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왕 선조 제사를 고령서 올리는 사연

중앙일보

입력 2013.06.28 00:50

수정 2013.06.28 01:31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경북 고령군 가야대학교 언덕에 위치한 고천원 공원. 일왕의 선조로 알려진 ‘니니기노미코토’가 하늘에서 내려온 곳이란 학설이 간직된 곳이다. [프리랜서 공정식]

1999년부터 매년 4월이면 경북 고령군 가야대학교로 일본 사학계 인사 100여 명이 찾는다. 학교 언덕에 있는 ‘고천원고지(高天原故地)’에서 ‘고천원제(高天原祭)’를 올리기 위해서다. 고천원제는 일왕의 선조로 알려진 ‘니니기노미코토’를 기리는 것이다. 일본의 뿌리와 같은 일왕의 관련 제사를 고령에서 지내는 까닭은 무엇일까.

 가야대에 따르면 사연은 1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95년 일본 쓰쿠바대 한 강연장. 이 대학 사학과 고(故) 마부치 가즈오(馬淵和夫) 교수가 논문을 들고 강단에 섰다. ‘고대 한·일 교류에 관하여’라는 제목이다.

주말 이곳 - 고천원 공원
"천손, 하늘서 내려온 곳 가야"
일 학계 왕실 기원으로 인정
역사 관광지로 조명, 방문객↑

 “일본의 천손이 고천원에서 신라로 내려왔다는 내용이 서기 712년 『일본서기』에 기록돼 있다. 고천원은 신라 서쪽에 위치한 나라(가야)로서 산속 분지로 알려진 곳이다. 수년간 연구 끝에 조건에 맞는 곳을 찾았다. 바로 고령이다.”

 마부치 교수의 논문은 일본 사학계에서 “설득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대 가야 6국 중 가장 번성했던 대가야인이 일본에 전파, 후쿠오카 등지에서 발굴된 금 귀걸이, 금동관, 토기가 고령군에서도 대거 발견된 사례가 있어서다. 이경희(89) 가야대 설립자는 “서기 710년 일본 『고사기』에도 이런 사실을 유추할 수 있는 글(산속 분지라는 내용)이 나온다. 일본 학자들이 마부치 교수의 학설을 받아들이는 중요한 근거”라고 말했다. 학설에 따르면 니니기노미코토는 하늘에서 고천원이 있는 가야 평지에 내려온 뒤 배를 타고 일본 가고시마현으로 갔다고 한다.

 99년 4월 가야대는 마부치 교수가 지목한 학교 언덕에 고천원고지 비석을 세웠다. 그리고 누구나 찾을 수 있도록 동물 모양 조각, 비석 20여 개를 세워 작은 공원으로 꾸몄다. 일본 고대 신화를 간직한 이 공원은 최근 ‘역사 관광지’로 뒤늦게 관심을 끌고 있다. 고천원에 얽힌 전설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면서다. 사진기를 들고 찾는 국내외 관광객이 한 해 평균 600명 이상이 된다고 한다.


 고천원 주변에는 한번쯤 볼 만한 철기시대를 주도한 대가야 유적도 가득하다. 대가야 왕 등 무덤 700여 기로 이뤄진 지산리 고분군을 비롯, 쾌빈리 고분군, 본관리 고분군, 도진리 고분군 등 고분군 40여 곳이 관광객의 눈길을 끈다.

 또 신라 공격을 막기 위해 쌓은 대가야 산성인 주산성·노고산성·운라산성·도진산성 등 10곳의 산성도 있다. 고령읍 쾌빈리 야산에는 우륵을 기념하는 탑과 영정을 모신 비각도 세워져 있다. 출토 유물을 전시한 대가야박물관과 대가야 순장문화를 직접 볼 수 있는 왕릉전시관도 놓쳐선 안 될 볼거리다. 이 밖에 고령읍 연조리 고령초등학교에는 대가야 왕이 마셨다는 우물인 ‘어정(御井)’이 아직 그대로 있다. 대가야 고천원공원은 월~토요일(무료, 오전 8시~오후 6시), 대가야박물관·왕릉전시관은 화~일요일(어른 2000원, 오전 9시~오후 6시) 문을 연다.

 고령군은 7월 20일과 10월 19일, 11월 16일 등 세 차례 ‘해 품은 달빛길’이란 주제로 이들 대가야 관광지를 돌아보는 야간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참가비는 무료. 054-950-6060.

김윤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