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시해 주범 밝혀낸 원로史家 최문형

  • 입력 2006년 9월 28일 16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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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시사월간지 신동아 10월호에 실린 것을 요약한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지금 발매중인 신동아 10월호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일본은 조선을 집어먹기 위해 청일전쟁을 벌이느라 엄청난 코스트를 치렀다. 그런데 민왕후가 러시아 세력을 끌어들여 일본을 거부하자 참을 수 없었다. 특히 민왕후가 1895년 7월 6일 일본 초대 외무대신 이노우에 가로우(井上馨)가 심어놓은 친일파 내무대신 박영효를 쫓아내자 일본은 민왕후를 회유하는 것을 포기하고 시해하는 강경책으로 바뀌었다.

최문형 한양대 명예교수(71)는 최근 ‘명성황후 시해의 진실을 밝힌다’(지식산업사)의 개정판에서 일본 정계 실세들의 움직임을 날짜별로 추적해 동북아시아의 국제정세와 민왕후 시해사건을 재구성했다.

그는 민왕후를 정치인으로 평가해야지, 하우스 와이프(가정주부)로 봐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하우스와이프로 민왕후를 보면 시아버지한테 대든 패악한 며느리가 되지요. 민왕후는 대단히 똑똑한 여성이었어요. 권력을 행사하면서도 항상 남편의 체면을 세워주었죠. 아이디어와 기지가 있는 명민한 여성이었지만 객관적으로 세계 외교 무대에 내놓고 볼 때는 구중궁궐에 박힌 여인에 불과했어요.”

그는 이 책에서 ‘민씨 정권’이라는 표현을 썼다.

“고종은 무능했다고 봐야 하느냐”는 질문에 “고종에게는 자기 세력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연구논문에서 민씨 정권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고종은 일반적으로 무능했다고 알려져 있죠. 서울대 국사학과 이태진 교수는 고종이 훌륭했다는 책을 펴냈지만, 훌륭했으면 나라를 그 꼴로 만들었겠어요”라고 반문했다.

그는 민왕후는 생전에 사진을 못 찍게 했기 때문에 근래 명성왕후 사진이라고 나타나는 것은 모두 가짜라고 단언했다.

“다만 일본 낭인배들이 왕후를 시해할 때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얼글 스케치를 갖고 들어갔습니다. 스케치도 서양인들이 인상을 머릿 속에 담고 가서 그린 겁니다. 일본 어딘가에 스케치가 남아 있을 겁니다. 일본 사람들이 감추고 내놓지 않지만.”

그는 민왕후를 시해한 주범은 이노우에라고 단정했다. 이오우에는 일본 초대 총리 이토 히로부미와 고향이 같고 영국 유학을 같이 했다. 나이는 이토보다 다섯 살 위. 이토 초대 내각에서는 외무대신, 2차 내각에서는 내무대신을 지냈다. 그는 직급이 낮은 주한 공사를 자청해 주임해오면서 한국 문제에 관해서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전결권을 갖고 와 총독처럼 군림했다고 최교수는 밝혔다. 명성왕후 시해는 일본 제국주의의 국가범죄이고 그 총책이 이노우에라는 것이다.

최교수는 일부 근현대사 교과서가 “민중민족주의의 우물 안에 빠져 있어 우리 역사를 연구함에서 국제관계를 소홀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최문형 한양대 명예교수와의 일문일답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책에서 ‘민씨 정권’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대원군이 물러난 후에는 고종이 통치하던 시대인데요.

“다른 연구논문에서도 ‘민씨 정권’이라는 용어를 많이 써요. 고종에겐 자기 세력이 없었어요.”

-민씨 정권이라는 용어가 역사학계에서 자리잡을 정도라면 고종은 무능했다고 봐야 하나요.

“일반적으로 그렇게 알려졌죠. 서울대 국사학과 이태진 교수는 고종이 훌륭했다고 얘기하는데, 훌륭했으면 나라를 그 꼴로 만들었을까요. 하여간 저는 훌륭했다고 보지 않습니다.”

