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유령이 미술을 배회하고 있다

윤율리




‘신생공간’에 대한 어떤 소문이 유령처럼 미술을 배회하고 있다. 약간의 시차가 있을 뿐, 사실 이런 모종의 소문들은 근 몇 년 간 한국 사회의 여러 영역에 동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었고, 그렇기에 이를 시각예술의 이야기로, 공연예술의 이야기로, 또는 굳이 예술생태계의 이야기만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 모든 현상들을 광의에서 짚고 넘어가려면 이웃한 디자인계에 생겨났던 독립스튜디오들의 면면이라든가, 청년창업/창조경제라는 명목으로 강남 도련님들에게 뿌려졌던 세금의 구구절절한 역사라든가, 유럽 사민주의자들이 지구 반대편에서 야심차게 추진했던 예술팔이 정책들의 ‘쿨’함을 모두 언급해야 하는 전래동화 같은 글이 될테니, 우선은 미술로 그 이야기를 좁혀보려 한다. (기회가 닿으면 정리에 도전해 보겠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므로, 정히 흥미가 동하시는 분께서는 원고료를 입ㄱ… 주십시오).
미술의 경우를 보자면 <청춘과 잉여>가 하나의 도화선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물론 호흡을 더 길게 보면 미술생산자모임의 결성과 활동, 공장미술제로 말미암은 토론회 같은 것이 모두 포함될테다). <청춘과 잉여>를 둘러싼 소란스러움은 마치 낯익은 헤게모니 쟁탈전의 최전선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는데, 후하게 표현해 ‘메타’적으로 기능했다고 쳐줄 수 있는 전시의 이런 면모들을 나는 다소 비판적인 관점에서 자평하는 쪽에 가깝다. - 처음 전시를 기획하고 다른 협력큐레이터들에게 참여를 제안했던 유능사는 이 전시가 가지게 될 질척한 논쟁의 점도를 모두 예상했던 것일까? 혹은 누군가의 비판처럼, 바로 이런 지점이야말로 우리 기획자들의 무의식에 숨어 있던 기이한 ‘야심’ 같은 것이었을까? 절반 정도는 그렇고, 절반 정도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청춘과 잉여>는 젊은 미술창작자/유통자들의 활동에 방점을 둔 교역소에서의 연말 좌담회로 이어졌고, 청년관이라는 새로운 이슈로 옮겨가 기습적인 미술 이벤트와 서명운동을 발생시켰다. 올해 들어서는 엮는자라는 미지의 계정이 등장해 신생공간들의 플랫폼을 자청하기 시작했으며, 십 여 개 공간의 운영자들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굿-즈 2015>가 개막을 약 두 달 여 앞둔 상황이다. 완전히 근거 없다고 할 수만은 없는 모종의 기대감들이 좋아요와 리트윗으로 번져가는 상황을 목도하며, 그럼에도 이 불길이 여전히 그 가시적인 크기에 걸맞는 붉은색의 온도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되묻게 되는 것은 왜일까?

