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비트코인 몰수 적절치 않아”…가상화폐 성격 규정 첫 판결

2017.09.08 20:04 입력 권순재 기자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을 몰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법원이 가상화폐의 성격에 대한 판단을 내놓은 첫 사례다.

수원지법 형사9단독 반정모 판사는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음란물제작·배포 등)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안모씨(33)에게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고 8일 밝혔다. 반정모 판사는 또 범죄수익금 3억4000만원의 추징을 명령했다.

안씨는 2013년 12월부터 최근까지 미국에 서버를 둔 불법 음란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회원 121만여명을 모집해 아동·청소년 음란물 및 성인 음란물 46만여건을 올리도록 해 사이트 이용요금과 광고비를 받는 등 19억여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수원지방법원 전경. |수원지법 홈페이지 캡쳐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은 지난 4월17일 음란사이트 운영자의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안씨의 컴퓨터에서 216비트코인(당시 기준 5억여원)이 든 계좌를 발견해 압수했다. 당시 경찰이 처음으로 가상화폐를 압수한 사례였다.

검찰은 안씨가 챙긴 부당이득 중 14억여원은 현금으로 추징할 것을 구형했다. 검찰은 또 216비트코인에 대해서는 몰수를 구형했다.

몰수는 범죄행위와 관련한 물품과 금액을 국고에 귀속시키는 것이다. 추징은 이미 처분해 몰수할 수 없거나 몰수 대상의 형태가 바뀌는 등의 사정이 있을 경우 그에 상응하는 금액을 대신 징수하는 것을 말한다.

반정모 판사는 증거부족 등의 이유로 안 씨의 범죄수익을 3억4000만원으로 한정했다. 검찰의 비트코인 몰수 구형도 비트코인 전부를 범죄로 얻은 것인지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정모 판사는 가상화폐는 몰수가 아닌 추징 대상으로 봤다. 그는 “비트코인은 현금과 달리 물리적 실체가 없는 전자화한 파일의 형태로 돼 있어 몰수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며 “가상화폐는 객관적 기준가치를 상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에서는 비트코인이 몰수 대상이 아니라는 것 외에 다른 부분에 대한 판단은 내려지지 않았다. 수원지법 관계자는 “가상화폐 전부가 범죄수익으로 인정됐다면 추징을 위해 해당 가상화폐의 경제적 가치에 관한 판단이 나왔을 것”이라며 “이번 사건은 몰수 대상 여부에 대한 판단만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트코인은 2009년 출시됐다. 1비트코인이 최초 약 0.003달러(약 3.4원)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4483.55달러(약 504만원)까지 치솟아 7년여 만에 149만4000배가 될 만큼 가치가 기록적으로 증가했다. 안씨의 216비트코인 역시 이날 기준으로 10억원 수준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가상화폐를 합법적인 결제수단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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