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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살아남으시길..." 장병들이 이런 편지 반길까

[아이들은 나의 스승 49] 병무청의 '군 장병에게 감사편지 보내기' 단상

등록|2015.09.20 11:13 수정|2015.09.20 11:13
"대체 이건 뭥미?"

아이들은 하나같이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것도 일주일에 한 번뿐인 손꼽아 기다리던 동아리 활동 시간에 생뚱맞게 '군 장병에게 감사의 편지'를 쓰려니 감사의 마음은커녕 불만 가득한 표정들이었다.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다그치는 교사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 마음 편할 리 없다. 책상 위에 놓인 느닷없는 '과제물'로 교실은 내내 술렁거렸다.

병무청은 9월 한 달간 '군 장병에게 감사의 편지(엽서) 보내기' 캠페인을 전개한다며 모든 학교에 공문을 내려보냈다. 늘 그렇듯 '협조 요청'이라지만 일선 학교 입장에선 나 몰라라 할 수가 없다. 초, 중, 고등학생 및 일반 시민 모두를 대상으로 한다고 밝혔지만, 그들의 '실적'을 위해 학교가 우선 '동원'되는 건 익히 봐온 터다. 아이들이 쓴 편지는 우편으로 병무청에서 일괄 수합해 해당 지역 부대 장병들의 손에 전달될 예정이다.

조롱과 장난이 섞인 위문편지

▲ 병무청, 군 장병에게 감사편지 보내기 운동 포스터 ⓒ 병무청


공문을 보니 아이들 앞에서 말하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행사명이 우스꽝스럽다. '우리의 자부심, 우리의 자랑, 국군장병 여러분 사랑해요'란다. 순간 아이들 앞에서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교사로서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편지를 쓸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는데 영 마뜩잖다. 입은 적혀있는 대로 행사의 취지를 읽고 있지만, 마음은 요즘 같은 세상에 이게 대체 뭐하자는 짓인가 싶어서다.

아직은 어린 고등학생들이라지만, 군대라면 혀를 내두르는 건 똑같다. 병무청의 '바람'대로 우리 군을 자랑스러워하고 자부심을 갖는 아이들은, 안타깝지만, 거의 없다. 경험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아이들은 군대를 스스럼없이 '죽기보다 가기 싫은 곳'이라 말한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대형 사고가 터지는 곳'이라거나,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만 가는 곳'이라는 불신이 이미 팽배해있다.

여기에다 최근엔 '비리의 온상'이라는 이미지까지 덧입혀졌다. 또래들이 희생당해 누구보다 세월호 참사를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는 아이들에게 '어군 탐지기 탑재한 구난함, 통영함'은 웬만한 아이돌 그룹보다 유명한 이름이 됐다. 어디 그게 해군만의 문제이겠느냐며, 마음먹고 털면 육군도 공군도 결코 자유롭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까지 하며 맞장구치는 아이들이다.

이러한 상명하달식의 위문편지 쓰기가 군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씻어내기 위한 고육책으로 고안된 거라면 번지수가 틀렸다. '이런다고 군 장병들이 좋아할까'라거나 '이딴 쇼를 대체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불평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몇몇 아이들은 '진짜 군대스럽다'며 대놓고 비아냥거렸다. 장차 몇 년 뒤에 입대하게 될 아이들에게 굳이 그런 조롱을 자초해야만 했을까.

그렇다고 아이들이 억지 춘향식으로 쓴 편지가 장병들의 힘든 군 생활에 위안이 될 것 같지도 않다. 학급별 학생 수대로 수합한다니까 쓰긴 하되 정성이 담길 리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조롱 아니면 장난이었다. 그렇다고 일기 검사하듯 일일이 꺼내 읽고 나무라기도 머쓱하다. 아이들 앞이니 말은 못했지만, 속으론 나라도 그렇게 했겠다 싶다.

아이들이 개발새발 쓴 편지 내용을 여기에 짤막하게 소개한다. 그나마 '상태'가 괜찮은 것만 추려낸 것이다. 만약 이 글을 장병들이 읽는다면 어떻게 여길까 조심스럽긴 하지만, 아이들의 편지를 받아보기 전에 '예방주사'라고 생각하면 되레 마음이 편하다. 솔직히 지금도 아이들이 쓴 편지가 '걸러지지 않은 채' 그대로 전달되지는 않을 거라 믿고 있다. 애먼 장병들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장병들이 좋아하지도 않을텐데...