최근 신생공간에 대한 여러 겹의 텍스트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가장 처음은 미술생산자모임 2차 토론회에서 작가 강정석이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의 일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가적인 재기발랄함이 여기저기 묻어나는 발표는 시종일관 대단히 유쾌했는데 그는 결국 이 내용을 바탕으로 동료들과 함께 던전이라는 초유의 기획을 성사시켰다. (물욕 자극하는 도록이 겨우 만오천원 밖에 안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나는 강정석이 제안한 ‘인스턴싱’ 개념이 공간들의 충분조건이라기보다는 필요조건의 (그마저도) 근사치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쪽이지만, 2000년대 말 뉴미디어 환경의 지각변동-예컨대 아이폰 3GS의 수입과 같은 사건으로부터 신생공간 탄생의 서사를 발굴하는 그의 시도에 꽤나 공감했었다. 하마라는 티스토리 블로거가 작성한 글도 기억에 남는다. 그에게 결코 무례를 범하려는 것은 아니며, 내 억측이 틀렸다면 백 번 사죄할 일이지만, 글을 완전히 다 읽기 전에 나는 그가 아주 젊은 필자임이 분명하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혔다. 2000년대의 역사성을 ‘디지털 데이터베이스’로 ‘검색’해 채워넣은 듯한 이물감이 그러했거니와, 더 직접적으로 글쓴이가 기대는 개념어들이 이상하리만큼 진부했기 때문이다. 새파랗게 어린 내 글쓰기라고 특별히 다를 것은 없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글에 욕심을 가진 20대들은 그 부담의 크기에 비례해 (‘선생님’들의 매질을 피해) 익숙한 이론, 익숙한 개념, 익숙한 서술의 안전지대로 움츠러드는 우를 범한다. - 애석하지만 그들/나에게 익숙한 것이라 해봤자 이 시대의 모두에게 익숙한 싱거운 포스트모더니즘 이론 따위인 것이고, 이렇게 쓰여진 글은 어제 읽은 80년대 이론서에 대한 일기가 되기 십상인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하마의 글을 통해 분명히 배운 것이 있다면 ‘파생공간’, 그리고 ‘n’이라는 이름 붙이기의 상상력이었다. ‘신생’을 붙이기엔 도통 뭐가 새로운지 모르겠고, ‘독립’을 붙이기엔 무엇으로부터의 독립인지 알 수 없는, 그렇다해서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괴물인 ‘포스트’를 재탕할 수도 없는 언어의 곤궁함 속에서, (처음 그가 주장한 ‘파생실재’의 연결고리와 결별한다는 전제 하에) 하마의 통찰은 분명 신생공간이 맥락화 되는 과정의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몇몇 종이매체에서도 비로소 신생공간이라는 주제를 다루기 시작했는데, 페이지 하나 하나가 귀한 주류 미술지에서 생소한 신생공간에 지면을 할애한 것은 나름의 시사점을 던져준다. 강정석의 표현을 빌려, “뭔가 손에 잡히지 않는 흐름”이 점점 증폭된 끝에 마침내 “그들이 다루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의식”하게 만드는데 성공한 것일까? 그런 연장에서 아트인컬쳐 7월호에 실린 탁영준 기자의 취재는 ‘여전히 그들이 잘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일종의 의무방어전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애시당초 그 많은 신생공간들의 분열적인 움직임을 한 개 호에 정리하기는 불가능 할 터, 호흡 긴 기획기사가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서울아트가이드 7월호에 기고된 대안공간 루프 큐레이터 문두성의 글은 차라리 꽤 솔직해서 흥미로웠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문장을 맺음하고 있다. : “기성 미술계에 바라는 점이 있다. (…) 그들의 움직임을 두고 의도적으로 외면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하지 말라는 것이다. 청년관 신설이나 신생 공간을 위한 기금 조성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 그들의 움직임을 단순히 도전이나 미미한 현상 정도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계속 그들의 발언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활발한 활동을 주시하며 서로 상생하는 길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왜 이런 글을 쓰는가? 건방지게 팔짱 끼고 물러서서 이 논점들을 이러쿵저러쿵 평가하겠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재미있게도 이 텍스트들에서는 공통적으로 신생공간에 대한 하나의 분명한 태도가 감지된다. 바로 신생공간이 정말 ‘신생공간’이라는 부동의 전제다. 부연하자면, 오늘자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가득 채운, 이 장황한 사담의 계기가 된 큐레이터 현시원의 프레시안 기고문에서는 이런 표현들이 등장하고 있다. : “우선 2015년 미술 현장 곳곳에서 ‘청년’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양식 자체의 변화를 볼 수 있다. (…) 여기서 젊다는 것은 갑을 관계처럼 명시적이지는 않더라도 권력 관계에서의 하위 존재에 해당하는 이들을 지칭해왔다. (…) 그런 반면 지난해 말 한 토론회 자리에서 의견을 제기해 촉발된 ‘청년관을 위한 예술 행동’은 청년 스스로가 ‘청년’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자신들의 목표와 행동 절차를 구체적으로 도모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 미술계 파장 안에서 스스로를 청년이라 부르고 행동이라 주장하며 앞으로 해나갈 일을 점친다는 점에서 그것은 현재로써는 작아도 앞으로 커질 선언이기도 했다.”
이 글은 흠잡을데 없이 올바른, 그러니까 소위 ‘PC’의 미덕을 갖춘 논지를 전개하고 있음에도 나에게 어딘가 모를 작은 위화감을 선사했는데, 곰곰이 곱씹어보면 이렇다. 내가 아는 한 어떤 청년도 (청년의 이미지를 마구마구 팔아치우는 열정감자 같은 것을 빼면) 스스로를 ‘청년’으로 규정하지 못한다. 이것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이유는 (청년허브에 온통 잘 길들여진 청년들이 있는 것처럼) 청년이라는 단어가 이미 대단히 정치적인 수사로 정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청년’ ‘신생공간’ ‘신드롬’을 취재하고자 나를 찾았던 한겨레의 노형석 기자는 “왜 새로운 신생공간들이 우후죽순 생겨난 것인지”만을 집요하게 거듭 캐물었는데 (그는 이 가설의 정치적인 증거들을 채집하는 것 이외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다) 약간 말장난 같은 이 단서들을 조합하면 뜻밖에도 다음과 같은 역의 질문이 생성된다. 신생공간들은 정말 자로 재듯 어떤 시점을 전후해 갑자기 만들어진 것인가? 지난해 말 토론회 자리에선 청년을 자처한 자들이 하늘에서 콩 떨어지듯 쏟아지기라도 한 것인가? 그러나 어느날 무언가가 우리들 사이에 나타났다고 말해야 한다면, 그것은 청년이라는 뜬금 없는 자의식이나 신생공간 같은 것이 아니라, 기실 청년을 긴급히 호출해야만 하는 어떤 다급한 요청이나 그에 투사된 또다른 기성의 욕망들이지는 않았을까? 이렇게 정정해 말해볼 수도 있겠다. 누군가의 작은 월셋방에서, 작가들이 아름아름 모여든 작업실에서, 명시된 이름의 어떤 유/무용한 공간들에서, 청년들의 신생공간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늘 꾸준히 존재해 왔다. 다만, 이제 그것은 그들을 ‘신생공간’으로 명명하고자 하는 몇 가지 요구에 의해 이종의 전류처럼 서로를 간섭하게 되었다.

