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조치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자영업자에 피해를 보전해주자는 ‘손실보상제’의 소급 적용을 놓고 기획재정부와 중소기업벤처부 등 정부는 강한 반대 의견을 보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야당과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법 시행 이전의 피해까지 소급해 보상해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4월 국회에서 손실보상제법 통과는 무산됐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지난 27일 중소벤처기업소위원회를 열고 손실보상법을 논의하려 했으나, 회의 자체를 열지 못했다. 정부와 여당 초선 의원, 야당의 견해 차가 크기 때문이다. 민주당 초선 의원 24명은 정부가 영업제한을 시행한 지난해 8월부터로 ’100% 소급 적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국민의힘은 소급 적용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하지만 민주당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민주당 지도부는 소급 적용은 불가하다는 정부의 강한 반대 의견을 의식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 같은 견해 차 탓에 당초 이달 중으로 손실보상법을 우선 처리할 방침이었는데, 5월에 다시 논의할 방침이다.

① 소급 적용 범위·대상 설계 곤란

재정당국인 기획재정부와 소상공인 주무부처 중소기업벤처부 등 정부가 소상공인 손실보상법 소급 적용을 반대하는 논리는 크게 세가지다. ▲소급 적용 범위·대상자 지정의 어려움 ▲앞선 재난지원금과 중복 여부 ▲재원 마련과 국가채무 증가 등이 손실보상법을 소급 적용하기 곤란하다는 것이다.

우선 정치권 일각의 주장대로 법 통과 이전부터 소급 적용을 할 경우, 소급 적용 대상 업종, 적용 시점을 어떻게 정하느냐를 놓고 오랜 시간을 소요할 수 있다고 정부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자영업자들에 대한 보상 기준을 정하는 데 시일이 더 소요되고, 이로 인해 자영업자 지원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소급적용의 경우 받는 분과 못 받는 분의 균형 문제가 있어 자칫 설계가 잘못되면 심각한 사회적 갈등도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소급 적용 시기를 코로나19 발생 직후부터 해야하는 것인지, 언제 대비 매출이 줄어든 소상공인이 손실 보상 대상인건지 등은 아주 복잡한 문제”라며 “빠른 피해 지원을 하는 데에 오히려 소급 적용이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YONHAP PHOTO-2313> 중대본 회의장 들어오는 홍남기 총리직무대행, (서울=연합뉴스) 김승두 기자 =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이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2021.4.28 kimsdoo@yna.co.kr/2021-04-28 08:49:10/ <저작권자 ⓒ 1980-202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② 앞선 재난지원금과 중복 지원

소급 적용이 정부의 앞선 소상공인 피해 지원 정책들과 중복된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앞서 지난해부터 집합금지업종, 집합제한업종 등 방역 조치에 어느 수준으로 영향을 받는지 따라 소상공인들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이를 위해 지난해 정부는 작년에만 추가경정예산안을 4차례 편성했다.

여기에 더해 소상공인 대상 코로나 대출 유예, 긴급 자금 대출 등의 금융 지원도 있었다는 게 정부의 논리다. 정부는 코로나19가 발생한 직후인 지난해 4월부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을 위해 대출 원금과 이자상환 의무 등을 유예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대출 원리금 유예 조치는 6개월씩 두 차례 연장됐다.

기재부 관계자는 손실보상제 소급적용을 주장하는 정치권을 향해 “지금까지 해왔던 이 모든 조치가 손실을 보상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손실보상법을 소급 적용할 경우 앞서 지급한 자금들과 중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27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정부가 마치 과거 피해에 대해 전혀 지원하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산자위 여당 간사인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앞서 “그동안 지원해준 건 피해 지원 형태였는데, 이건 정확하게 법을 만들어 손실보상을 해주는 것이어서 신중한 문제”라며 “(소급 적용을 하면) 단순히 재정이 많이 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혜를 받는 사람들과 규모가 줄어들 수 있어 형평성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한국 창업생태계 변화 분석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③ 적자국채 100조원 달할텐데...재원 마련 난감

손실보상법을 소급 적용했을 때 재정 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는 점도 정부가 반대하는 이유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손실보상법 가운데 비용이 추산된 법안은 민병덕 의원안이다. 손실 매출액의 50~70%를 정부가 지원하는 내용이 골자다.

민 의원 추산에 따르면 손실보상법 시행에 드는 비용은 1개월에 약 24조7000억원이다. 이를 3개월로만 소급 적용해도, 약 74조1000억원이 든다. 야당과 민주당 초선의원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됐던 지난해 8월부터 올해 2월까지 6개월 동안 손실을 보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 의원이 발의한 법안 추산대로라면 150조원 가량이 소요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경기침체로 세수 여건이 좋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먼 손실보상에 소요되는 비용을 대부분 적자국채 발행을 통해 마련해야 한다. 적자국채가 150조원 가량 급증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만큼 국가채무가 급증하게 된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올해 1분기가 지나기도 전에 4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추경이 국회를 통과했다. 14조9000억원 규모의 재정이 소상공인·고용취약계층 긴급 피해지원에 투입됐다. 경제 위기로 증세가 어려운 환경에서 재원을 마련하느라 정부는 적자국채를 9조9000억원 찍어 재원을 충당했다. 적자국채는 언젠가는 갚아야 할 나랏빚이다. 올해만 정부는 본예산 기준으로 적자국채를 93조5000억원 한도로 발행할 계획이었는데, 코로나19 장기화로 2차, 3차 추경이 편성되면 이 규모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미 연간 100조원 가량 늘어날 적자국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는 상황을 정부에서는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한 피해 지원을 위해 59년만에 4차례나 추경을 편성했다. 이때 재원의 상당 부분을 적자 국채로 조달했다. 3월 17일 1차 추경(11조7000억원), 4월 30일 2차 추경(12조2000억원), 7월 3일 3차 추경(35조1000억원), 9월 22일(7조8000억원)까지 총 네번, 60조원을 넘는 규모로 편성됐다.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핵심으로 했던 1차 추경을 제외하고는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와 집합 금지·영업제한 등에 따른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 지원이 목적인 추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