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두 마리의 지네. 지네의 다리는 몇 개일까요?
ⓒ 김규환

지네를 만난 사람으로부터 온 한 통의 메일

얼마 전 추석 때 두꺼비 만난 기사를 읽고 독자가 메일로 아래와 같이 보내왔다.

지난 9월 17일 밤. 생일 겸 저녁 식사를 가족들과 마치고 18일 새벽 1시까지 인터넷을 뒤지는 중이었죠.18일 새벽 1시경? 책상 아래 발등 위로 뭔가 스윽~ 지나가는 느낌에 아래를 내려다보았는데, 길이 15cm, 두께 1cm, 다리 수? 양쪽에 각각 50개씩은 붙어 있음직함. 색상? 짙은 검은색. 그리고 이 녀석의 머리 부분엔 주황색 수염인지 더듬이인지 두 개가 좌우로 1cm 정도 되게 뻗어있더군요.
 
뭔지 아시겠나요? '지네'랍니다. 지네도 요물인 것 같습니다. 며칠 전부터 잠자리엔 가위에 눌리는 듯 잡귀 귀신들이 나를 공격하더니 이 녀석(불쌍하지만, 지네는 제가 책을 내려쳐서 저세상으로 갔답니다)이 나타나서 제가 잡은 뒤로는 가위도 없어졌죠. 잡귀들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고요. 제가 흉물을 잡았는가 봅니다.
 
오늘 아침 집에 확인해보니 지네 사체는 일단 거실에 딸린 주방 옆 비닐 봉지에서 쓰레기 봉투에 넣어져 치워진 상태네요. 님의 '지네' 소원은 제가 본 것 같아 몇 자 적어봅니다.


지네 그림을 즐겨 그렸던 낙서 습관

어떤 분도 최근에 지네에 물렸다는 이야기를 기사로 올렸다. 나도 지네와 인연이 깊다. 중학생 이후 심심하면 노트에 그렸던 기억을 갖고 있다. 낙서(落書)는 주로 한자(漢字)를 휘갈겨 쓰거나 내가 미래에 만날 여성에 대한 스케치도 하였지만 꼭 빠트리지 않았던 것이 지네다.

먼저 엉겁결에 네모를 하나 그린다. 주위를 둥글게 다듬어 가다 이내 다음 칸에 네모를 하나 더 얼기설기 그려 넣는다. 나도 모르는 새 그렇게 하고 있었으니 그건 버릇이었다. 비슷하지만 결코 같지 않은 크기로 머리 부분에서 시작하여 하나 둘 셋…10여 개의 네모를 이어 꼬리부분에 이른다. 마지막은 그 크기가 절반 정도이면서 두 배 정도 길게 그린다. 다듬고 다듬어서 둥근 맛을 주고 양쪽으로 한개도 빼놓지 않고 발을 그린다. 마치 거북선 노를 연이어 놓은 듯하다. 머리를 마저 완성하여 더듬이를 그리고 맨 나중에 마디 중앙에 점을 하나씩 찍어주면 지네가 된다. 내가 왜 지네를 그토록 많이 그렸는지 그 까닭을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모르겠다.

지네는 요물이다. 꿈에 나타나는가 하면 사람을 희생(犧牲)으로 요구한다. 제깟 것이 대체 뭐라고 그러는가?

▲ 고구마 밭에도 지네가 많다.
ⓒ 김규환

지네와 닭의 혈전에서 누가 이겼을까?

고교 때 본 홍콩 영화의 한 장면도 잊을 수 없다. 닭과 지네의 싸움이다. 두 진영은 오랜 적대 관계라 죽고 사는 명운을 건 싸움을 벌인다. 동물 모양의 진용(陣容)을 갖춘 예닐곱의 무리가 한 편은 닭이고 또 다른 쪽은 지네다. 수회 반복하여 상대를 공격하지만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닭은 지네를 옆구리를 어떻게든 물어뜯으려 하고 지네는 허벅지와 겨드랑이를 노리며 잔뜩 웅크린 자세다. 아이들 놀이 같지만 간단치 않다. 영화의 말미에 이르러 닭이 결국 이기고 만다.