‘그’가 볼드모트인 것은 아니니 이름을 부르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때로는 드러나게, 때로는 드러나지 않게, 근래 ‘청년’을 둘러싼 논의의 배후에는 평론가 임근준의 강력한 존재감이 자리해 있었다. 익명의 누군가는 그를 “청년들의 왕이 되려 한다”며 비꼬았지만 나는 이런 빈정거림에 동의할 생각은 없다. 앞선 세대의 미술인으로서 임근준의 의중이 무엇이든 그가 ‘청년’을 호명하자 판이 요동쳤고, <청춘과 잉여>나 <굿-즈 2015>는 출발선에서 이미 그에 빚을 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장 눈 앞의 현실에서 아카이브 봄에 전시를 보러 오는 관객의 숫자는 작년 대비 10배 정도 늘었는데, 농담 삼아, 어쩌다 미술계의 중력에 반쯤 빨려든 비전공자-6두품인 나는 여기에 숟가락을 얹은 꼴이 된 셈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금 어떤 요청에 응답한 ‘신생공간’ 프레이밍은 개별 공간, 기획자, 작가들이 가진 고민의 맥락을 말끔히 소거해 하나의 개념어로 난폭하게 환원한다는 점에서 온당치 못한 측면이 있다. 오로지 신생공간의 새로움을 주술적으로 믿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어떤 공간이 생각보다 오래 된 곳이라거나, 어떤 기획자가 꾸준히 플랫폼 만들기에 관심을 두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했었다거나, 어떤 작가가 정치적인 목적의 밴드를 만든 전력이 있다거나, 지금처럼 작업실을 ‘브랜딩’ 하기 전에도 오픈된 형태의 비정형 워크숍을 진행했었다는 사실이 대단히 하찮고 사소한 문제로 받아들여질테지만. - 그들에게 이런 내러티브는 새 애인의 오래된 로맨스처럼 망각되기를 바라는 역사이다.
‘신생공간’이라는 명명의 공허함은 그에 속한 개별공간들 사이에 별다른 공통점이 없다는 점에서도 재차 발견된다. 엮는자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어떤 공간은 디자인 스튜디오를 겸하고, 어떤 공간은 공연장이자 술집이며, 심지어 어떤 공간은 공간이 아니다. 어떤 공간의 디렉터는 (동세대라기에는 이미 ‘선생님’에 더 가까워진) 명망 있는 사립미술관의 큐레이터이고,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가며 후진을 길러내고 있는 디자이너다. 부정들의 교집합으로 미끄러지는 이런 여집합의 구조는 A를 B로 얼버무려 환원할 수는 있어도, C는 왜 B가 아닌지, C는 A와 무엇이 다른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비슷하게 텅 빈 기표가 되어버린 개념에 ‘힙스터’가 있다. 신생공간에 대한 프레이밍에서 ‘힙스터 논쟁’ 만큼이나 허전한 뒷맛이 남는데에는 이러한 배면의 원인이 작동하고 있는 것 아닐까?

예쁘게 쓰여진 글이라기에는 부유하는 일기 같은, 지루한 토로를 사적인 타임라인의 안갯속에 방류하는 것은, 어쨌거나 신생공간이라는 파고 위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자 고군분투 하는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함이다. 다시, 나는 왜 이런 글을 쓰는가? 신생공간의 운영자들이, 공간과 연결된 작가들이, 관객들이, 지지자들 혹은 비판자들이, 신생공간 따위와 별 상관 없이 그냥 먹고사는 것에도 8.1%씩이나 인상된 시급만큼의 냉소와 피로를 느끼는 대학생들이, 우리가 무언가를 증명해야 한다면 그것은 새로움이 아니라 새롭지 않음에 대한 것이다. 이 어려운 숙제는 세대라는 주어를 동시대로, 신생이라는 시선에 담긴 특별함을 보편으로 돌려보내는 일이다. 그러므로 다가올 <굿-즈 2015>는 기회라기에는 위기에 가까울 것임을 예감하지만, 어떤 욕망의 제의가 지금의 신생공간을/세대론을 소환한 것이든, 어차피 더 이상 그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우리는 왜 하나도 새롭지 않은가? 우리는 무엇의 연속인가? – 물론 뭐든 새로워보이는 신입생이, 제일 따끈따끈할 때의 졸업생이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이라는 사실은 자명한, 약간은 슬픈 진실인 것이다.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