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횡단보도의 성격은 보행자신호에 따라 달라지는 것
⊙ 무단횡단시 보행자 과실은 60~70%

한문철
1961년생. 서울대 법대 졸업 / TBS 〈교통시대〉 교통사고 법률상담, TV조선 〈뉴스와이드 활〉 앵커.
현 스스로닷컴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 《교통사고 현장대처부터 소송절차 마무리까지》
《(만화)굿바이 음주운전》 출간
도로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차가 다니는 차도(車道)와 사람이 다니는 인도(人道)다. 인도는 정확히는 보행자가 다니는 길, 즉 보도(步道)라고도 부른다. 차는 차도로, 보행자는 보도로 가야 한다. 차가 보도로 올라와 사고를 내면 보도침범 사고가 되고 사람이 차도로 건너면 무단횡단이다. 하지만 보행자가 차도를 건널 수도 있다. 이때는 횡단보도나 육교나 지하보도 같은 횡단시설을 이용해야 한다. 아스팔트 위에 그려진 횡단보도는 차도 위에 예외적으로 보도가 설치된 것이다. 아스팔트 옆에 보도블록이 깔린 보도에 차가 못 올라가듯이 횡단보도로 함부로 차가 지나가면 안 된다.
 
  횡단보도는 신호등 있는 것과 없는 것의 두 가지인데(차량 신호등이 황색 점멸이고 보행자신호등이 꺼져 있을 땐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보행자가 건너고 있을 땐 차는 횡단보도 앞, 정지선이 있을 땐 그 앞에 일시정지해야 한다.
 
  보행자가 건너고 있는데도 횡단보도를 지나가는 건 인도 침범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그로 인해 사고나 보행자를 다치게 하면 횡단보도 사고, 즉 보행자 보호의무 불이행이 되어 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더라도 11대 중과실로 처벌된다.
 
 
  보행자신호에 따라 횡단보도 성격 변해
 
  신호등 있는 횡단보도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보행자신호가 녹색일 때와 적색일 때, 그리고 보행자신호가 깜빡거릴 때 등 세 가지 경우에 따라 달라진다.
 
  우선 횡단보도에서 보행자신호가 녹색일 때 차량신호는 적색이다. 이때 모든 차는 당연히 정지선 앞에 멈춰야 한다. 멈추지 않고 진행하면 신호위반이면서 신호에 따라 건너는 보행자를 충격하면 횡단보도 사고까지 된다. 갑자기 보도블록으로 튀어들어가 잘 걷고 있는 보행자를 충격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횡단보도의 보행자신호가 적색일 땐 차량신호는 직진 또는 좌회전신호일 것이다. 이때 보행자가 빨간불임에도 횡단보도를 건너다 사고당하면 횡단보도 사고일까 아닐까? 많은 사람은 횡단보도 흰색선 안에서 사고났으니 당연히 횡단보도 사고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횡단보도 사고가 아니다. 무단횡단 중에서도 제일 나쁜 무단횡단이다.
 
  왜냐하면 검은 아스팔트 위에 흰색 횡단보도가 그려져 있긴 하지만 보행자신호가 적색일 땐 횡단보도가 아니고 아스팔트, 즉 차도로 바뀌기 때문이다. 쉽게 얘기해서 모세가 홍해(紅海)에서 기적을 행했듯이 보행자신호가 녹색일 땐 바닷물이 갈라지고, 보행자신호가 적색일 땐 다시 바닷물로 채워지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보행자신호의 녹색불이 깜빡거리는 건 바닷물이 서서히 밀려와 채워지기 시작함과 같다).
 
  제대로 하려면 횡단보도의 보행자신호가 적색으로 바뀌면 커다란 지우개로 횡단보도의 흰색선을 지우고, 보행자신호가 녹색이 되면 다시 흰색 페인트칠을 해 줘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지웠다가 다시 칠할 수 없기에 흰색선을 그냥 놔둘 뿐이다. 신호등 있는 횡단보도는 보행자신호가 녹색일 때만 횡단보도이고, 적색으로 바뀌면 횡단보도의 성격을 상실한다. 그곳은 육교 바로 밑이나 지하보도 바로 위나 마찬가지이다.
 
