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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롱도르를 둘러싼 미스테리와 논란들

발롱도르와 인연 없던 전설들... 화제와 논란이 된 발롱도르

등록|2016.12.15 12:51 수정|2016.12.15 12:52
지난 13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발표된 2016 발롱도르(Ballon d'Or, 황금공)의 주인공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1, 포르투갈)였다.

2008, 2013, 2014년에 이어 1년 만에 발롱도르 탈환에 성공한 그는 통산 3회 발롱도르를 거머쥔 요한 크루이프, 마르코 반 바스텐(이상 네덜란드), 미셸 플라티니(프랑스)를 넘어 역대 최다 수상 2위가 됐다. 역대 1위는 통산 5회(2009~2012, 2015년)를 수상한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다.

프랑스 축구전문지 <프랑스 풋볼>에 의해 1956년부터 시작된 발롱도르 시상은 한 해 동안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으로 축구선수라면 누구나가 받고 싶어하는 명예로운 상이다. 하지만 정작 '세계최고 선수'라고 불렸음에도 발롱도르 수상을 하지 못한 전설들이 있다.

펠레, 부폰, 앙리의 공통점

현역시절 월드컵 3회 우승(1958, 1962, 1970)을 비롯해 1291골을 넣었던 '축구신' 펠레(브라질)는 단 한차례도 발롱도르 수상을 하지 못했다. 엄밀히 말하면 발롱도르를 받을 수 없었다. 이유인 즉슨 1995년까지 유럽 국적의 선수들만 수상할 수 있는 기준이었기 때문.

1980년대 그라운드를 풍미한 '불세출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도 바르셀로나, 나폴리 등 유럽 등지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지만 펠레와 같은 이유로 발롱도르를 수상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반면 레알 마드리드에서 라리가 8회 우승, 유러피언컵(챔피언스리그 전신) 5회 우승을 기록한 '전설의 골잡이' 알프레도 디 스테파뇨는 아르헨티나 출신이지만 스페인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는 덕에 발롱도르 2회 (1957, 1959) 수상의 기록을 갖고 있다.

21세기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받는 지안루이지 부폰(이탈리아), 이케르 카시야스(스페인), 올리버 칸(독일) 등도 발롱도르와 인연이 없었다. 골키퍼 포지션에서 발롱도르를 수상한 선수는 구소련의 전설 레프 야신 뿐인데 그는 1963년 당시 22경기 무실점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긴 끝에 발롱도르를 차지하는 영예를 맛봤다.

이 밖에도 축구팬들의 뇌리 속에 전설로 기억되는 데니스 베르캄프(네덜란드), 바티스투타(아르헨티나), 티에리 앙리(프랑스), 데이비드 베컴(잉글랜드), 프란체스코 토티(이탈리아), 라이언 긱스(웨일즈) 등도 발롱도르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대륙으로 보면 아시아, 오세아니아, 북중미 출신 선수들은 아직까지 수상 기록이 없다. 국내선수로는 2002년 설기현(당시 안더레흐트), 2005년 박지성(당시 아인트호번)이 50인 후보에 오른 바 있고, 일본에서는 나카타가 아시아 선수로는 최다인 3번(1998, 1999, 2001) 50인 후보에 이름을 올리는데 만족해야 했다.

논란과 화제의 중심이었던 발롱도르

축구가 팀 스포츠 종목인 만큼 선수 개개인의 순위를 매기는 것은 언제나 논란이 따르기 마련이다. '올해의 선수'를 뽑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주관적인 견해를 배제하기 힘들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로 꼽히는 프란츠 베켄바워는 1974년 독일과 바이에른 뮌헨을 이끌고 서독 월드컵, 유럽피언컵, 분데스리가 우승을 이끌었지만 '토털사커의 아이콘' 요한 크루이프에게 밀려 발롱도르를 놓쳤다. 당시 베켄바워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크루이프를 자기와 동급 혹은 그 이상으로 평가하지만 그 해에 발롱도르를 빼앗긴 것은 이해하지 못한다"며 분루를 삼켜야 했다.

1999년 발롱도르는 '오른발과 왼발의 대결'이었다. '오른발의 마법사'라 불렸던 데이비드 베컴은 자로 잰 듯한 크로스와 프리킥으로 맨유의 트레블(리그, FA컵, 챔스) 우승을 이끌었고, '왼발의 마법사' 히바우두(브라질)는 브라질과 바르셀로나를 이끌고 코파아메리카 우승과 리그를 우승시키며 베컴과 함께 유력한 수상 후보로 꼽혔다. 물론 1999 발롱도르의 승자는 '왼발' 히바우두였다.

2004년 발롱도르는 축구팬들의 예상을 다소 빗나간 시상식이었다. 당시 발롱도르 수상자는 우크라이나 골잡이 안드레이 세브첸코. 그는 AC밀란을 이끌고 이탈리아 세리에A 우승과 득점왕을 거뭐쥐며 활약했다.

하지만 그해 유럽무대에서 보여준 강렬함과 퍼포먼스, 개인 성적 등 여러 정황과 지표들을 놓고 보면 티에리 앙리가 세브첸코 보다 압도적이었다는 것이 당시 전문가들의 중론. 앙리는 2003~2004 시즌 아스날을 이끌고 리그 무패 우승을 이끌었고 리그 득점왕, 유럽 골든부츠(유럽리그 최다 득점자)까지 싹쓸이하며 맹활약했다. 하지만 발롱도르 시상 결과, 앙리는 세브첸코는 물론 데쿠, 호나우딩요에 밀려 4위에 머물렀다.

2013년 발롱도르는 '미스테리'로 기억된다. 당시 발롱도르 최종 후보는 리베리와 호날두, 메시. 물론 그 중 가장 수상이 유력시 됐던 선수는 리베리였다. 그는 바이에른 뮌헨을 이끌고 분데스리가, UEFA 챔피언스리그, DFB 포칼컵(독일 FA컵)까지 트레블 우승을 달성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발롱도르 기자단 투표 결과, 리베리가 1위를 기록 중인 것이 유수 언론에 밝혀지며 수상이 확실시 되기도 했다. 하지만 시상식을 앞두고 FIFA(국제축구연맹)에서 투표자가 적다는 이유로 전례없던 투표 기간 연장을 시행했고, 기존에 이루어졌던 투표도 수정할 수 있게 하는 방침까지 내리며 파장을 몰고 왔다.

물론 투표 연장 기간 호날두는 스웨덴과의 월드컵 플레이오프 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 하며 리베리를 제치고 발롱도르를 품에 안는 행운을 맛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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