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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바로 김대중... 재평가가 절실한 까닭

[김대중 대통령 서거 12주기] 대선 앞두고 '유능한 정치가,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을 강조하며

등록|2021.08.18 07:36 수정|2021.08.18 07:36

▲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9년 6월 11일 연설하고 있다. 그는 생전 마지막 연설에서 '행동하는 양심'이 될 것을 촉구했다.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김대중 대통령 서거 12주기가 되는 2021년 8월 18일, 이제는 김대중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김대중은 국제적으로 대단히 높은 평가를 받는데 국내에서는 생전에도 그랬지만 사후에도 여전히 저평가받고 있다.

국내에서 저평가를 받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보수 진영뿐만 아니라 소위 민주-진보 진영 내에서도 김대중에 대한 무지와 부정적 편견의 뿌리가 깊다는 것이 그 핵심 원인 중의 하나다. 그렇다 보니 김대중의 정치적 가치와 유산은 아직도 제대로 정리되지 못했다. 그래서 '김대중 정신 계승'이라는 표현은 쉽게 들을 수 있지만 정작 그 내용이 무엇인지 알기란 쉽지 않다.

이와 같은 문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 이는 학문적 해석과 역사적 평가와 관련된 정치담론, 역사정치 차원에서 필요할 뿐만 아니라 현실 정치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김대중은 이승만-박정희로 이어지는 보수적 국가발전노선에 대한 총체적이면서도 전면적인 대안(노선, 프로그램, 정책)을 정립했으며, 정권교체를 통해서 이를 국정에 직접 반영했다는 점에서 민주-진보 진영의 뿌리가 되는 정치가다. 그래서 김대중에 대한 평가의 내용과 방향은 그 자체가 정치적인 의미를 갖는다. 특히 2022년 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김대중 재평가는 현실정치 측면에서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위기 극복과 창조적 발전의 역사 세 장면
 

▲ 책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 표지. ⓒ 시대의창


그러면 김대중의 어떠한 점이 현 시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을까? 필자는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위해서 김대중의 사상과 활동 그리고 업적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라는 책을 썼다.

필자가 이 책에서 강조한 내용은 '유능한 정치가, 성공한 대통령'으로서 김대중의 면모다. 필자가 김대중에 대해서 '유능한 정치가,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정의한 이유는 김대중이 오랜 기간 동안 민주적인 리더십으로 위기극복과 창조적 발전의 역사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이와 관련된 내용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에 몇 가지 내용과 사례를 거론한다.

먼저 위기극복 리더십에 대한 내용이다. 김대중은 평생 수 많은 위기를 겪었는데 그중에는 극단적 위기 상황도 여러번 있었다. 군사독재 정권에 대한 투쟁 과정에서 여러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실천을 이어갔다.

김대중은 민주화 세력이 처한 국내외적인 여건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통해서 야당-재야 학생운동 세력의 연합, 미국의 협조와 중산층의 지지 획득을 위한 다양한 전략을 마련해 결국 불가능해보였던 민주화 이행에 성공했다. 또한 1994년 1차 북핵위기가 일촉즉발의 전쟁위기로 악화했을 당시 김대중은 문제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일괄타결론과 카터 방북 카드를 제시했다. 이것이 실현돼 전쟁위기가 해소될 수 있었다.

김대중의 위기 극복 리더십은 대통령이 된 직후에도 크게 빛났다. 김대중은 1997년 12월 15대 대선에서 당선된 직후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한국전쟁 이후 최고의 국란으로 불리운 IMF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총력을 다해야 했다. 그와 같은 위기극복 리더십을 통해 한국경제는 국가부도위기를 넘겼으며, 경제회생을 위한 4대분야 구조개혁에 성공해 한국 경제의 새로운 발전과 도약의 기반을 마련했다.

특히 당시 김대중이 국가위기 상황에서 배제와 혐오의 정치를 동원하지 않고 자유, 민주, 개방적인 리더십과 전략을 동원했다는 사실은 대단히 인상적인 지점이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전례없는 대규모 실업사태가 발생하는 상황 속에서도 김대중은 최루탄 사용을 금지하고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허용했다. 그러면서 노사정위원회 등을 통한 민주적인 방식으로 갈등을 치유하고 문제해결을 도모했다. 이와 같은 방식이 효과를 내 한국은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이것은 기존의 보수 정치에서는 볼 수 없었던 현상이었다.

그 다음으로 실용적이고 생산적인 정치에 대한 내용이다. 김대중은 엄혹한 상황 속에서도 실사구시에 입각한 미래지향적인 정치를 위한 감각과 실력을 갖췄다. 그래서 김대중은 대통령이 된 이후 21세기 한국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지식정보(IT)와 문화를 강조하며 IT강국 건설과 문화강국 및 한류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또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도입하고 4대 사회보험 적용의 보편화와 확대를 이뤄내 한국이 복지국가가 되도록 했다.

그리고 김대중은 외교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 외교의 최고 전성기를 이뤄냈다. 이는 국익위주의 현실주의적인 실용외교의 위대한 성과였다. 김대중의 실용적 면모는 정치적으로 반북주의와 반일주의 모두를 배격한 것에서도 확인된다. 김대중의 유명한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의 조화'라는 말은 실용적이고 생산적인 정치에 대한 그의 확고부동한 신념을 함축한다.

김대중 리더십

이러한 김대중 리더십의 성격을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미래지향적 리더십이다. 그래서 김대중은 긍정적이며 진취적인 인식과 태도를 강조했다. 같은 사안이라도 부정적으로 보기보다 긍정적으로 볼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현실을 극복해나가는 진취적인 태도를 강조했다.

