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는 성공해야지? ⑥] 카페 편

동현이는 나에게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다. 이 친구는 대학을 삼수 끝에 점수 맞춰서 들어갔다. 원래 가고 싶던 학과가 있던 것은 아니었고 부모님의 기대에 따라 인서울만이 목표였다. 점수에 맞춰서 들어간 학교는 재미도 없고 나이도 많아서 동기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다. 결국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서 자퇴를 결심했다. 그러나 부모님은 절대 허락하지 않았고 졸업만 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학교에 1분 1초라도 머물고 싶지 않았던 동현이는 도피처로 군대를 선택했다.

그렇게 난 동현이는 군대에서 동기로 만났다. 처음에는 학교가 싫어서 군대로 도피했다는 말이 어이가 없었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것도 아니고 선배들이 때리거나 군기를 잡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반대로 난 군대를 안 가려고 버틸 수 있는 만큼 버티다가, 동기들 중 가장 늦게 입대했다. 과대에 총학생회에 부회장까지 하면서 학교에 있는 시간이 너무 즐겁고 재밌었다. 나이도 같고 유일한 동기였던 동현이는 나와 반대라서 더 가까워졌던 것 같다. 집도 가까웠던 동현이는 제대하고도 자주 만나면서 베프가 되었다. 매사에 큰 의욕이 없고 별다른 취미도 없는 친구였기에 나에게는 늘 아픈 손가락 같은 친구였다.

오늘은 동현이가 할 말이 있다고 술 한잔하자고 말했다. 그렇게 만난 동현이는 어제 소개팅을 한 이야기를 해줬다.


동현이는 소개팅 장소에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 먼저 도착했다. 태어나서 처음 하는 소개팅이라 너무 긴장된 상태였다. 긴장돼서 잠도 설치다 보니, 마치 수능날이 아침 같았다고 회상했다. 긴장감에 습관처럼 담배를 피우고 싶었지만, 냄새 때문에 참아야 했다. 오늘을 위해 세탁소에서 드라이클리닝을 했다고 말했다. ‘무슨 옷을 입고 갔길래?’ 작년 면접 볼 때 이후로는 한 번도 안 입어봤던 정장이었다. 난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동현이의 말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준비하고 나올 때는 날씨가 따뜻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저녁때가 되자 날씨가 쌀쌀해져 추워지기 시작했다. 아마 코트도 안입고 정장만 입고 갔을거다. 충분히 그럴 거도 남을 친구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서 식당에 들어가서 기다리는 건 민폐일 것 같았다. 카페를 가자니 돈이 아깝고, PC방을 가기도 애매했다. 그러던 중 코인노래방이 눈에 들어왔다. 동현은 평소에 노래 부르는 것을 특별히 좋아하진 않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추위도 피하고 시간을 보내기에도 꽤 괜찮은 선택일 것 같았다.

그렇게 동현은 코인노래방에서 30분 정도 시간을 보내며 긴장도 조금 풀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 계획은 곧바로 틀어지고 말았다. 10분 전쯤 도착할 거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그녀는 약속시간보다 40분 일찍 도착해서 기다린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한창 노래를 부르다고 메시지를 확인한 시간은 이미 7분이 지나 있었다. 당황한 동현이는 곧 가겠다고 답장을 하고, 서둘러서 코인노래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약속한 식당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식당에 들어서자, 그녀는 놀라는 듯이 동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 어? 뛰어오셨어요?

동현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동현: 저… 기다리신다고 해서…

상대방은 당황한 표정으로 미안한 듯 말했다.

그녀: 아, 죄송해요. 제가 너무 일찍 와서…

시작부터 잘 안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 급한 일 있으신가 봐요.

동현: 아, 아니에요. 뭐 좀 확인하느라

그녀: 아, 전 괜찮으니까 급한 일이시면 편하게 볼일 보셔도 돼요.

동현: 아니에요. 이제 안 봐요. 아, 아니..

동현은 소개팅이 처음이라서 걱정이 많았다. 그래도 어차피 사람 만나는 건데, 회사에서 다른 부서와 미팅하듯이 말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혹시 모르니까 ‘소개팅 대화 주제’나 ‘소개팅 질문 거리’에 대해 조사해서 카톡에 적어놨다. 혹시나 침묵이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자연스럽게 카톡을 확인하면서 커닝을 할 생각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매우 창의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벌써 3번째? 아니 4번째인가? 대화 주제가 끝나고 침묵이 찾아올 때마다 확인하고 있으니 말이다. 예의 없는 사람으로 보였을까? 당황해서 말도 잘 안 나온다.

동현: 취미가 뭐예요?

그녀: 전 영화 보는 거 좋아해요. 요즘에는 넷플릭스 자주 봐요.

동현: 저도 영화를 좋아하는데, 넷플릭스를 안 봐서… 또 뭐 좋아하세요?

그녀: 아… 운동도 좋아해서 필라테스도 해요

동현: 아? 진짜요? 전 운동 진짜 싫어하는데, 대단하시네요!


식사를 마치고 나왔다.

그녀: 너무 잘 먹었어요!

동현: 별거 아닌데요 뭘. 다음에는 더 맛있는 거 사줄게요.

그녀: 아니에요! 다음에는 제가 사야죠.

다음에는 자기가 산다고 하다니, 이거 그린라이트인가? 동현이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럼 이제 2차로 어디를 가지? 카페를 갈까? 아니면 술 한잔하자고 말해볼까?

동현: 이제 어디 갈까요? 전 내일 쉬는 날이라서 다 괜찮아요.

그녀: 아, 그럼 커피 괜찮으세요? 근데 계속 연락 오던데, 바쁘신 거 아니에요?

동현: 다 해결했어요. 이제 괜찮아요! 제가 찾아보니까 이 건물에 카페도 있고 분위기 좋은 와인 바도 있더라고요.

그녀: 아 그래요? 카페는 어디 있어요?


그녀: 커피는 제가 사야 하는데… 이러면 오늘 다 얻어먹기만 해서… 제가 미안해지네요.

동현: 에이~ 다음에 사주면 되죠. 오늘은 제가 풀코스로 쏠게요!

그녀: 근데 조각 케이크에 베이글까지 너무 많이 주문하신 거 같아요.

동현: 아, 그게 여자들은 디저트 배는 따로 있다고 여러 개 시키라고 하더라고요.


그녀: 오늘 너무 잘 먹었어요.

동현: 아니에요. 더 맛있는 거 사드렸어야 했는데

그녀: 아니에요, 충분히 맛있었어요! 근데 오늘 무리하신 거 아니에요? 제가 미안해지네요.

동현: 아이~ 이 정도로 무리는 아니죠, 미안하면 다음에 사주세요~

그녀: 네 그럼 다음에는 제가 살게요!

오늘 소개팅은 좋은 여운을 남기고 헤어졌다. 동현이는 즐거웠고 조심히 들어가시라는 카톡을 보냈고 그녀도 곧 답장을 보냈다. 성공을 확신한 동현이는 다음 주에 영화 보자고 제안을 했고, 그녀는 스케줄을 보고 말을 해주겠다고 답장을 보내왔다. 동현이는 어떤 영화를 볼지 검색을 하면서 주선자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친구: 어땠어?

동현이는 오늘 분위기 좋았고 서로 마음에 있는 것 같아서 다음 주에 영화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주선자 친구는 깜짝 놀라면서 미리 축하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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