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몸이 하는 말]정자의 생성부터 생명은 시작된다

2004.01.12 15:59 입력

아무리 눈부시게 과학이 발달되었다 해도 여성의 생리와 자궁이 없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기의 탄생은 없다. 마찬가지로 남자의 정자도 그러하다. 여성의 난자가 엄마의 자궁속에서 이미 여자태아로 있을 때 생성된 원시난자가 사춘기 이후에 다달이 성숙한 난자로 자라 배란된다. 남자의 정자는 남성의 몸에서 매순간 만들어진다.

약 75일에서 90일에 걸쳐 남자의 정소에서 만들어져 성숙되는 정자가 성숙된 난자와 만나야 비로소 생명은 시작된다. 그러니 새해 첫날 떡국을 먹으며 나이를 헤아리는 우리의 풍속을 한번 셈하여 볼 때,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 한살로 치는 우리의 전통이 얼마나 생명을 중시하는 사상, 철학에 뿌리를 둔 것인지, 가벼운 서양문화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엄마의 난자의 성숙기일까지 합쳐 자궁안에서 태아가 자라는 시간은 평균 280일, 정자의 생명이 시작되어 자라는 시간이 평균 75~90일일 때 우리는 쉽게 1년 365일을 생각할 수 있다(음력으로 셈하면 더 완전하다).

정자만 있다고 아기가 태어나지는 않는다. 자궁 안에서 평균 266일 동안 엄마 몸에서 골고루 온갖 영양과 산소를 끊임없이 공급받아 그를 토대로 이 세상에 축복된 생명이 태어난다. 그러니 여성의 사랑과 양육은 생명의 시작부터 남자의 생명에 대한 관점과 틀이 다르다.

우리의 설날에, 아니 2월4일 입춘이 되어야 비로소 시작되는 갑신년에 태어나는 아기들의 생명은 실상 계미년인 작년에 시작된 아기들이다. 오늘 여성의 생명 탄생의 역할과 함께 정자로부터 시작되는 생명을 우리 모두가 다시 생각해 보기 바란다. 정자의 90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를 존중하는 남성들이야말로 생명의 존귀함을 비로서 논할 자격이 있다. 말로는 언제나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라고 하면서 아주 기본인 수신, 즉 나의 정자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어찌 사회생활에서 책임있고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정자없이 생명의 시작이 없고 임신은 성립되지 않는다.

미래의 생명을 생각할 때도 남자, 여자 모두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책임있는 정자, 책임있는 난자의 주인공들이어야 한다. 자신을 책임질줄 아는 남성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임신과 피임은 결코 여성만의 책임이 아니다. 생명의 시작이 정자의 움직임으로 난자와 만나게됨으로 시작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피임의 결정적인 책임은 정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의 혼백을 담은 자신의 정자와 난자에 대한 책임을 질줄 아는, 기본적인 책임감 있는 남성과 여성들이 결국은 생명을 존중할 수 있는 기본 소양을 지닌 인류의 부모이며,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사는 진정한 삶의 주인공들이라는 믿음이다.

〈안명옥/포천중문의대 산부인과·예방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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