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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반려동물 박제도 의뢰 오지만 정말 소중하다면 묻어줘야죠"…윤지나 박제사[W인터뷰]

이진한 기자

입력 : 
2022-02-18 17:15:08
수정 : 
2022-02-18 22:2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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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end Interview] 윤지나 서울대공원 동물원 박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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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나 박제사가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 표본 제작실에서 설표의 박제 표본을 제작하고 있다. 윤 박제사는 "박제 작업은 생명을 다한 동물을 우리 눈앞에 다시 살려내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승환 기자]
어두운 수장고의 불을 켜는 순간 거대한 시베리아 호랑이 두 마리가 도약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 위로는 맹금류를 비롯한 각종 새가 자세를 곧추세우고 앉아 있었다. 이곳이 박제 표본을 보관하는 공간임을 알면서도 언제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은 생동감에 마음 한 구석이 위축됐다. 그러나 표본에 한 발 다가서자 그 같은 감상은 곧 경탄으로 바뀌었다.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모피의 감촉에 이들이 어떻게 야생에서 생존할 수 있었는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호랑이 두 마리와 수명을 다한 동물들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은 인물은 윤지나 박제사(34). 올해로 만 10년의 경력을 쌓은 그는 서울대공원 소속 박제사로 이곳 동물원에서 삶을 마감하는 각종 동물들에게 '제2의 삶'을 선사하고 있다. 최근 서울대공원 작업장에서 만난 그는 "한국 사회에서 '박제'라는 단어는 아직 부정적 이미지가 더 큰 것 같다. 그러나 박제는 새로운 생물자원을 만드는 과정"이라며 "자연사한 멸종 위기종 동물의 표본을 제작하고 이를 보존함으로써 후대 사람들이 동물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강조했다.

―박제사는 어떤 직업인가.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생을 마감한 동물들의 표본을 제작하는 사람이다. 현재 서울대공원 소속인 만큼 동물원에서 죽은 동물을 주로 맡는다. 동물 가죽을 보존해 살아 있는 것처럼 만드는 박제 외에도 유골 등 뼈를 이용한 골격 표본을 자주 제작한다. 표본 중에는 곤충 건조 표본과 포르말린 등을 사용한 액침 표본도 있다. 그러나 곤충 표본 제작은 전담인력이 따로 있고, 액침 표본은 동물원에서는 거의 만들지 않는다. 또 제작한 표본이 상하지 않도록 온습도 등을 조절하고 관리하는 일도 박제사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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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 과정이 궁금하다. ▷마네킹에 가죽을 입히는 식이다. 동물 가죽을 최대한 손상 없이 벗기고 가죽에 남은 살점 등을 제거한다. 이를 '겸도'라고 하는데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준비된 가죽은 소금으로 부패 방지 처리를 하고 화학약품 등을 사용해 가죽이 유연해지게 보존 작업을 한다. 실제 모습을 바탕으로 생동감 있는 자세를 연출하기 위해 사전에 동물의 습성을 공부한다. 해당 동물을 맡았던 사육사와도 소통한다. 동물원에서 제작하는 박제 표본 상당수는 디오라마 기법(풍경·그림 등을 배경으로 축소 모형을 설치해 특정한 장면을 만들거나 배치하는 것)으로 만들기 때문에 중요하다. 가죽은 실과 바늘로 봉합하는데 이때 모양이 틀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눈 주위나 코 주변처럼 색이 바래기 쉬운 부분은 원래 동물의 색으로 '메이크업'한다.

―그럼 박제 표본에는 뼈가 없나. ▷예전에는 마네킹 대신 뼈가 많이 쓰였다. 최근에는 두개골을 비롯한 뼈가 하나의 표본이자 학술자료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뼈는 사용하지 않는다. 이빨도 치과에서 하듯 본을 떠 따로 제작한다. 안구는 보존할 수 없어서 유리나 아크릴 등으로 만든 의안을 수입해 사용하고 있다. 많은 관람객이 박제 표본을 보면 무엇이 진짜 동물의 것인지 궁금해한다. 털과 발톱, 수염 정도만 동물의 것이고 나머지는 인위적으로 만든다고 보면 된다.

