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포고[임용한의 전쟁사]〈182〉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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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에서 우리가 늘 강조하는 사실이 선전포고가 없는 기습공격이었다는 것이다. 20세기에 벌인 전쟁에서 일본은 약간의 꼼수를 제외하고는 항상 선전포고 없는 기습공격으로 일관했다. 가끔 이런 질문을 하는 분이 있다. 손자도 전쟁에서 술수와 거짓말을 용인했다. 국가와 국민의 목숨이 걸린 전쟁에서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선전포고가 국제법으로 성문화된 것은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였다. 1904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기습적인 침공에 수모를 겪은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가 강력히 주장한 덕분이었다.

선전포고 자체는 고대부터 등장했다. 도시국가 시절 로마 역사에도 주변 도시에 선전포고하는 사례가 있다. 고대 그리스 폴리스에서도 사례가 있다. 선전포고는 동양보다는 서양 전쟁사에서 더 많이 등장한다. 서구가 더 신사적이어서 그럴까? 선전포고는 정정당당, 기사도의 문제가 아니다. 전쟁은 외교의 폭력적 형태이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국익을 실현하는 과정이다. 선전포고는 잘못되면 상대에게 전쟁을 대비하는 기회를 주지만, 전쟁 없이 결과를 얻으려는 마지막 노력이기도 하다. 자국민에게는 전쟁의 명분을 준다. 여러 나라가 국경을 마주하고 있을 때는 전쟁의 이해관계도 복잡해서 국제적인 지지, 각국의 처신도 중요하다.

상대가 전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하루 이틀 전에 전쟁을 통보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다. 유럽 국가도 이런저런 사정을 고려해 선전포고가 득보다 실이 많다고 생각하면 생략하곤 했다.

이제 우리가 현명해지려면 선전포고를 했느냐 안 했느냐를 따지기 전에 전쟁과 국익, 국제적 이해관계에 대한 현명한 시각을 키울 필요가 있다. 우리 교육에는 이런 것이 너무 부족하다. 국제 문제에 대해 감정적이 되는 것은 우리 국민이 감성적이어서, 과거에 당한 한이 많아서가 아니라 국제 문제를 보는 자세와 교육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임용한 역사학자



#선전포고#6·25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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