 
  무단횡단은 범죄
 
  바로 위에 육교를 놔두고 차들이 쌩쌩 달리는 차도를 무단횡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 특히 차들이 쌩쌩 달리는 늦은 밤이나 새벽시간에는 더욱더 위험할 것이다. 보행자신호등이 빨간불일 때 횡단보도를 무단횡단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경우가 많다.
 
  왕복 6차로 도로에서 100m 거리에서 차가 달려올 때 빨리 건너면 충분히 먼저 건널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람이 걷는 속도는 1초에 1.1m 정도, 뛰더라도 1초에 3m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자동차는 시속 60km일 때 1초에 16.7m, 시속 70km일 땐 1초에 19.4m를 진행한다.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엔 시속 80km 이상으로 달리는 차도 많다. 시속 80km면 1초에 22m를 달린다.
 
  보행자신호 빨간불에 100m 멀리 떨어진 차를 보고 빠른 걸음으로 건넌다 해도 5초 만에 건널 수 있는 건 겨우 중앙선 넘는 정도일 것이다. 그 사이에 100m 떨어져 달리고 있던 차는 어느새 내 앞으로 달려오고 차량신호 녹색등만 보고 달려온 차는(특히 밤에 검은 계통의 옷을 입은 보행자는 잘 안 보인다) 무단횡단자를 뒤늦게 발견하고 급제동해 보지만 피하지 못하고 충격해 사망사고나 엄청나게 크게 다치게 할 수 있다.
 
  이럴 때 나는 횡단보도로 건넜는데 왜 멈추지 않았느냐 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보행자신호가 빨간불일 땐 횡단보도가 아니다. 운전자는 횡단보도 위의 차량신호가 녹색이기에 그곳엔 보행자가 없을 것으로 믿고 달려왔기에 운전자는 정상적인 진행이고 보행자가 신호를 위반해 무단횡단한 것이다.
 
  신호위반하여 무단횡단하는 것은 2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범죄행위이다(실제로는 3만원 범칙금 부과).
 
 
  교통은 약속이다
 
  자동차는 녹색불에 진행하고 보행자는 횡단보도 보행자신호 빨간불에 무단횡단하다 사고가 나면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50 : 50 정도로 봤다. 하지만 지금은 보행자 과실을 더 높게 해 60~70%로 본다(비록 차량 진행신호이긴 하지만 고속도로나 자동차전용도로와 달리 가끔 무단횡단하는 사람도 있어 앞을 잘 보고 운전해야 하기에 자동차에도 30~40% 과실 인정).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신호등 있는 횡단보도에서 보행자신호가 빨간불일 땐 횡단보도가 없어지는 것이다. 빨간불에 무단횡단하는 건 지하철역 스크린도어를 강제로 열고 철로를 지나 건너편으로 가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빨간불 무단횡단을 막으려면 횡단보도마다 스크린도어를 설치해야 할 텐데 그건 비현실적이다. 교통은 약속이다. 약속 중 첫째는 신호를 지키는 거다. 운전자도 신호를 지켜야 하지만 보행자도 똑같이 신호를 지켜야 한다. 빨간불에 무단횡단하는 건 검푸른 홍해바다를 향해 뛰어드는 거나 마찬가지다.
 
  보행자신호가 녹색불로 깜빡일 때 초기엔 뛰면 건널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숫자가 얼마 안 남았을 때나 갈매기 표시가 몇 개 안 남았을 때 건너다간 중간에 빨간불로 바뀌게 된다. 갈라졌던 홍해바다에 물이 들어오는데 뒤늦게 뛰어들었다가 헤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횡단보도 신호가 끊기고 다시 녹색불이 들어올 때까지 짧으면 2분, 길면 3~4분이다. 5분 먼저 가려다 50년 먼저 간다는 얘기가 있다. 기다리자. 빨간불일 땐 녹색불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고 녹색불이 깜빡거릴 땐 뛰지 말고 점잖게 다음 신호를 기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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