그 형국은 지네가 잠시 주춤한 사이 일순간 벌어진다. 닭이 '나비보다 잽싸게 날아 벌처럼 쏘듯' 펄쩍 날아 뛰어서 지네 등줄기를 부리로 사정없이 쪼아 약한 고리를 가격하매 지네는 비실비실 더 이상 힘을 못 쓰고 여지없이 무너진다.

상극(相剋) 관계를 그린 영화치고 꽤 괜찮은 작품이다. 일상 생활에서 상극 관계도 없지 않다. '닭 요리를 해놓고 까딱 잘 덮지 않았다가는 지네가 냠냠하며 지나가면 사람이 먹어서는 안 된다'는 속설이 있다. 반대로 닭이 꿈적 못하는 때가 있다. 해가 지고 새벽을 알리는 첫닭 우는 때까지다. 횃대에 올라 서로 간에 궁시렁거리며 잠을 자고 있는 사이 닭에 접근하여 어디고 물어뜯으면 속수무책이다.

▲ 닭 요리를 잘 덮어야 한답니다. 언제 지네밥이 될지 모르거든요. 가시같은 저 나무는 엄나무라고 하는데 온갖 잡귀를 물리치는 효과가 있다고 하여 방문 앞에 걸어 뒀습니다.
ⓒ 김규환

밤 밭에 닭 뼈를 뿌려 놓으면 지네가 우글우글, 고구마 밭에도 많다

그 뿐이 아니다. 집집마다 지네 한 마리는 지푸라기에 처마 밑에 묶여 걸려 있었다. 그 만큼 쉬 만나기도 어렵거니와 약효도 대단했던가 보다.

그러니 지네를 잡으려면 사람들은 닭을 다 발라 먹고 유인책으로 닭 뼈를 이용했다. 뼈를 밤나무 밑에 오복이 모아두면 적게는 열댓 마리에서 백여 마리까지 모인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만날 수 없는 지네를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그 다음으로 많은 곳이 고구마 밭이다. 고구마를 50여평 캐다보면 적어도 몸통은 까맣고 더듬이는 붉은 괴상한 지네를 예닐곱 마리는 만날 수 있다. 밤나무 근처와 고구마 밭에 지네가 많은 이유는 녹말 덩어리를 지네가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지네가 필요한 분이라면 이렇게 해보길 권한다. 올 가을 고구마 캐는 날이 벌써 기다려진다.

다만 잡다가 물리는 것까지 책임 질 수는 없으니 조심할 일이다. 만약 물렸다면 간장이나 장 등 알칼리성 약품이나 식품을 바르는 게 좋다. 홧김에 소주를 한잔 했다가는 더 악화가 되니 참는 게 도리다.

▲ 밤나무 밑에 지네가 많습니다.
ⓒ 김규환

두꺼비의 보은과 지네 설화

동물 보은 담(談) 중의 하나로 '두꺼비가 은혜를 갚기 위하여 지네에게 죽게 된 소녀를 살리고 대신 죽는다'는 내용의 설화로 '지네장터설화' 또는 '오공장터 설화'가 있다.

청주(淸州)의 지네장터에 근거한 유래담과 경기도 개성 서북쪽의 지네산에도 이 설화가 있다. 그밖에도 지명에 관계없이 널리 분포되어 있고 동화로도 보급되어 있다.

"옛날 어느 고을에 가난한 소녀가 살았는데 하루는 부엌에 두꺼비가 나타나 배고픈 기색을 보이자 먹을 것을 주며 잘 보살폈다. 잘 먹은 두꺼비는 크게 자랐다. 그 마을에는 해마다 처녀를 지네에게 바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 소녀가 제물로 결정되었다. 두꺼비에게 작별을 하고 지네터(당집 또는 굴)에 들어갔다.

밤중에 두꺼비가 그곳에 찾아와서 같이 있는데, 지네가 나타났다. 붉은 불을 뿜는 지네와 파란 불을 뿜는 두꺼비가 치열하게 싸우자 소녀는 기절하였다. 이튿날 아침 사람들이 가서 보니 두꺼비는 지네와 함께 죽고 소녀는 살아 있었다. 지네가 죽자 우환은 사라졌다.


