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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40∼50대 중장년층을 설레게 하는 PC통신의 이름이다. 1990년대 초반 ‘뚜뚜, 삐~’ 하는 모뎀 접속음 끝에 등장하는 파란 바탕의 하얀 텍스트로 채워진 화면은 지금도 기억이 선명하다. 텍스트가 고작인 게시판 서비스와 모뎀 이용료 등을 합쳐 월 5만∼6만원의 비싼 요금에도 청춘들은 컴퓨터 앞에 모여들었다. 전화선을 이용하다 보니 잦은 ‘통화 중’에 화가 난 어머니의 등짝 스매싱을 피해 하얗게 밤을 지새웠다. 격세지감을 느낄 만하지만 당시 청춘들에게 PC통신은 ID(닉네임) 하나로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PC통신은 대중음악·문학·영화 등 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동호회 붐을 이끌며 ‘정모’, ‘번개’, ‘방가방가’ 같은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 ㅠㅠ 등 감정 이모티콘의 시초도 PC통신이다. 밴드 ‘자우림’과 ‘언니네 이발관’의 시작도 PC통신 동호회라고 한다.

영화·드라마에선 단골 메뉴다. 1997년 개봉한 한석규·전도연 주연의 영화 ‘접속’은 유니텔을 통해 아픔을 간직한 두 남녀가 가까워지는 로맨스 영화로 대박을 쳤다. 엔딩에 흐르는 세라 본의 ‘러버스 콘체르토(A Lover's Concerto)’는 그해 국민팝송이 됐고, 디지털 요소가 가미된 한국영화의 새 장을 열었다. 전지현의 대표작 ‘엽기적인 그녀’는 나우누리 게시판 인기글을 영화화했다. 국민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모든 편에서도 PC통신은 빼놓을 수 없는 소재로 등장한다.

문학에서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 PC통신망의 동호회 게시판에 연재물 형식으로 게재된 소설들은 문학계 주류로 떠올랐다. 1990년 전후 천리안의 시범 서비스를 시작으로 하이텔(1992년), 나우누리(1994년 ), 유니텔(1996년)이 PC통신 문학 전용 게시판을 만들어 신인 등단의 길을 터 줬다. 복거일이 ‘파란 달 아래’(1992년)’를 하이텔에 연재하는 등 한수산, 박상우 등 기성 작가들까지 동참했다. 국내 유일의 PC통신 유니텔이 6월 문을 닫는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도도한 시대의 흐름을 비켜 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2007년 일찌감치 서비스를 종료한 하이텔·천리안과 비교하면 오래 버텨 준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김기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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