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줄 몰랐다"…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대표적 사건은?

2020-09-1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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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방 감금 사망사건, 광진구 클럽 사건 등

[사진=연합뉴스]

"때린건 맞지만, 죽을 줄 몰랐습니다"


사람을 죽도록 때려놓고 죽을 줄 몰랐단다. 가해자들이 하나같이 내놓는 변명이다. 하지만 법원은 이들에게 '미필적 고의로 인한 살인죄'를 적용하고 있다. 

최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 적용된 사건은 '어린이 가방 감금 살인'이다. 40대 여성인 A씨는 9살인 동거남 아들을 7시간가량 여행용 가방에 가둬 숨지게 해 살인과 아동복지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됐고, 지난 16일 선고 공판에서 징역 2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일련의 행위로 피해자가 사망했을 것으로 보이는 등 피고인에게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며 살인죄를 적용했다.
A씨는 사소한 거짓말을 한 동거남 아들 B군을 여행용 가방에 감금하고 자신은 물론 자신의 자녀들을 가방에 올라가게 해 압박했다. 당시 23kg이었던 B군은 무려 160kg 압박을 받았고, 온몸을 구긴 채 가방에 있던 B군은 '저산소성 뇌 손상'으로 사망했다. 특히 A씨는 아이가 숨을 쉬기 어렵다고 호소했지만 가방 안에 헤어드라이기로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고, 가방 틈을 테이프로 막기도 했다. 

검찰 역시 앞서 열린 결심공판에서 "피고인은 좁은 가방에 감금된 아이를 압박하며 피해자 인격과 생명을 철저히 경시했다. 작위와 부작위에 의한 살인의 미필적 범의가 함께 발현한 사건"이라며 무기징역 형을 구형한 바 있다. 

지난해 9월 25일부터 다음 날까지 20시간 넘게 인천의 한 빌라에서 첫째 의붓아들을 묶은 뒤 목검으로 100여 차례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20대 남성이 지난 5월 구속 기소됐다. 이유는 의붓아들이 자신을 무시하고 거짓말을 했거나 동생을 괴롭힌다는 것 때문이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공소사실에 관해 전체적으로 인정하면서도 사망한 피해 아동을 살인할 고의는 없었다고 했다. 여러 증인 증거를 조사한 결과 피고인에게 적어도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며 징역 22년을 선고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월 1일 서울 광진구의 한 클럽에서 태권도 4단 유단자 3명은 피해자와 시비가 붙자 밖으로 끌고 나와 10여 분간 무차별 폭행을 했다. 잔혹한 폭행에 피해자는 두개골 손상을 입었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당시 모습은 CCTV에 고스란히 담겼다. 가해자들은 의식을 잃은 피해자의 머리를 축구공 차듯이 차는가 하면, 정신을 차리지 못한 피해자를 길거리에 내버려 둔 채 태연하게 편의점으로 가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자택으로 귀가했다. 다음날 체포된 이들은 "때린 건 맞지만 죽을 줄은 몰랐다"고 항변했다.

지난 6월 진행된 재판에서 재판부는 "사정을 종합하면 피고인들에게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 비록 처음부터 살해 공모를 안 했어도 폭행 당시 사망할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보이므로 암묵적 살인 공모가 인정된다"며 9년형을 선고했다. 

앞서 검찰 역시 결심공판에서 "가해자 모두 태권도 유단자로, 태권도 시합 때 머리보호구를 써도 발차기를 당할 경우 의식을 잃고 쓰러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급소가 집중된 머리와 상체 부위에 발차기를 했다. 또한 피해자가 의식이 없음에도 재차 얼굴에 발차기를 한 뒤 방치하고 현장을 이탈했다. 이들은 자신의 행위로 사망 가능성, 위험이 있음을 미리 인식했다고 보기 충분하다"며 살인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보인다며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사진=연합뉴스]

미필적 고의로 인한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사건도 있다. 구급차를 고의사고로 막아 환자를 숨지게 한 택시기사다.

지난 6월 서울 강동구의 한 도로에는 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암환자가 타고 있는 사설 구급차가 이동 중이었다. 이때 택시와 접촉 사고가 일어났고, 구급차 운전자는 "병원 이송 후 사건을 해결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택시기사는 "저 환자 죽으면 내가 책임질게. 사고를 처리하고 가라"며 이송을 막았다. 이 다툼은 10여 분간 이어졌다. 환자는 그 뒤 응급실로 옮겨졌으나 5시간 뒤 사망했다. 

해당 사건이 알려진 후 택시기사에게 미필적 고의로 의한 살인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에 대해 한문철 변호사는 "당시 10여 분만 일찍 도착했더라면 살릴 수 있었는데, (A씨로 인해) 시간이 지체돼 돌아가셨다는 등의 사망 원인이 의사를 통해 입증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승진 변호사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가 인정되려면 (A씨가) 상대가 죽을 수도 있다는 점을 확실히 인지하고,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는 점 등이 인정돼야 한다"며 인과관계가 입증돼도 고의가 있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에 과실치사죄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다고 반대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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