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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기운이 완전히 걷힌 봄에 피는 애기똥풀꽃은 줄기가 사방으로 뻗어서 한 포기 자체로는 단아한 맛이 덜합니다. 하지만 줄기 끝의 잎겨드랑이에서 다시 작은 줄기를 뻗어 가지마다 4장의 노란꽃잎을 가진 황색에 가까운 꽃을 피웁니다. 어디고 지천인 꽃이지만 무리지어 만개하면 봄 햇살을 받은 명도 높은 노란색에 눈이 부셔서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는 그 옆을 지나기 어렵습니다.

참나무골 길가의 애기똥풀꽃
 참나무골 길가의 애기똥풀꽃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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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가 비어있어 작은 쓸림에도 몸이 꺾기기 쉽고, 속이 빈 탓에 한번 꺾인 줄기는 다시 일어설 수 없습니다. 줄기나 잎을 꺾었을 때 나오는 유액의 색이 애기똥과 같은 색이라서 애기똥풀이라는 이름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황금색 유액은 손에 묻으면 물로 쉽게 지워지지는 않습니다. 까치다리라고도 하는데 줄기가 가지 친 모습을 보면 그 이유를 알 만합니다.

노란색의 4장의 꽃잎을 가진 애기똥풀꽃
 노란색의 4장의 꽃잎을 가진 애기똥풀꽃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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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이 부러진 자리에서 흘러나온 황색의 유액. 이 때문에 애기똥풀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잎이 부러진 자리에서 흘러나온 황색의 유액. 이 때문에 애기똥풀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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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원산인 이 꽃은 해를 넘겨 다음 해에 꽃을 피우는 두해살이 월년초이지요. 어릴 적 심부름으로 들을 오가는 중에도 논둑 비탈의 돌 틈에서도 흔들리던 꽃이었고, 얕은 물가에서 족대로 피라미를 후리다가도 고개를 들면 코끝에 와 닿던 추억의 꽃이기도 합니다. 자주 보는 친구에게 정이 가듯, 이렇듯 흔해서 더 정이 가는 들꽃입니다.

헤이리 이웃마을의 450년된 느티나무 가에도 애기똥풀꽃이 피었습니다. 우리나라 전역에 흔한 들풀입니다.
 헤이리 이웃마을의 450년된 느티나무 가에도 애기똥풀꽃이 피었습니다. 우리나라 전역에 흔한 들풀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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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저희 집 앞 길가에서 작게 무리를 이룬 애기똥풀이 매년 조금씩 그 범위가 넓어지는 것을 보고 이 꽃은 어떤 방법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참나무골 길가의 애기똥풀꽃. 매년 그 영역이 조금씩 확장되고 있습니다.
 참나무골 길가의 애기똥풀꽃. 매년 그 영역이 조금씩 확장되고 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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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식물은 씨앗을 멀리 보내서 자손이 더 넓은 지역으로 확산되기를 원합니다. 같은 지역에서의 생존 다툼을 막기 위함이기도 하고 새로운 세력권을 만드는 것은 모든 종의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움직임이 불가능한 식물들이 그 종자를 퍼뜨리는 방법으로는 꽃받침을 변형시켜 솜털모양의 털을 만든 다음 씨앗을 바람에 날리게 하거나, 가시로 동물들의 몸에 붙어 이동하기도 합니다.

쑥과 칡 사이를 살피면 한 달전에 피었던 꽃들이 씨앗을 가득 담은 꼬투리로 남았습니다.
 쑥과 칡 사이를 살피면 한 달전에 피었던 꽃들이 씨앗을 가득 담은 꼬투리로 남았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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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똥풀의 열매들을 살펴보니 여러 줄기의 작은 콩꼬투리로 되어있었습니다. 그 속을 보니 자그마한 검은 씨앗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 꼬투리 때문에 돌콩처럼 씨앗이 완전히 익고 꼬투리가 마르면 깍지가 뒤틀리며 터져 씨앗을 허공으로 날리겠거니 짐작했습니다.

