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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기 찔렀는데..." 한석규가 털어놓은 '섬뜩' 에피소드

[현장] 베를린영화제에서 극찬 받은 영화, <우상> 제작보고회

등록|2019.02.20 19:05 수정|2019.02.20 19:05

▲ 영화 <우상> 해외 포스터. ⓒ CGV 아트하우스


"지금 해야 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상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손꼽히는 영화 <우상>이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제68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파노라마 섹션에 공식 초청돼 현지의 뜨거운 반응을 얻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높아진 상황이다. 20일 서울 압구정CGV에서 진행된 영화 <우상>의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배우 설경구, 천우희와 이수진 감독은 베를린 영화제의 여운이 아직 남은 듯한 모습이었다.

설경구는 "베를린 영화제에는 처음 가 봤다. 천우희의 (붉은) 드레스가 워낙 강렬해서 레드카펫과 헛갈려 밟고 다닐 정도였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수진 감독도 "(폭발적인 반응을) 예상치 못했다. <한공주> 때는 영화제에 혼자 다녀야 했지만 이번에는 배우들과 함께해 외롭지 않았다. 함께 밤마다 독일 맥주도 마시고 여러 이야기를 하면서 재미있게 보냈다"고 전했다. 천우희 역시 "영화 첫 시사를 현지에서 하게 돼서 감격스러웠다. 무척 떨렸다"는 소감을 덧붙였다.

반면 스케줄 사정상 영화제에 참석하지 못하고 이날 제작보고회 자리에 나온 한석규는 "나만 빠지게 돼서 조금 섭섭했다. 후배 두 분에게 일임했는데 애를 많이 썼다. 감독님 미안하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13년 전부터 기획한 이야기

차기 도지사로 주목 받고 있던 정치인 구명회(한석규)는 어느 날 아들이 교통사고를 내고 도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목숨 같은 아들이 죽은 뒤 아버지 유중식(설경구)은 진실을 찾아 나서고 사건 현장에 함께 있었던 여인 련화(천우희)는 비밀을 간직한 채 사라져 버린다. <우상>은 이들이 맹목적으로 지키고 싶어 했던 '참혹한 진실'에 관한 이야기다.

<우상>은 지난 2014년 영화 <한공주>를 통해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서 호평 받았던 이수진 감독이 5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거장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베를린 영화제에서 영화를 보고 "당장 다음 달에 그의 차기작을 만나고 싶을 정도"라고 극찬했고,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자 관객들의 환호성과 기립 박수가 5분여간 이어졌다는 후문. 이날 공개된 1차 예고편 영상에서도 밀도 높은 이야기와 개성 넘치는 인물들의 면면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이수진 감독은 <한공주>를 만들기 이전부터 <우상>의 시나리오를 기획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을 보면서 그 시작점이 어디일까 한 번 고민해 본 적이 있었다. 그게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며 "13년 전이었고 <한공주>를 쓰기도 훨씬 전이었다. (제작이) 잘 안 됐다. <한공주>를 하고 난 다음에도 무거운 이야기보다는 가벼운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손이 계속 <우상> 쪽으로 갔다. 지금 해야 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천우희는 <한공주>에 이어 <우상>으로 또 한 번 이수진 감독과 손 잡았다. <한공주>로 그는 첫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은 물론 연기파 배우로 인정 받으며 충무로의 샛별로 떠올랐다. 천우희에게 이수진 감독과의 재회는 감격일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이수진) 감독님의 차기작을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배우로서도 그렇지만 관객으로서도 팬이었다. <한공주>에 이어서 <우상> 시나리오를 제게 건네주셨을 때 감격스러웠다. <한공주>는 제가 배우로서 성장할 수 있는 계기였기 때문에 감독님께 보답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우상>의 '련화'라는 캐릭터에 대해 연기적으로도 욕심이 났다. 촬영을 하기 전부터 열의가 불탔고 설렜다."

이수진 감독 역시 다시 만난 천우희와 다시 호흡을 맞춘 것에 대한 감회가 남달랐다고 털어놨다. 그는 "<한공주>에서는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다. 반면 <우상>은 촬영 전부터 천우희라는 배우에 대해 좀 더 깊이 알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한공주> 끝나고 4~5년 동안 이 배우가 어마어마한 성장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우희가 아니었으면 련화라는 캐릭터를 (누가) 소화할 수 있었을까 싶다"고 극찬했다.

