐인 사막 군데군데 녹색 점을 찍어둔 것 같지만 다가가서 보면 난쟁이 산머루가 드문드문 터를 잡고 있는 듯하다.

 비를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힘든 땅이라 그런지 우리 산머루처럼 덩굴이 우거지지 않고 땅딸막하게 자라 잎만 무성하다. 그런데 잎을 들추면 연녹색 청포도가 조롱조롱 달려 있다. 모양새는 이게 포도밭이고 재배 중인 포도가 맞나 싶지만 몇알 따서 입에 넣는 순간 “아! 여기가 포도의 고향이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된다.

 밀과 보리 등 곡물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재배사(史), 그 자체가 서양의 문화이자 문명사인 포도는 기원전 6000년 무렵 바로 이곳에서 그 재배의 역사가 시작됐다. 포도는 서양 인류 문명의 발전과 궤를 같이해 기원전 4000년경에는 메소포타미아로, 다시 이집트 문명을 따라 나일강 유역으로, 그 후 기원전 1000년경 그리스 남부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넘어가 그리스·로마 문명과 함께했다. 이 무렵 포도에 얽힌 신화가 탄생한다. 바로 ‘디오니소스’다. 로마 신화에는 ‘바쿠스’로 등장한다.

 바람둥이 제우스 신과 사람인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난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의 아내 헤라의 질투로 어머니를 잃고 미치광이가 되지만, 제우스의 어머니 레아의 도움을 받아 이집트와 아시아 모험에 나선다. 그 후 그리스로 돌아와 결혼을 하고 ‘암펠로스(포도밭)’ ‘스타필로스(포도나무)’ ‘오이노피온(술 마시는 사람)’이라는 세 아들을 둔 ‘포도의 신’이 된다.

 로마제국 영토를 따라 확산된 포도 재배는 기원전 2세기 무렵 중국 한나라 때 실크로드가 개척되면서 동아시아 지역으로 전파됐다. 포도(葡萄)의 어원 역시 이란어 ‘Budaw’ 혹은 페르시아어 ‘Budawa’를 단순히 음역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포도는 중국을 통해 삼국시대 무렵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지만 널리 재배된 것은 조선시대부터로 추측된다. 조선시대 농서인 <촬요신서> 나 <농가집성> <색경> 등에 포도 재배법이 소개돼 있다. <산림경제> 등에는 포도 색에 따라 <자(紫)> <청(靑)> <흑(黑)> <마유포도> <수정마유> 등 중국에 정착된 유럽계 포도 품종이 나타난다.

 물론 유럽계 포도가 전래되기 이전에도 우리나라는 머루 등 아시아계 포도 품종의 원산지였다. 따라서 머루·왕머루·새머루·까마귀머루·개머루 등 5가지 자생종이 있었고, 고농서에는 ‘산포도’라는 이름으로 기록돼 있다.

 우리나라 포도 재배사가 산업으로 전환한 것은 대한제국 고종 황제 때이다. 1906년 황제 칙령으로 현재의 뚝섬에 설립한 ‘독도원예모범장’에서 유럽계 포도 품종을 들여와 재배하기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광복 후에는 경기 안성과 충남 천안·경북 김천 등 이른바 ‘경부선 라인’에 포도 재배단지가 조성돼 오늘에 이르렀다.  

 포도는 수분과 당분 함량이 높고 풍부한 유기산과 비타민, 다량의 무기질을 함유하고 있다. 동식물의 신진대사에 직접 사용되는 포도당이라는 말이 바로 ‘포도에 많은 당’에서 유래했을 정도다. 중국의 <신농본초경> 과 <본초도감> 에는 포도가 ‘근골을 강하게 하고 기력을 돕는다’고 기록돼 이미 당시에 포도가 약으로도 활용됐음을 알 수 있다.

 2004년 한·칠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영향으로 포도 재배면적과 생산량이 크게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충북 영동과 경북 영천 등 주산지에서는 생과용 일변도에서 탈피, 다양한 와이너리 육성 등 포도주 가공을 통한 포도산업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참고자료= <인테러뱅 77호> 농촌진흥청 

 한형수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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