둘째, 실사구시형 리더십이다. 김대중은 관념에 치우친 인식과 태도를 비판하면서 실질을 중시했다. 김대중이 문제제기에 그치는 정치가 아니라 문제해결형 정치를 지향한 것도 이와 같은 정치관과 관련이 있다.

셋째, 대통합의 리더십이다. 김대중은 화해와 관용이 진정한 용기이며 이것이 현재와 미래의 발전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대중은 구원(舊怨)에 사로잡혀 있어 갈등과 반목이 지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대통합의 화해, 관용의 정치를 강조했다.

전체적으로 볼 때 김대중은 막스 베버가 정치인에게 필요한 윤리로 강조한 책임윤리와 신념윤리, 그리고 정치인에게 필요한 소양으로 강조한 열정, 책임감, 균형 감각을 모두 갖춘 뛰어난 정치가다. 또한 마키아벨리가 정치가의 중요한 자질로 강조한 사자와 같은 용기와 여우와 같은 지략(꾀)을 갖춘 유능한 정치가였다. 김대중은 망원경을 통해 거시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현미경을 통해 미시적이면서도 세부적인 전략을 세우면서 용기와 인내를 갖고 이를 관철시키는 전략가이자 실천가였다.

또한 김대중은 관료를 민주적으로 통제하면서 효과적으로 리드하는 정치력을 발휘했다. 김대중은 국정 전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정치적 비전과 가치를 실현해나가는 데에 능숙한 대통령이었다. 그래서 집권 5년의 짧은 기간 동안 여러 분야에서 패러다임적 전환을 이뤄낼 수 있었다. 그래서 김대중은 '유능한 정치가'였으며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할 수 있다.

'유능한 정치가, 성공한 대통령' 담론의 의미는 무엇인가?
 

1971년 대선 당시 김대중의 모습민주화 투쟁을 이끌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모습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그러면 필자가 규정한 김대중 재평가의 핵심 내용인 '유능한 정치가, 성공한 대통령' 담론은 현 시점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것은 역사정치(담론정치)와 현실정치 두 측면에서 모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여기서 먼저 역사정치(담론정치) 관점에서 그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한국 사회의 통념으로 자리잡은 '무능한 정치, 실패한(불행한) 대통령' 담론을 전복시키는 것이다. 지식인과 언론 그리고 일반인들이 한국 정치를 평가하고 해석할 때 '유능과 성공' 담론을 통해 정치와 정치가를 평가하는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지독한 정치혐오론의 소산이며 자학적 역사관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부정적인 담론이 압도한다.

더욱 문제는 이것을 객관적인 진단과 평가로 인식하는 문화가 뿌리 박혀 있어서 쉽게 개선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통해서 '유능하고 성공한 정치' 담론을 강조한다는 것은 기존 통념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그리고 김대중은 민주적인 리더십으로 '유능하고 성공한 정치'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이 중요하다. 김대중은 수십 년 동안 이어진 보수우위 정치구조에 끊임없이 도전하면서 결국 최초로 평화적 정권교체에 성공해 집권능력을 보여줬다. 또한 여기에 더해서 대통령으로서 통치능력까지 보여주었다. 특히 5년 단임제 대통령으로서 한국 현대사의 대전환을 이뤄냈다는 점도 대단한데 이것을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에 충실한 민주적인 리더십을 통해서 이뤄냈다는 점은 더욱 대단하다.

이는 보수 진영과의 역사논쟁에 있어서 중요한 함의가 있다. 보수 진영은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한 이승만-박정희의 과오를 고려하여 몇몇 역사적 성과를 강조하면서 권위주의 리더십이 불가피했다는 논리를 제시하곤 한다. 그러면서 민주-진보 세력이 실질보다 관념에 치우친 비현실적 이상주의에 경도되어 구체적인 성과를 창출하는 생산적인 리더십과 행정능력이 약하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민주적인 리더십을 통해 '유능한 정치가, 성공한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준 김대중의 성과는 보수 진영의 공세를 반박할 수 있게 한다. 그런 점에서 김대중 재평가는 역사정치(정치담론)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2022년 20대 대선에서 김대중 리더십이 필요한 이유

그리고 김대중 재평가는 현실정치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김대중은 여전히 우리의 많은 영역에서 큰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현실정치적 의미는 더하다.

차기 대통령과 집권 세력은 불가항력적인 고난도 난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차기 정권은 델타변이에 따른 코로나 팬데믹의 지속, 미중갈등의 격화 등 외부 변수에 의한 중대한 구조적 도전에 대응해야 한다. 아주 어려운 과제로서 이에 잘못 대응하게 되면 우리나라의 운명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크게 흔들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국가적 난제 해결을 위한 지혜를 얻는 데 있어 김대중 리더십, 김대중의 업적은 중요한 배경이 될 수 있다.

역사를 통해서 현재와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지혜를 얻고자 할때 많은 사람들이 다른 나라의 인물를 찾거나 우리나라의 사례를 찾을 때에는 근대 이전의 역사적 인물을 찾는 경우가 많다.

물론 다 의미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사례로서 가장 가까운 시점에 속한 인물을 선택한다면 더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김대중이 그와 같은 경우에 해당한다. 보수 진영은 박정희 그리고 이승만까지 포함해서 이와 같은 작업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두 인물은 현대 민주주의와 맞지 않는 독재자이기 때문에 그들의 리더십을 현 시점에서 온고지신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민주-진보 진영의 뿌리이면서 현재 대한민국 발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업적을 남긴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는 현실정치적인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사료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최근에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한 김대중연구서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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