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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불청객 황사가 오락가락하는 3월 25일, 민통선의 한 산자락이다.

겨울을 넘긴 하늘타리열매가 나뭇가지를 타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지난해 여름 하늘타리 꽃을 처음 접하고 가을날의 오렌지색 열매에 이어 구멍이 뚫려 있는 희끄무레한 모습으로 내게 다가온 것이다.

▲ 나뭇가지 위로 하늘타리열매가 대롤대롱 매달려있다.
ⓒ 김계성
하늘타리(Trichosanthes kirilowii Maxim)는 박과의 다년생덩굴식물로서 쥐참외, 하늘수박, 과루, 황과 등으로 불려진다. 산기슭이나 들에서 자라며 덩굴손으로 다른 물체를 감으면서 뻗어나간다.

그동안 야생화 탐사를 하면서도 하늘타리는 쉽게 만날 수가 없었다.

하늘타리를 만나 꽃을 보기까지

지난해 9월, 어느 날 지인으로 부터 ㅇㅇ천 둑방에 하늘타리가 피어 있다는 소식에 줄달음을 했다. 잎은 어긋나고 단풍잎처럼 5∼7개로 갈라지며 갈래조각엔 톱니가 있다.

▲ 하늘타리꽃이 피고난 다음 오므리고 있는 상태다.
ⓒ 김계성
그러나 정작 하늘타리 꽃은 주먹을 꼭 쥐고 있는 모습이거나 시들어만 있었다. 시간대를 달리해 찾아봐도 여전히 그 모습. 하늘타리는 하루 중 언제 꽃을 피웠다 오므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 꽃이 아직 피지않는 상태, 며칠은 더 기다려야 한다.
ⓒ 김계성
박과 식물이다. 그렇다면 밤중에 피기 시작하여 새벽녘까지 가녀린 꽃잎이 활짝 피어 있지만 해가 뜨면 곧 말려들기 때문은 아닐까. 서둘렀다.

▲ 태양이 떠오르는 이른 아침이 하늘타리꽃을 만나는 시각이다.
ⓒ 김계성
아침 일찍 일어나 밖을 내다보니 태양이 곱게 오르고 있었다. 식사는 뒷전으로 하고 내내 헛걸음을 했던 그곳으로 한걸음에 내달렸다.

▲ 2006년 9월 5일. 아침햇살 아래 순백의 머리를 풀어헤친 하늘타리꽃의 모습이다.
ⓒ 김계성
오! 드디어 하늘타리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피어 있다. 바람개비처럼 풀어헤친 모습, 햇빛을 받아 이슬마저 머금고 있는 순백의 머리칼이 더욱 정갈해 보였다. 꽃은 연한 황색으로 피어나 꽃받침과 화관은 각각 5개로 갈라지고 화관갈래조각은 실처럼 다시 갈라진다. 하늘타리는 아침도 아닌 이른 새벽에 꽃을 피우는 것이다.

▲ 서로 정담을 나누기라도 하는듯, 두 개의 하늘타리꽃이다.
ⓒ 김계성
등 뒤로 차들이 쌩쌩 달리는 위험천만한 둑방길이지만 땅바닥에 기다시피 눈 맞춤을 해가며 카메라에 담아내는 일은 남 모를 보람이며 가슴 뿌듯함이다.

그로부터 몇 개월 뒤 다시 그곳을 찾았다. 몇 잎 남은 빼빼 마른 잎사귀만이 손사래를 칠 뿐 열매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새 무지한 예초기의 칼날이 스쳐간 모양이다.

▲ 오렌지색으로 잘 익은 가을날의 하늘타리열매 모습이다.
ⓒ 김계성
그러다 아쉬움이 철심처럼 박힌 가을 어느 날, 오렌지색으로 잘 익은 열매를 민통선의 한 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크기와 둥근 모양이 영락없는 테니스볼이다. '잘 견디고 있거라. 겨울에 또 보자' 그러나 그 열매 또한 겨울을 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새 봄을 맞이했다.

불행 중 다행인지 또 다른 열매들이 멀지 않은 곳에서 비록 쭈그러들고 구멍은 숭숭 뚫려 있지만 한겨울을 이겨낸 의연함으로 하늘높이 매달려 있었다.

▲ 겨울을 난 구멍뚫린 하늘타리열매 속으로 씨앗이 보인다.
ⓒ 김계성
구멍 사이로 씨앗이 들여다보인다. 박과답게 연한다갈색으로 불거진 씨앗은 박씨하고 비슷하게 생겼다. 한방에서는 뿌리를 왕과근이라 하여 부작용이 없는 훌륭한 암치료제로 쓰며 열매를 토과실, 종자를 토과인이라고 하며 역시 약용한다.

▲ 뉘라서 감히 만질 수가 있을까, 하늘타리꽃의 빼어난 자태다.
ⓒ 김계성
왜 하늘타리라고 했을까?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가는 실타래 마냥 풀어헤친 꽃을 떠올려 본다. 어느 지방에선 하늘타리 열매를 대문에 걸어 두어 액운을 막는다는데…. 가정마다 좋은 소식들이 하늘타리꽃처럼 피어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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