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지역 전통시장 숨은 먹거리 (2)칠성시장 보문칼국수

  • 입력 2007-08-17   |  발행일 2007-08-17 제37면   |  수정 2007-08-17
첨단 시대에 더 빛나는 고향의 면발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지역 전통시장 숨은 먹거리 (2)칠성시장 보문칼국수
40여년간 시장 상인들과 동고동락해 온 칠성시장 보문 칼국수 김노미 할머니가 능숙한 솜씨로 칼국수를 썰고 있다.

정량과 눈대중.

어느 게 더 셀까요. 갈수록 요리가 '정량'의 원칙을 따르지만 몇몇 음식은 아직 '눈대중'이 믿음직스럽습니다. 칼국수는 '눈대중의 미학'이 돋보입니다. 할매의 손감각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합니다. 정량은 '상품'스러운데 눈대중은 '작품'스럽죠.

주위에 '할매 칼국수집'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할매를 열거해봅니다.

달성군 하빈면 동곡장에서 1970년 문을 연 동곡 칼국수 강신조 할매(작고), 73년 대구백화점 남쪽 골목 안 경주할매칼국수의 황금연 할매(90), 남구 대명2가 명덕로터리 근처에 있는 명덕 할매 칼국수의 손주연 할매(80), 서문시장 내에 있는 왕근이 칼국수의 이차선 할매(72), 염매시장 옆 골목 안에 있는 문패없는 칼국수집의 김순자 할매(66) 등이 유명합니다. 특히 안동국수의 명맥을 서울로 파생시킨 무서운 할매가 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숙 여사의 이화여대 선배인 김남숙 할매(79)는 85년 서울 강남 압구정동에 소호정이란 안동국수집을 냈고 여기 단골이 바로 김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그 국수가 청와대에 입성, 문민정부 청와대 칼국수 오찬 회동의 견인차가 됩니다. 현재 서울로 입성한 안동국수의 흐름은 김홍철씨(49)가 2005년 9월 대구시 수성구 어린이회관 서편으로 끌고옵니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우리 칼국수 시장도 지각변동을 일으킵니다. 예쁘게 분칠한 칼국수가 많이 등장한 거죠. 들안길에서 태어난 봉창이 해물 칼국수가 '퓨전 칼국수'의 기수입니다. 그 흐름은 약전골목 간판없는 칼국수집으로 옵니다. 이 집은 빵게로 국물을 감미롭게 만듭니다. 우동 육수 못지 않습니다. 일명 해물 육수 붐이 일어난 겁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 맛에 거북해합니다. 정통 칼국수 맛은 '문종이' 씹는 맛이라고 했습니다. 맛이 와락 덤벼들어선 안되고 있는 듯 없는 듯 해야 그게 제대로 된 국물 맛이라고 합니다. 아직 추억의 칼국수를 고집하고 있는 할매 칼국수집이 칠성시장 내에 있다고 해서 찾아가봤습니다.

# 김노미 할매 칼국수는 눈물을 머금고

기자는 칠성시장에 40년 역사의 보문 칼국수집이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참으로 부끄럽더군요. 명색이 음식담당 기자인데.

보문 칼국수의 탄생기에는 눈물이 숨어 있습니다. 현재 둘째 아들 내외가 김노미 할매(75)의 가업을 잇고 있습니다. 그 집은 칠성시장 할매 보리밥집과 맞붙어 있습니다. 여느 집 같았다면 돈을 좀 더 벌기 위해 보리밥을 끼어 팔았겠지만 할매는 자기 길만 지켰습니다. 남들을 따라가지 않는 할매의 외길정신이 더 향긋합니다. 그리고 할매가 더 믿음직스러워 보였던 건 "음식 파는 게 자랑도 아니고, 다들 열심히 하는데…"라면서 신문과 방송에 소개되는 걸 극구 사양해온 사실입니다.

할매를 어렵게 설득한 끝에 '칼국수 인생'의 일단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요즘도 스님처럼 오전 3시에 일어납니다. 아침 시장에 나왔다가 칼국수로 요기를 하려는 상인들 때문입니다. 그녀는 일하는 게 노는 것이고 노는 게 곧 일입니다. 일이 구원인 셈이죠.

할매 손 크기는 제 손의 두 배입니다. 평생 홍두깨를 굴려 손뼈가 늘어나고 굵직해졌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아픈 데는 거의 없습니다. "먹고 살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도와줘야지."

남들이 와서 장사를 위해 칼국수 요리를 배우고 싶다고 하면 알고 있는 기술을 모두 알려줍니다. 보살의 맘입니다.

안동 길안 출신인 할매는 어릴 때부터 안동국수를 접하며 살았습니다. 38세 때 청상과부가 됩니다. 칠성북부교회 아래 움막 같은 셋방에서 세 아들과 함께 잤습니다. 60년대 후반만 해도 칠성시장에는 요즘과 같은 격자형 점포가 없었습니다. 비뚤비뚤한 난전를 비집고 자기 자릴 차지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리다툼이 전투를 방불케했습니다.

공간이 없어 시장에서 국수를 끓일 수가 없었습니다. 막내를 업고 감주장수처럼 머리에 이고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니면서 팔았습니다. 양은솥에 10인분쯤 끓여갖고 오면 반은 다 쏟아 없어집니다. 어떤 날엔 과일 껍질에 미끄러져 뜨거운 칼국수에 온몸을 데기도 했습니다. 40년전 한 그릇은 20원. 10여년간은 점포도 없이 국수를 이고 다니며 팔았습니다. 당시 보문 말고 칼국수집이 세 집(이쁜이 엄마, 뚱보할매, 새국시)이 더 있었지만 지금은 보문뿐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인기 있는 반찬은 무채 무침, 초창기엔 하우스 시설이 없어 동절기엔 풋고추도 먹을 수 없었습니다. 현재 점포가 2개 있고 모두 20명이 엉덩이를 맞대고 앉을 수 있습니다.

# 맛의 원천은?

현재도 칠성시장을 지키고 있는 신흥상회의 무궁화표 밀가루를 사용합니다. 오전 3시에 일어나 찬물에 굵은 소금 넣고 반죽을 합니다. 밀가루 한 되에 콩가루 2종지, 소금 한 술, 반죽한 건 비닐에 넣고 보습시키고, 20여분 숙성한 뒤 홍두깨질을 합니다. 면을 뺄 땐 반드시 밀가루 냄새가 나지 않도록 콩가루를 넣어줍니다. 밀가루 반되 갖고 15인분 정도 만들 수 있습니다.

육수는 어떻게 만들까요? 다시마·멸치·감자 삶은 물이 잘 짜여져야 합니다. 이때 다시마를 멸치보다 많이 넣고 멸치도 너무 큰 것 보다는 중간 크기의 '오사리'가 좋다고 합니다. 멸치가 많으면 비린내가 많이 나죠. 호박, 부추, 배추 등을 고명으로 올립니다. 보문은 특히 감자 삶은 물을 중시합니다. 감자도 큰 것보다 작은 게 낫습니다. 그게 들어가야 멸치와 다시마 맛이 잘 어울린답니다. 고명 중에선 호박이 가장 중요하고 길쭉한 것보다 둥근 게 더 낫다고 합니다. 국물을 번들거리게 하는 소고기 등 고기는 일절 넣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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