민통선 통제하는 군인들북한 포격도발로 남북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지난 8월 22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 남단에서 군인들이 민통선 내 정착주민을 제외한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 권우성


"군함이 두 동강 나고, 여기저기서 총기 사고가 나고, 수류탄이 터지고, 지뢰가 폭발하니 얼마나 무서우세요. 남 일 같지 않으시죠? 전역 날짜가 얼마나 남으셨나요? 하루하루가 쏜살같이 빨리 흐르도록 기도하겠습니다. 부디 살아남으시길 빕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이유를 당당히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아이의 글이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대학별, 학과별 병역 특례 분야가 어디인지 등에 대해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빠삭했다. 몇 해 전 전역한 삼촌이 "안 갈 수만 있다면, 안 가는 게 좋은 곳이 군대"라고 귀띔해주었다는데, 요즘 들어 부쩍 공감이 되는 이야기라고 했다.

여고생인 척하며 편지를 꾸민 아이도 있다. 분명 장난 섞인 짓이지만, 그래도 그럴듯한 이유는 댔다. TV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군 장병들이 여자 아이돌 그룹의 방문에 열광하는 모습을 봤다며, 자기래도 다 큰 남학생이 보내는 편지는 아무리 정성이 담겨 있더라도 읽기는 싫을 거라고 말했다. 병무청이 일괄 제공한 엽서에도 아이돌 그룹 에이핑크(A-pink)가 군복을 입은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나름 진지한 고민이 담긴 경우도 있다. 몇 해 전 가족과 함께 민통선 안으로 여행을 다녀왔던 기억을 살갑게 꺼내며, 휴전선 철조망 근처에도 가을이 왔을 테니 환절기 건강히 잘 지내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수신인 주소를 구체적으로 적지 않으면 지역 내 부대로 일괄 전달된다는 설명을 듣고는 순간 풀이 죽었다. 하긴, 따뜻한 남쪽 후방 부대로 전달될 편지에 주저리주저리 휴전선 이야기를 썼다면 이를 받아보게 될 장병은 또한 얼마나 황당할 것인가.

"받을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다짜고짜 편지를 쓰려니 내키지 않지만, 그래도 장병분들 덕분에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몇 년 후면 그 자리에 있게 될 테니, 장병이 된 마음으로 편지를 씁니다. 그런데 이게 과연 장병분 누군가에게 진짜 전달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제 전화번호를 끝에 적어놓았으니, 번거로우시더라도 받았다면 문자 한 통 날려주십시오. 그럼 고생하십시오."

이 아이는 수만, 수십만 장도 넘는 편지들이 과연 각 군부대로 전달이 될지를 의심했다. 한두 장도 아니고 우편을 통해서 발송하기란 불가능할 테고, 사과 박스나 포대 같은 곳에 담아 부대별로 '적당량'을 배분한다는 건데, 장병들의 손에 전해지기 전에 찢기고 버려지는 것들이 부지기수일 거라고 덧붙였다. 그저 행사를 위한 행사일 뿐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얼마 전 휴가 나온 형이 그러는데, 요즘 군대에선 전화나 인터넷 사용이 비교적 자유로워서 여자 친구들조차 손 편지를 거의 안 쓴대요. 혹 사진이라도 첨부된 여학생들의 알록달록한 편지라면 모를까, 똑같은 틀에다 똑같은 내용을 마지못해 숙제하듯 써서 보낸 위문편지에 어느 누가 위로를 받겠어요? 아마 군부대 내 폐지함과 소각장만 분주해질 걸요."

내키지 않는 편지가 쓰기 싫어서 차라리 장병들의 둔해진 머리라도 '회복'하라는 뜻으로 대신 어려운 수학 문제를 적었다는 한 아이는 이렇게 반문했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도, 기성세대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들 앞에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의 '버릇없는' 말을 듣고도 나무라기는커녕 맞장구칠 수밖에 없었다. 병무청 때문에 애꿎은 장병들까지 욕먹는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 아이는 화가 나 있었다.

"이것도 사업이랍시고 기획한 병무청 사람들은 중고등학교 다니는 자녀들이 없나 보죠? 학교마다 참여를 독려하기 전에 당신 자녀들에게만이라도 시행 후 예상된 반응을 물어봤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행사는 구상조차 되지 않았을 거예요. 정말 그 사람들은 이렇게 하면 학생들은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고, 장병들에게는 큰 힘이 될 거라 믿은 걸까요? 그렇다면 그들은 바보인 걸까요, 아니면 촌스러운 걸까요?"

○ 편집ㅣ박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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