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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카와 다쿠지 지음. 김영사
▲ 기적의 사과 이시카와 다쿠지 지음. 김영사
ⓒ 윤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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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농약 사과를 재배하겠다는 기무라 아키노리를 보면서 주위 사람들은 전부 미쳤다고 했다. 미쳤을 뿐만 아니라 말도 되지 않는 혼자만의 상상에 빠져서 주위의 사람들에게 위험을 노출시킨다며 손가락질까지 해댔다.

병충해에 약해서 농약 없이는 키우기가 절대 불가능하다고 인식되던 사과재배. 당시 주위 농부들의 목소리는 그 사회의 통념상 틀리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마을 사람들 말대로 어쩌면 그가 위험인물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주위의 삿대질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이어받게 된 가업을 위해 도서관과 서점을 제 집처럼 들락날락 거리다 우연히 읽게 된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자연 농법>이라는 책은 그에게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해 주었다.

기무라씨는 점차 <자연 농법>에 매료되었고 그가 완성시키고자 했던 '무농약 사과재배' 는 그의 필생의 업이자 존재의 이유가 되어버렸다.

"막대기로 트랙터 책을 쿡쿡 찔렀지. 그랬더니 옆에 있던 책까지 동시에 떨어져 버리지 뭐야. 허둥지둥 집어 들었는데 옆에 있던 책의 모서리가 찌그러져 버린 거라. 눈인지 비인지 바닥이 더러워져 있어서 얼룩도 조금 묻었고.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그 책도 같이 샀어."  (64쪽)

그렇게 무농약 농법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이 기르던 사과에 그것을 접목시키기로 결심하고서 1년, 2년, 3년, 4년, 5년……. 그리고 그 후에도 몇 년의 시간이 더 흐르는 동안 그는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다. 점점 돈줄은 말라만 갔고, 장인, 장모, 아내 그리고 아이들까지 자신의 고집으로 인해서 궁핍한 삶으로 내몰려야했다.

그는 모든 방법과 갖은 애를 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실을 맺기는커녕 상황은 점점 더 참혹한 지경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는 사과나무에게 제발 살아만 달라고 빌기도 했지만 좋아질 기미는 전혀 보이질 않았다. 그렇게 그는 마침내 한 인간에 불과한 자신의 미약함을 인정하고 거대한 자연에 패배를 시인하면서 그동안 쌓아왔던 지식과 자신을 내다버리기로 한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경험과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뭔가를 하기 위해서는 경험과 지식을 쌓아 나갈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세상에서는 경험이나 지식이 없는 사람을 바보라고 부른다. 그러나 사람이 진정으로 새로운 뭔가에 도전할 때, 가장 큰 장벽이 되는 것 역시 그 경험과 지식이다." (144쪽)

자신의 부족함과 패배를 인정하고 남아있는 가족을 뒤로 한 채 죽을 자리를 찾아서 산으로 올라가던 그 순간 그는 산 속에 씩씩하게 자라고 있는 도토리나무 한 그루를 발견한다. 처음에는 사과나무로 착각한 그 나무를 자세히 뜯어보면서 기무라 씨는 자신이 수년간 사과재배를 해오면서 간과했던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깨닫게 된다.

" 지금껏 사과나무의 보이는 부분, 즉 지상에만 신경을 썼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과나무의 지하는 안중에도 없었다. 퇴비를 주고, 양분을 뺏기지 않게 잡초만 주었다. 잎의 상태만 신경 썼을 뿐, 사과의 뿌리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158쪽) 

"이제껏 농약 대신 벌레나 병을 없애 줄 물질만 찾아 헤맸다. 퇴비를 뿌리고 잡초를 깎으며, 사과나무를 주변 자연으로부터 격리시키려했다. 사과나무의 생명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농약을 쓰지 않았어도 농약을 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병이나 벌레 때문에 사과나무가 약해졌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벌레나 병은 오히려 결과였다. 사과나무가 약해졌기 때문에 벌레와 병이 생긴 것이었다."(158쪽)

이렇게 그는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그 위대함 속에 사과나무를 내맡기게 되었다. 사과나무에 방해가 될 것이라고 짐작했던 잡초들을 더 이상 제거하지 않았다. 오히려 흙에게 생명을 부여해주기 위해 콩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퇴비의 사용량을 줄여나갔다 그리고 해충들을 잡아 없애지도 않았다.