애기똥풀의 꼬투리
 애기똥풀의 꼬투리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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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 식물학자와의 만남에서 제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그 자손을 퍼뜨리는 방법이 있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젤리 상태의 지방산 덩어리인 '엘라이오좀eliaosome'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엘라이오좀에는 개미들에게 좋은 영양분이 되는 지방, 단백질, 비타민이 함유되어 있어서 개미들이 이 엘라이오좀을 먹기 위해 씨앗을 개미집으로 옮겨가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제비꽃과 엘레지 그리고 이 애기똥풀은 그 씨앗에 엘라이오좀을 붙여놓아 개미들을 유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깍지를 터뜨려 나온 애기똥풀 씨앗. 흰색 부분이 개미들이 좋아하는 엘라이오좀 부분입니다.
 깍지를 터뜨려 나온 애기똥풀 씨앗. 흰색 부분이 개미들이 좋아하는 엘라이오좀 부분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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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애기똥풀은 개미들의 힘을 빌려 영역을 확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개미를 이용해서 씨앗을 옮기는 식물을 '개미살포식물'이라고 합니다.

애기똥풀씨앗을 물고 가는 개미.
 애기똥풀씨앗을 물고 가는 개미.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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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살포식물들은 씨앗에서 엘라이오좀만을 떼어가는 악동 개미들을 막기 위해 씨앗에서 엘라이오좀만을 떼어내면 쉽게 건조되어 부피는 물론 맛과 영양가도 함께 줄어들도록 되어있답니다.

애기똥풀씨앗을 물고 가는 개미
 애기똥풀씨앗을 물고 가는 개미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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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는 결국, 애기똥풀의 의도대로 좀 무겁지만 씨앗을 함께 옮겨가야합니다. 개미집으로 애기똥풀의 씨앗을 옮겨간 개미들은 집에서 엘라이오좀만을 맛있게 먹고 씨앗은 내다버리게 되지요. 보편적으로 개미가 집을 짓는 곳은 토양도 좋아 새싹을 틔우기도 좋은 곳입니다.
한시간이 경과하여 다시 가보니 씨앗은 모두 옮겨지고 씨앗에서 분리되었던 엘라이오좀을 찾아 배회하는 개미들만 남아있습니다.
 한시간이 경과하여 다시 가보니 씨앗은 모두 옮겨지고 씨앗에서 분리되었던 엘라이오좀을 찾아 배회하는 개미들만 남아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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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5월 초에 꽃이 만개했던 곳에서 그 씨앗 꼬투리를 채취하여 사진 찍기 좋도록 칡잎 위에 그 깍지를 터뜨려 개미집 근처에 두어보았습니다. 순식간에 개미들이 몰려들어 그 씨앗을 개미집으로 옮겨갔습니다. 불과 10분 만에 몇 개의 깍지를 깐 수십 개의 씨앗은 사라져버렸습니다.

이 얼마나 공평한 거래인가요. 분명 내년 봄에는 모티프원의 이 개미집 근처에도 애기똥풀이 싹을 틔우게 되겠지요.

저는 자연속의 식물과 동물의 이 오묘한 협력을 깨닫고 정원의 풀 한 포기도 밟기가 두려워졌습니다. 제가 모르는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어떤 미물을 제 발바닥으로 밟아 그 질서를 깨뜨릴까 염려되어서입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홀로 생존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제 마음 속에 잠시 미움이 싹트던 사람에게도 다시 웃음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헤이리 참나무골 길가의 천한 이름을 가진 애기똥풀과 서재로 침입하는, 박멸하고 싶었던 한갓 미물로 여긴 개미가 제게 웃음을 종용한 것입니다. 함께 살아야 된다고……. 어깨동무하고 살아야 된다고…….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애기똥풀, #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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