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상인의 복식 부기, 서양보다 200년 앞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31일 03시 00분


코멘트

노병탁-정기숙-전성호 교수, ‘사개송도치부법’ 영문 번역
동양권 유일의 고유 부기 해설서… 우리 회계제도 가치 세계에 알려

‘사개송도치부법’을 영문으로 번역해 출간한 노병탁 미국 퍼듀대 명예교수, 정기숙 계명대 명예교수, 전성호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왼쪽부터). 22일 서울 서초구의 한 호텔에서 만난 이들은 “남아 있는 개성 상인의 실제 복식 부기 장부도 영역해 해외에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사개송도치부법’을 영문으로 번역해 출간한 노병탁 미국 퍼듀대 명예교수, 정기숙 계명대 명예교수, 전성호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왼쪽부터). 22일 서울 서초구의 한 호텔에서 만난 이들은 “남아 있는 개성 상인의 실제 복식 부기 장부도 영역해 해외에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개성 부기(簿記)는 15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만들어진 서양의 부기보다 적어도 200년은 앞서 13세기부터 사용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건 우리 민족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발명한 것과도 맞먹는 일이에요.”

1916년 발간된 개성 복식 부기의 해설서이자 교재인 ‘실용자수(實用自修) 사개송도치부법(四介松都治簿法)’이 영문으로 번역돼 출간됐다. 제목은 ‘The Sagae Songdo Chibubeob for Practical Use and Self-Study’. 역자는 노병탁 미국 퍼듀대 종신교수(명예교수·79), 정기숙 계명대 명예교수(81), 전성호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56)다. 22일 노 교수가 머무르고 있는 서울 서초구의 한 호텔에서 만난 이들은 “서양 못지않은 훌륭한 회계제도가 과거 우리나라에 존재했다는 것을 알리고자 번역에 나섰다”고 말했다.

원저는 문필가, 출판인으로 활동했던 현병주(1880∼1938)가 개성상인으로 추정되는 김경식, 배준여라는 인물의 도움을 받아 지은 것. 동양권 최초이자 유일한 고유 부기 해설서로 평가된다. 1928년에 2, 3판이 발간되기도 했다. 개성 부기는 일제가 서양식 부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도록 하면서 점차 사라졌지만 1940년대까지는 실무에서 사용했다.

“일부 중국 학자는 개성 부기가 한문으로 돼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기들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사실 동아시아 3국 가운데 일본은 고유한 복식 부기가 아예 없었고, 중국은 개성 부기보다 훨씬 체계화가 덜된 것이 있었을 뿐인데 말이지요.”

정 교수는 “개성 부기는 한자와 이두(吏讀·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적은 표기법)가 섞여 있는데, 이두까지도 노 교수가 모두 영어로 옮겼다”며 “이걸 보면 중국 학자도 개성 부기가 한국의 독자적인 것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역본에는 개성 부기의 개요와 개성상인의 특징, 사회적 여건, 원저자인 현병주의 생애 등을 설명하는 장을 추가했다. 책에 나온 예제 등을 서양식 부기로 바꿔 설명하기도 했다.

노 교수는 현대 미국 회계제도에 영향을 준 주요 논문을 상당수 발표한 회계학자다. 그 역시 각종 물품명과 특수기호를 설명하는 영어 단어가 없을 때 뜻을 온전히 옮기는 게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노 교수는 “개성 부기는 개성상인의 합리적 사고와 철저한 상도덕, 투명성을 복합적으로 제도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협업은 한국학의 세계화에도 모델이 될 수 있다. 영문으로 된 한국학 논문이나 저서, 자료의 양이 절대적으로 적은 게 현실. 전 교수는 “한국계로 미국 등 해외의 주요 대학 명예교수로 있는 분들이 한국학 연구 결과를 영역하거나 자료를 연구하는 데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공인회계사회는 10월 31일을 ‘회계의 날’로 지정하고 한국회계학회, 한국경영학회 등과 함께 31일 ‘제1회 회계의 날’ 기념식을 연다. 기념 세미나에서 ‘세계 최초·최고의 복식 부기 사개송도치부법’이라는 주제 발표가 진행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개성 부기#실용자수 사개송도치부법#회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