-민왕후 하면 보통 사람의 뇌리에는 대원군과의 마찰이 먼저 떠오를 겁니다. 소설이나 드라마도 전부 그걸 중심으로 그리잖아요.

“물론 갈등이 없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 사람들이 민왕후가 대원군과의 갈등 때문에 시해됐다고 조작하려 했어요. 대원군은 실각 후 민씨 세력 앞에서 힘을 쓰지 못했어요. 민왕후의 시해는 러시아와 일본의 싸움에서 비롯된 거예요. 민왕후가 러시아에 접근하니까 일본이 죽인 것이죠.

민왕후를 정치인으로 평가해야지, 하우스와이프(가정주부)로 봐서는 안 됩니다. 하우스와이프로서 민왕후를 보면 시아버지한테 대든 패악(悖惡)한 며느리가 되지요. 민왕후는 대단히 똑똑한 여성이었어요. 권력을 행사하면서도 항상 남편의 체면을 세워줬죠. 아이디어와 기지(機智)가 있는 명민한 정치인이었지만 객관적으로 세계 외교무대에 내놓고 볼 때는 구중궁궐에 박힌 여인에 불과했어요.

-민왕후 시해의 주범은 누구입니까.

“일본과 러시아가 한반도를 서로 차지하려고 다퉜죠. 일본의 국익이 걸린 싸움이었습니다. 일본 낭인들이 우발적으로 저지를 만한 사건이 아닙니다. 일본의 국가적 결정에 의해서 움직인 거죠. 일본 정부는 처음부터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죠.

이노우에 가오루는 이토 히로부미와 고향도 같고 영국 유학을 같이했습니다. 나이는 이토보다 다섯 살 위입니다. 이토 초대 내각에서 외무대신, 2차 내각에서는 내무대신을 지냈어요. 그리고 일본의 ‘겐로(元老)’로 천황에게 수상을 천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이런 실세가 국장급에 불과한 주한공사를 자청합니다. 한국 문제에 관해서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전결권, 백지위임장을 받아왔습니다. 한국에 와서 완전히 총독처럼 군림했죠. 이 사람이 한국에 관한 모든 문제를 직접 결정했죠.”

-세계사에서 이웃나라의 궁정에 들어가 황후를 난자해 죽인 유례가 있습니까.

“없어요. 쿤타킨테 식으로 죽인 거예요.”

쿤타킨테는 알렉스 헤일리의 소설 ‘뿌리’에 나오는 아프리카 흑인 노예.

“아프리카 사람들 사냥해서 죽이던 거 있잖아요. 잔혹하게 살해했죠. 술에 취한 일본의 낭인배는 민왕후의 시신을 능욕하는 시늉까지 했죠.”

-가끔 민왕후 가짜 사진 소동이 벌어지잖아요. 민왕후는 생전에 사진을 찍지 않았나요?

“일본 낭인배가 왕후를 시해할 때 얼굴 스케치를 가지고 궁정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민왕후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일본 어딘가에 스케치가 남아 있을 겁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어요. 일본 사람들이 감추고 내놓지 않지만.

사진은 전부 가짜예요. 민왕후는 자신의 사진을 찍게 하지 않았어요. 스케치도 서양인들이 인상을 머릿속에 담고 가서 그린 거예요. 그렇지만 서양 사람들의 스케치는 아주 섬세하죠. 비슷하게 그렸을 거예요.”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황호택 논설위원이 신동아에서 만난 '생각의 리더 10인'이 한 권의 책으로 묶어졌습니다.
가수 조용필, 탤런트 최진실, 대법원장 이용훈, 연극인 윤석화, 법무부 장관 천정배, 만화가 허영만, 한승헌 변호사, 작가 김주영, 신용하 백범학술원 원장, 김용준 고려대 명예교수.

이 시대의 말과 생각
황호택 기자가 만난 생각의 리더 10인
지은이 : 황호택
가격 : 11,000 원
출간일 : 2006년 01월 01일
쪽수 : 359 쪽
판형 : 신국판
분야 : 교양
ISBN : 8970904476
비고 : 판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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