뜨거운 연기 열정, 그러나 섬찟했던 촬영 에피소드
 

▲ 영화 <우상>의 한 장면. ⓒ CGV 아트하우스


한석규가 분한 구명회는 한의사였으나 대중의 인기를 얻으면서 정치로 진출한 인물로 도지사를 꿈꾼다. 그러나 아들의 뺑소니 사고 이후 그는 정치적 위기를 맞게 된다. 한석규는 '구명회'에 대해 "나쁜 놈"이라는 말로 입을 열었다. 이어 "'쇠가 본디 쇠였는데 남은 건 녹뿐이더라' 제가 예전에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구명회도 그런 인물이다. 쇠는 좋은 명검이 될 수도 있고 구명회 역시 세상을 호령하는 검이 되는 꿈을 꿨지만 결국 흉물스러운 녹덩어리로 남는다"고 덧붙였다.

제작보고회에서 공개된 예고편과 스틸 컷에서 설경구는 샛노란 머리로 눈길을 끌었다. 설경구로서도 연기 인생 최대의 이미지 변신인 듯했다. 그는 "(극중에서) 아들의 머리가 노랗다. 일체감도 느껴지고 부성애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아들은 지능이 낮은 성인이기 때문에 제 생각에는 혹시 잃어버릴 수도 있어서 머리 색깔로 통일감을 주려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설경구는 아들을 잃고 진실을 파헤치는 평범한 남자 유중식 역을 맡았다. 그는 "아들을 잃게 된 후 원인을 찾기 위해 쫓아 다니지만, 그 과정에서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 하는 '찰나의 순간'이 생긴다. 그걸 좇다가 결국 허상이라는 걸 알게 되는 인물이다"라고 소개했다. '중식'이라는 특이한 이름에 대해서는 "이름이 재미있어서 감독님에게 '왜 중식이냐. 혹시 점심이라는 뜻이냐'라고 물었더니 진짜 맞다더라. 허겁지겁 여유 없이 먹는 점심 같은 인물"이라고 비유해 설명했다.

이날 한석규는 촬영 도중 있었던 섬뜩한 에피소드를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제가 극중에서 련화에게 해를 가하려고 주사를 찔러 넣는 장면이 있다. 미리 (어디에 찌르기로) 약속이 돼 있었고 '쿡' 찌르면 주사기가 쑥 들어가야 한다. 안경도 벗고 연기하면서 잘 안 보여서 주사기가 약속된 대로 들어갔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다). 천우희가 발버둥을 치는데 나는 모르고 계속 연기했다. 그 순간에 '이거 잘못됐다'고 말했다면, NG인데 그 말을 안 하더라. 배우들이 이렇게 미련할 만큼 연기에 애를 쓴다"고 천우희의 연기 열정을 알렸다.

"선택의 기준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데다 한겨울에 촬영이 진행됐던 만큼 촬영현장은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수진 감독과 설경구는 모두가 예민했던 촬영 현장에서 한석규 덕분에 분위기가 유연해질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 감독은 "한석규는 전체를 본다. 가끔은 제작자 같기도 하다. 저는 촬영 전날부터 내일 촬영할 것을 여러 번 복기하고 긴장한 상태로 현장에 온다. 그런데 한석규만 만나면 현장에서 긴장감이 사라지더라. 유연하게 해주신다"고 말했고 설경구 역시 "(한석규는) 후배랑 함께 연기할 때도 배려하고 유연하게 대한다. 나는 성격이 급한 편인데 그런 나를 '워워' 하면서 눌러주셨다"고 털어놨다. 이에 한석규는 "나도 예민해져 있는 상태여서 후배들을 '야야' 하고 다독였다. 아쉬웠던 점은 각자 맡은 파트가 있어서 합을 많이 맞추지는 못한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한석규는 <우상>을 통해 관객이 '선택의 기준'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인생에 매우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영화 촬영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그때 내 선택의 기준은 무엇이어야 할까. 영화에는 전부 바보같은 결정을 하는 인물뿐이다. 단 한 명도 제대로 된 선택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파국을 맞는다. 어떤 한 사람만이라도 올바른 선택을 했다면 이야기는 (이렇게) 진행이 안 됐을 것이다. 그 점을 관객들이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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