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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음을 가진 과학자의 '나의 꿈, 나의 방황'

[서평] 최재천 교수의 <과학자의 서재>

등록|2011.12.19 17:43 수정|2011.12.19 17:43

▲ <과학자의 서재> ⓒ 명진출판

최재천 교수의 <과학자의 서재>는 그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그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시인을 꿈꾸었던 소년,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놀았고 노는 것을 그렇게 좋아했던 소년이 자연 과학자가 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삶의 과정을 소개하면서 젊은 세대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가 말하는 것들은 자연, 책, 그리고 사람이다.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죽기까지 '만남'을 겪는다. 그는 "자연은 내 마음속에 꿈의 씨앗을 심어줬고 책은 그 씨앗이 싹을 틔우도록 물을 줬다"고 말한다. 놀기를 공부보다 좋아했던 저자는 강릉에서 서울로 이사한 뒤에도 방학 때만 되면 강릉으로 갔고, 친구들과 밤이 이슥해지도록 놀고 또 놀기를 좋아했던 소년이었다. 책에는 시인이 될 운명이라 생각하고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습작노트를 옆에 끼고 다녔고 시를 끼적이기도 했던 소년이 담겨 있다.

저자는 어렸을 때 <세계명작동화전집>을 닳고 닳을 때까지 읽었다고 한다. 이후 <한국단편문학전집>을 읽으며 새로운 눈을 떴다고 한다. 꿈이 많아 방황도 많았던 그는 자신이 택한 동물학과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그는 훗날 자신의 전공을 돌아보게 해준 책인 <성장의 한계>를 만난다. 현재의 방식대로 성장일변도의 경제를 유지해 나간다면 지구가 멸망하리란 것을 깨닫게 해 주었던 책이었다고 한다. 자연을 좋아하는 그에겐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성장의 한계>가 자신이 택한 동물학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고 회고했다.

"그 책(<성장의 한계>)은 내가 선택한 동물학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해줬다. 학자가 된 다음 기후변화센터. 생태학회, 환경운동연합과 관련된 활동을 하게 된 것도 근본적인 출발 지점이었던 그 책 때문이었다." (본문 142쪽)

또, 대학교 4학년이 돼서 읽게 된 <우연과 필연> 역시 그의 인생을 달라지게 했다고 고백한다. 책을 손에 든 순간 놓을 수가 없었고, 밤을 꼬박 새워 다 읽은 그는 세상이 예전과 달라 보였다고 고백했다. 시인을 꿈꿨고 조각가도 꿈꿨던 거를 새롭게 만들었단다.

"이 책(<우연과 필연>)은 내게 생물학이 그저 흰 가운을 입고 세포나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인간 본성을 파헤치고 철학을 논할 수 있는 학문이란 걸 알려줬다. 그 책은 내게 생물학에 몸 바쳐도 된다는 정당성을 부여해주었다." (본문 155쪽)

그는 또 "그 책은 어떻게 보면 현재 내 인생의 출발점이었다"고 말한다. <성장의 한계>는 메시지도 좋고 충격을 주기는 했지만, 여전히 과학적 데이터로만 존재하는 재미없는 책이었다. '그 책을 쓴 사람처럼 나도 그렇게 따분한 연구를 하면서 자료와 표만 만지작거리며 살아야 하나?'라고 생각하니 신이 나지 않았다 한다. 게다가 실험실에서 본 조교처럼 '이 길을 가자면 나도 선배처럼 쥐 잡아서 약품 처리하고 난자를 기르는 일을 평생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되레 학문의 매력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만난 책이 <우연과 필연>이었고 그 책은 그의 생각을, 그의 삶의 방향을 확고하게 만들어줬다.

그는 '생물학자도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고, 이런 철학 이야기를 할 수 있구나'라며 막연하게나마 미래를 구상할 수 있었다. 생물학과에 다니면서도 대학생활 내내 찬 바람만 불면 '신춘문예 열병'을 앓았고, 소설가가 돼 글을 쓰고 싶다는 그를, 자기 전공에 몰두할 수 있도록 했다. '생물학에 내 인생을 바쳐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비로소 했던 것이다.

대학 3학년 때,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의 김계중 교수가 세계적인 장학프로그램인 풀 브라이트 교환교수로 동물학과에서 수업을 하게 됐는데, 그분이 그의 대선배였다. 김 교수는 '꼭 미국으로 공부하러 오라'면서 떠났고, 시간이 지나 그는 에드먼즈 교수라는 분을 만나게 됐다. 그는 유학을 결심하고 공부에 열중한다.

"'사람은 사람으로 말미암아 된다'는 말이 있다. 오늘의 나를 학자답게 만든 것은 에드먼드 선생님과 윌슨 선생님, 그 두 스승님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본문 235쪽)

그가 만난 또다른 책은 <이기적유전자>와 <사회생물학>이었다. 이처럼 저자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은 곳곳에 있었다. 가깝게는 부모님과 두 교수였다. '사람은 사람으로 말미암아 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지금도 그의 삶 깊숙이 벗하고 있는 책과 자연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행운도 역시 공짜가 아니다. 지금까지 60년 가깝게 살아오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가 행운은 무작위로 방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준비가 된 곳에만 방문한다. 현실의 눈으로 보면 이룰 수 없는 꿈이나 목표일지라도 조용조용 준비하면서 차부하게 기다리면 언젠가는 행운의 여신이 악수를 청하게 되어 있다. 단지 그 여신이 비행기를 타고 올 수도 있고 KTX를 타고 올 수도 있고 정류장마다 서야하는 완행버스를 타고 올 수도 있기에 시차가 날 뿐이다." (본문 257쪽)

무한한 놀이를 제공했던 자연, 책, 그리고 사람. 이 모든 것들이 저자에게 영향을 준 것 같다. 초등학교 4학년 당시 그가 읽었던 백과사전, <세계명작동화전집> <한국단편문학전집> <성장의 한계> <우연과 필연> <이기적유전자> <사회생물학> 등등. 이 책들이 그의 삶에 책이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과학자의 서재>는 '행운의 여신이 다가올 때, 준비된 사람은 행운을 잡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 준다. 이 책을 통해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이 저자의 도전 정신을 본받고, 지혜와 정보와 통찰을 얻어서 자신의 꿈을 잘 보듬고 마음껏 펼쳐갔으면 좋겠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최재천 교수가 자연을 좋아하고 노는 걸 아주 좋아했던 아이였다는 점이 인상 깊게 남았다. 나도 어린 시절 놀이에 열중하고 몰입했던 아이들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자연을 좋아하고 책을 좋아한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최재천 교수가 들려주는 자신의 꿈과 방황,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삶의 과정을 이 책에서 만났다. 자연, 책, 사람, 이 모든 것이 '만남'이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한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만남도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느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엔 공짜가 없다는 사실. 저자의 말대로 준비가 된 곳에만 행운은 방문한다.

최재천 교수는 시인을 꿈꾸던 소년이었지만 과학자가 됐다. 하지만 시인의 꿈이 사라진 것이 아니란다. 오히려 '시인의 마음을 지닌 과학자'가 됐다. 꿈이 있는 자, 노력하는 자에겐 그 꿈들이 서로 협력해 그 사람을 만드는 것 같다. 지금 비록 어렵고 힘들다 해도 조용히 꿈꾸며 준비하고 차분하게 기다리면, 행운의 여신이 언젠가는 악수를 청해 오리란 것을 잊지 말자.
덧붙이는 글 <과학자의 서재> (최재천 씀 | 명진출판 | 2011.08 |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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