―지금까지 다양한 동물을 만났겠다. ▷처음 박제 표본을 만든 동물은 2011년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인턴으로 근무했을 때 작업한 바다쇠오리다. 이후 서울대공원 소속으로 표본 약 300점을 제작했다. 여기에는 박제 표본 외에 골격 표본과 모피 표본도 포함된다. 국립생물자원관에서 만들었던 표본까지 합치면 700점 정도 되는 것 같다. 박제 표본을 만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세부 전공'이 생긴다. 내 주력 분야는 포유류다. 그중에서도 고양잇과 동물을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고양이를 오래 키우기도 했고, 대형 고양잇과 동물의 힘과 유연성에 매력을 느껴 특히 흥미를 갖고 작업한다. 동물원에서 일하는 박제사로서 어떤 동물을 자주 한다고 꼽기는 어렵지만 수달과 호랑이를 네 마리씩 만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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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를 작업할 때는 힘들지 않았나. ▷박제 표본을 제작하기에 쉬운 동물은 사실 없다. 크기가 작으면 체력적으로 편하지만 가죽 두께가 얇아 세밀한 작업이 필요하다. 호랑이 박제 표본 제작은 그런 면에서 체력적으로 힘든 작업이었다. 특히 자세를 연출할 때 한 발이나 두 발로 땅을 딛고 서 있는 모습을 기본으로 삼기 때문에 뼈대 작업에 용접이 필요하다. 육체적으로 고생한 만큼 당시 작업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최근에도 '검은 호랑이해' 임인년(壬寅年)을 맞아 시베리아 호랑이 '강산'이를 표본으로 제작했다. 강산이는 2019년 서울대공원에서 15세 나이로 자연사했다.

―그 밖에 어려웠던 동물은 무엇이 있나. ▷지금 작업하고 있는 설표도 쉽지 않다. 생김새가 고양잇과 동물과 은근히 달라 표현이 어렵다. 설표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동물이라 박제 표본을 제작할 기회가 많지 않다. 어쩌면 지금 작업이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설표 표본 제작일 수 있다. 개체 수 보호 등으로 한국 어린이들이 살아 있는 설표를 볼 가능성이 적다. 표본 자료로서의 활용도나 가치가 높아 더욱 마음이 쓰인다. 이 밖에 기린 박제 표본을 제작할 때도 기억난다. 새끼 기린이었는데도 키가 너무 커서 작업실에서는 만들기 어려워 결국 외주를 맡겼다.

―특별한 사연이 있던 동물도 궁금하다. ▷2005년 스라소니와 함께 북한 평양중앙동물원에서 늑대 한 쌍을 들여왔다. 북한에서는 이들을 말승냥이(토종 늑대의 한 종류)라고 불러 서울대공원에서도 말승냥이라고 칭했다. 그 말승냥이가 죽어 박제 표본으로 제작한 적이 있다. 바닥에서 장난스럽게 뼈를 뜯어 먹는 모습으로 만들었는데, 그 모습에 동물원에서 지냈던 시간이 자연스럽게 담겨 있어 박제사로서도 뿌듯했다.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을 표본으로 만들 때는 사육사들과 함께했던 시간까지 담으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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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을 박제해달라는 요청은 없었나.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1년에 다섯 번 정도 빈도로 문의가 온다. 반려동물이 죽었다며 울면서 전화를 주신다. 전화를 받을 때마다 서울대공원에 소속된 박제사로서 맡을 수 없다고 정중하게 거절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공공기관에 소속되지 않았더라도 의뢰를 수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반려동물을 키워본 입장에서 동물이 죽고 난 뒤 심정적으로 얼마나 힘든지 잘 안다. 하지만 박제 표본으로 남기기보다는 땅에 묻어 자연으로 돌아가게 도와주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표본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반려동물의 특성과 의뢰인의 추억은 다를 수밖에 없다.

―박제사가 된 계기가 궁금하다. ▷초등학생 때부터 미술을 좋아해 예술중·고등학교와 미술대학 조소과로 진학했다. 그러나 학창 시절 마음 한 구석에는 동물을 연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한창 진로를 고민하던 중 학교 수의과대학 해부학연구실에서 학부생 인턴으로 일하면서 골격 표본을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그러다 자연사박물관에서 박제사로 활동할 수 있다는 길을 알았다. 또 해외에서는 조각가들이 박제를 하는 사례가 많다고 해 용기를 얻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박제는 예술과 과학의 만남이다.