"자연 속에는 해충도 익충도 없다. 인간이 해충이라 부르는 벌레가 있기 때문에 익충도 살아갈 수 있다. 먹는 자와 먹히는 자가 있기 때문에 자연의 균형은 유지된다. 거기에 선악은 없다." (187쪽)

그 결과 비료로 인해서 토양에 잔뜩 쌓여있던 양분 때문에 더 이상 땅속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지 않았던 사과나무는 점점 더 땅속을 헤집고 나가면서 스스로 양분을 찾기 위해 튼실한 뿌리를 가진 사과나무로 다시 태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건강한 사과나무는 스스로 병균을 입은 잎에 구멍을 내어버리고 새로운 잎을 키워나가는 능력도 발휘한다.

<자연 농법>에 관한 책을 읽고 그것을 사과에 접목시키기로 작정한 지 9년 만에 그는 처음으로 사과나무에 핀 하얀 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사과나무들은 기무라 씨의 노력에 그들이 가진 새하얀 꽃과 함께 순수한 웃음으로 그의 노력을 치하해 주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건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야. 모두들 내가 열심히 노력했다고 말하지만, 실은 내가 아니야. 사과나무가 힘을 낸 거지. 이건 겸손이 아니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 인간이 제아무리 애를 써본들 자기 힘으로는 사과 꽃 하나 못 피워. 손끝이든 발끝이든 사과 꽃을 피울 순 없지.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것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거야. 온 밭 가득 활짝 핀 꽃을 보고 난 그걸 절실히 깨달았어. 저 꽃을 피운 건 내가 아니라 사과나무라는 걸 말이지.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사과나무였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과나무를 돕는 것 정도야.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간신히 그걸 깨달았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어." (202쪽)

그는 사과나무의 꽃들과 주위 사람들의 칭찬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이 한 일은 대단하지 않다는 겸손함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모든 것은 자연의 힘이고 자신은 그것을 약간 도왔을 뿐이므로 그렇게 과분한 영광은 받을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만약 칭찬을 받아야 한다면 사과나무에게 해달라는 요구와 함께…….

나는 이 남자의 뚝심에 제일 먼저 감동받았다. 바로 전에 읽었던 <하이퍼포머의 변화대처법>이라는 책에서 계속적으로 변해야만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변화의 메시지를 접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자신의 존재의 이유에 대한 답을 찾고자 끊임없이 노력한 기무라 씨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변화라는 화두에만 너무나도 집착하면서 순응의 단계까지 생각하고 있던 나를 발견하고 곧바로 궤도를 수정할 수 있었다.  

변화에 대처하는 것이란 이리저리 메뚜기 떼들 마냥 휩쓸리는 것이 아니었다. 변화의 바람에 대응하는 것 자체는 바람직하나 기무라 씨와 같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서 변화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깨달음이었다. 하나의 목표와 하나의 존재이유. 그리고 그것을 위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의 모습에서 나는 이것이 바로 또 하나의 <하이퍼포머>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 보았던 <마천루>의 하워드 로크의 인생이 바로 기무라 씨의 인생과 유사했음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건축학계에 자리 잡고 있던 보편적이고 틀에 박힌 건축디자인을 거부하고 새롭고 실용적인 자신의 창작 활동에 심혈을 기울였던 하워드 로크의 모습이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나의 기억 속에서 다시금 활개를 치고 일어섬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나에게 자연의 위대함을 깨닫게 해주는 동시에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또 한 번의 깨달음의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기무라 씨는 소설 속의 하워드 로크와는 다르게 손수 '기적의 사과'라는 결과물을  보여주면서 우리들도 해낼 수 있음을 증명해주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던 그 무엇. 세상이 옳다고 생각하는 그 무엇과 다르더라도 그것이 인류에게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든다면 인생의 전부를 바쳐서라도 이룩하겠다는 그 집념이 이 책에는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나는 기무라 씨가 남긴 그 기록들을 보면서 앞으로 내 인생의 앞에 놓인 장애물들을 넘을 수 있는 엔진을 발견한 것과 같은 기쁨이 물밀듯이 밀려 들어왔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기적의 사과

기무라 아키노리, 이시카와 다쿠지 지음, 이영미 옮김, NHK '프로페셔널-프로의 방식', 김영사(2009)


태그:#기적의 사과, #이시카와 다쿠지, #김영사, #단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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