처녀를 제사지내서 평안을 바라는 인신공희설화는 제주도(濟州道)의 김녕사굴에도 있다. 이 설화에는 지네가 구렁이로, 두꺼비가 제주목사로 되어 있다. 처녀가 살 수 있었던 것은 두꺼비를 키워준 자비심 때문인데, 평소 자기를 사랑하는 소녀를 위하여 죽음으로 보답한 두꺼비의 보은은 두꺼비와 같이 배은망덕하지 말고 항상 보은하여야 한다는 당위를 제시한다.

지네는 수많은 발과 무서운 독을 지닌 점에서 인간을 부단히 괴롭히는 존재, 즉 자연의 공격·재난 및 백성을 괴롭히는 탐관오리나 도둑 같은 불량배로 비유된다. 두꺼비가 파란 불을 지상에서 위로 쏘고, 지네가 붉은 불을 위에서 아래로 쏘는 대결장소가 곡식을 저장한 창고(청주 근처라는 점에서는 물과 불, 또는 풍년과 흉년(가뭄)의 자연대립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이 설화는 자연과 인간, 가해자와 협조자, 사랑과 보답 등의 인간문제를 다루고 있다.
(자료 출처 : 한국사전연구사 간. 국어국문학자료사전)

▲ 두꺼비는 지네와 이미지가 다릅니다.
ⓒ 김규환

계명산에 얽힌 이야기 그리고 지네 퇴치법

이왕 본 김에 하나 더 보고 가기로 하자. 충주시 북쪽에 우뚝 솟은 775cm의 거산이 있는데 계명산이라고 부른다. 원명은 오동산, 심항산 등으로 불려 왔다.

충주가 삼국시대 백제 영토로 있을 때였다. 왕족을 자칭하는 성주가 마고성의 성주도 겸하며 충주읍성(예성) 내관과의 왕래가 잦았다. 그 당시 '심항산 기슭에 지네가 많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마고성주의 딸이 심항상 밑을 지나다가 지네에게 물린 일이 있었다. 지네 독으로 몸이 부어오르며 통증이 심해졌으므로 시종들을 시켜 원근에 있는 의생들을 불러 갖은 약을 써 봤으나 날이 갈수록 악화가 되더니 마침내는 죽고 말았다.

그날부터 성주는 관민들에게 '지네를 모두 잡아치우라!'고 퇴치령을 내렸다. 그렇지만 지네는 근절되지 않고 그 피해는 날로 더해갔다. 그러므로 성주는 이제 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닫고 산신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심항산마루에 제단을 설치하고 성주 스스로 매일 정심기도를 올렸다. 이렇게 치성을 다하여 지네퇴치에 부심을 하던 어느 날 꿈에 용두백발(龍頭白髮)을 한 선인이 나타나서 "지네는 닭과 상극이니 닭을 산에다 방목하라. 그러면 근절시킬 수 있을 것이다"하고 일러주고 사라져 버렸다.

성주가 그 노선이 시키는 대로 많은 닭을 방목하니 과연 지네가 근절되었다. 그러나 또다시 지네가 번성할까 두려워 계속 닭을 놓아기르니 이 산 곳곳을 닭이 밟지 않은 데가 없다하여 계족산(鷄足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풍수설에 의하면 충주에 큰 부자가 안 나는 것은 계족산이 있어 닭발의 형상이고 이름조차 계족이니 분산을 뜻한다고 하여 충주지역 인사들의 의견과 충주시의회를 거쳐 1958년에 여명(黎明)을 알린다는 뜻으로 계명산(鷄鳴山)이라고 개칭하게 되었다.(자료:충주시)

▲ 수탉은 지네들(?) 끼리만 사나울 뿐 모성은 덜하기 때문에 적들로 부터 병아리를 구하는데는 암탉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 김규환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이 기자의 최신기사역시, 가을엔 추어탕이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