―공인된 박제사 자격증이 있나. ▷국내에 박제사 자격증이나 전공학과, 전문학교가 따로 있지는 않다. 다만 문화재청에서 관리하는 문화재수리기능자 자격 시험에 '박제 및 표본 제작공'이 있다. 이 자격증을 획득하면 국가보호종인 천연기념물(동물) 박제가 허락된다. 자연사박물관이나 동물원 같은 공공기관에서 박제사를 채용할 때 이 자격증을 필수 지원 자격으로 공지하는 경우가 많다. 시험은 필기와 실기로 나뉘어 매년 한 번씩 열린다. 합격자가 1년에 한두 명 나올 정도로 어렵다. 실기 시험에서 잉꼬 같은 작은 새 한 마리와 꿩 같은 큰 새 한 마리를 주어진 시간 안에 박제해야 한다. 저도 세 번 도전 끝에 합격했다.

―여성 박제사도 많은가. ▷문화재수리기능자 자격을 보유한 박제사는 현재 전국을 통틀어 50여 명 있다. 이 중 여성 박제사는 5명 남짓이다. 자격 시험을 준비할 때 여성 박제사로 원로 인사가 한 명 있다고 들었다. 그게 맞는다면 제가 두 번째 여성 박제사다. 다만 여성 박제사가 늘어나는 추세인 건 체감하고 있다. 박제 표본 제작 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전화나 이메일을 받으면 대부분 여학생의 문의다. 나처럼 미술을 전공한 사람도 있고 탐조(자연 상태의 새들을 관찰하는 행위)를 좋아한다는 사람도 있다. 동물원 자체도 여직원 비율이 높은 편이다.

―박제사는 보통 어디에서 근무하나. ▷현재 현역으로 일하는 박제사는 30명 안팎이다. 한국 박제사들은 자연사박물관이나 생물자원관에서 많이 근무한다. 박제사를 고용하는 동물원은 서울대공원이 유일하다. 자연사박물관에서는 로드킬(동물 교통사고) 등 사고로 죽은 동물들을 주로 활용하기 때문에 표본으로 제작할 수 있는 동물 사체를 구하기 위해 야생동물 구조센터 등 유관기관과 협업하거나 전국을 다닌다고 한다. 동물원 소속 박제사로 다양한 동물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유학도 다녀왔다고 들었다. ▷2014년 국립생물자원관을 퇴사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있는 포코노 박제학교로 가서 박제사 과정을 수료했다. 미국으로 간 까닭은 포유류 박제를 보다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해서였다. 우리나라는 조류 박제 기술에 비해 포유류 박제 기술 발전이 더딘 편이다. 계속 박제사로서 경력을 쌓으려면 외국 기술을 배울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외국에서는 사냥꾼을 대상으로 한 수업도 열린다. 특히 사냥 문화가 발달한 미국은 사냥꾼을 대상으로 한 박제 시장이 활발하다.

―국내와 해외 박제 스타일이 다르겠다. ▷주로 학술 목적으로 표본을 제작하는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해외는 상업적인 면에서 상대적으로 더 유연하다. 2017년 캐나다에서 세계박제대회 챔피언 켄 워커 박제사를 만나면서 더욱 절감했다. 그 또한 멸종됐거나 멸종 위기종의 표본을 제작하는 데 관심이 많다. 그는 상상의 동물인 빅풋을 박제 표본으로 만드는 등 박제 기술의 활용성을 넓히고 있다. 해당 분야를 리크리에이션이라고 한다. 박제 대회에서도 별도 종목으로 운영한다. 워커 박제사와는 지금도 교류하면서 공동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 ▷언젠가는 신생대 때 멸종한 검치호랑이를 박제 표본으로 구현해보고 싶다. 또 3차원(3D) 프린팅 기술이 발달하면서 외국에서는 표본 제작에 이를 활용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해 관련 기술을 공부할 예정이다. 수장고 리모델링도 염두에 두고 있다. 보다 많은 사람이 편하게 표본을 볼 수 있도록 개방형 수장고를 만들 계획이다.

▶▶ 윤지나 박제사는… 1988년생. 2007년 서울 선화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미술대학 조소과에 입학했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국립생물자원관 전시교육과에서 근무했다. 2013년 문화재수리기능자 박제 및 표본 제작공 자격을 취득했다. 2013년 미국 포코나 박제학교에서 박제사 과정을 수료했다. 2015년부터 현재까지 서울대공원 동물기획과 소속 박제사로 각종 동물 표본을 만들고 있다. 2021년 유럽박제대회(ETC)에서는 강연자로 나서기도 했다.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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