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 경찰에 성폭행 당한 여성 기소

2012.10.02 21:43 입력 배문규 기자

외설 혐의…‘인권 후퇴’ 파문

‘아랍의 봄’ 진원지인 튀니지에서 경찰에게 성폭행당한 여성이 오히려 외설행위 혐의로 기소되면서 튀니지의 여성 인권이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다고 아랍에미리트연합 일간 더내셔널이 2일 보도했다.

지난달 3일 튀니지 경찰 3명은 수도 튀니스 근교에서 차량 데이트를 즐기던 연인을 체포한 뒤 경찰 한 명이 남자친구를 억류하고 나머지 두 명은 차량 뒤편에서 여자친구를 성폭행했다. 하지만 지난달 26일 이들 연인은 체포 당시 ‘부도덕한 자세’로 있었다며 외설행위 혐의로 기소돼 사회적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튀니지 법무장관은 “두 경찰관의 범죄와 여성이 불법행위를 저질렀을 가능성은 별개”라며 양측 모두 법을 어겼을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내무부 대변인은 “정부는 이번 여성의 기소와 관련해 어떠한 관련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도좌파 에타카톨당 소속 카리마 소위드 의원은 “성폭행 피해자의 법정 소환은 참을 수 없는 한계를 넘은 것”이라며 “이 정부와 완전히 결별하겠다”고 연정 파트너 엔나흐다당을 비판했다. 활동가들도 “피해자를 피고인으로 만들어 경찰의 잘못을 덮으려는 시도”라며 “파키스탄에서나 들을 법한 사건이 튀니지에서 벌어졌다”고 AFP통신에 말했다.

인권운동가들은 이번 사건이 지난해 1월 ‘재스민 혁명’으로 독재자 벤 알리가 물러난 튀니지가 진보적 아랍국가와 이슬람주의 보수국가로 갈리는 중대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튀니지는 1956년 일부다처제를 금지하는 양성평등법을 만드는 등 아랍권에서 가장 진보적 국가다.

그러나 지난해 총선에서 승리해 세속주의 정당과 연정을 꾸린 이슬람주의 엔나흐다당은 비록 실패했지만 헌법 초안에 여성을 ‘남성에 대한 보조적 존재로 규정’하는 문구를 넣는 방안을 추진하는 등 여성의 인권을 후퇴시켜 왔다.

인권단체들은 2일 연인의 재판이 열리는 법정 바깥에서 항의시위를 벌이면서 기소 취하와 성폭행 경찰의 처벌을 요구했다. 외설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징역 6월에 처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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