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친화도시는 없다

2020.10.10 03:00 입력 2020.10.10 09:56 수정

최근 인천시의회로부터 e메일 한 통을 받았다. 작년 말 제정된 ‘인천광역시 장애인친화도시 조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에 대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하려 하는데 발제를 맡아 달라는 내용이었다. 여성친화도시나 아동친화도시 같은 말은 들어봤으나 장애인친화도시라는 말은 다소 생소했다.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저자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저자

자료를 찾아보니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장애인친화도시 조례 제정의 흐름이 형성되고 있었다. 작년 상반기에 대구시, 하반기에 경기도, 경북 김천시, 인천시, 그리고 올해 상반기에 전남 목포시에서 비슷한 이름과 내용을 지닌 조례가 제정되었다. 예상컨대 이런 흐름은 앞으로 일종의 유행처럼 좀 더 확산될 것이다. 지자체 차원에서 장애인의 권리에 관심을 두고 조례를 제정하는 건 기본적으로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볼수록, 과연 이 조례가 장애인의 삶에 실질적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의구심을 지우기 어려웠다.

인천 장애인친화도시 조례에서 규정한 5가지 기본 사항은 도시기반시설에 대한 장애인의 안전성·편리성·접근성, 교통수단에 대한 장애인의 이용 편의성, 여가 및 사회활동에서의 장애인 접근성, 장애인 의료서비스 접근성, 장애인에 대한 차별 인식 개선이며, 시장은 이런 내용이 포함된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이 5개년 계획은 기존의 장애인 편의시설, 이동권, 차별금지 관련 법률에 따른 의무 사항과 이에 기반해 만들어진 인천시의 ‘장애인 등의 편의시설 사전검사에 관한 조례’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에 관한 조례’ ‘장애인차별금지 및 인권보장에 관한 조례’ 등에서 다뤄질 내용을 재탕하는 것에 그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새롭게 확산되고 있는 장애인친화도시 조례가 실질적인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어떻게 방향을 설정해야 할까? 현재의 도시들이 장애인 친화적이지 않고 오히려 적대적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소는 다름 아닌 장애인시설이다. 대한민국은 지역사회로부터 장애인의 삶을 격리하는 시설이 전국 곳곳에 존재하고, 그곳에 여전히 3만여명의 장애인이 수용되어 있는 ‘시설사회’다. 그런 시설사회에서 장애인친화도시란 명명은 일종의 자가당착이자 기만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장애인친화도시 조례는 기존 정책들을 적당히 재조합하는 방식을 넘어, ‘탈시설 도시’의 이념과 지향을 명확히 하고 이에 따른 5개년 계획을 수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미흡하나마 2013년부터 탈시설 5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시행해 온 서울시는 “탈시설은 장애인 인권정책이 지향하는 궁극적 목표”임을 분명히 한 바 있다. 그래도 이런 인식이 있었기에 장애인시설 신규 입소를 엄격히 제한하는 한편, 탈시설 장애인이 자신의 명의로 직접 계약을 맺는 ‘장애인 지원주택’, 탈시설을 개인에서 시설 단위로 확대하는 ‘장애인거주시설 변환사업’ 등 전향적인 정책을 낼 수 있었다. 철학자 고병권은 시설사회를 “삶에 대한 포기가 존재하고 생명에 대한 관리를 누군가에게 의탁해야 하는 사회”라고 규정한 바 있으며, 시설은 장애인을 배제하는 지역사회와 동전의 앞뒷면 혹은 거울상의 관계에 있다. 이 같은 시설사회가 유지되는 한, 장애인친화도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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