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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싼 산업용 전기료, 외국기업 유치했지만 과소비도 조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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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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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IT 기업들은 에너지 효율 올리기 경쟁 중이다. 사진은 바다에 데이터센터 장비를 넣은 MS. [사진 각 회사]

외국인 투자 기업에 전기료는 한국 투자의 당근으로 통한다. 공장을 확장할 때 제일 먼저 고려하는 게 전기를 싸게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지 여부다. “낮은 전기료와 물류 비용으로 소재 생산의 국제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2011년 일본의 화학업체인 아사히카세이케미컬이 한국에 200억 엔(당시 약 2700억원)을 투자해 울산공장을 증설하면서 밝힌 내용이다.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을 100으로 지수화했을 때 일본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185다. 한국보다 85% 비싸다. 아사히카세이케미컬이 한국을 찾은 이유다. 이런 외국 화학업체는 한국에서 고용도 많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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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근처에 데이터센터를 둔 페이스북. [사진 각 회사]

외국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앞다퉈 진출한 데이터센터(IDC)는 성격이 좀 다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5월 부산시 미음지구에 2019년 가동을 목표로 데이터센터를 건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앞서 KT는 2011년 일본 소프트뱅크와 공동 투자해 김해 지역에 글로벌데이터센터를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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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에너지만으로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겠다는 애플. [사진 각 회사]

외국 기업이 한국을 최적의 데이터센터 건립지로 꼽는 건 지진 같은 자연재해가 드물고 전력망이 안정적이란 이유도 있지만 핵심은 싼 전기요금이다.

MS 데이터센터, 일본 아사히카세이
한국 투자 핵심 이유는 싼 전기료
기업, 전기 57% 쓰고 요금 55% 부담
가정은 15% 사용하고 요금은 23%
기업 지원 위해 싼 요금 유지하면
중국처럼 무역보복 당할 우려도
김광림 “산업용도 중장기 개편 대상”

하지만 데이터센터는 몇몇 관리자만 두면 되기 때문에 고용 창출 효과가 작다. 고용을 많이 하든 적게 하든 한국에 진출한 두 업종은 싼 전기료를 노렸다. 왜 한국에서 산업용(상업용) 전기의 소비가 많은지를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폭염으로 연일 최대 전력 소비 기록이 깨지고 있다. 최대 전력 소비 기록이 나오는 시간대는 보통 오후 2~5시 사이. 이때 공장·사무실의 전력 사용이 최고치를 찍는다. 퇴근 시간 이후나 휴일엔 전력 소비가 급등하지 않는다. ‘전력 피크’의 주범은 가정용 에어컨이 아니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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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의 ‘전력 과소비’는 전 세계적으로도 압도적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14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산업 부문 전력 소비 비중(평균)은 32%다. 가정(31.3%), 상업·공공(31.6%)과 비슷하다. 반면 한국의 산업 전력 소비 비중은 55.4%에 이른다. 가정(13.1%), 상업·공공(25.1%)을 크게 뛰어넘는다. 산업 부문에서 쓰이는 에너지원 가운데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도 2000년 13.6%에서 지난해 16.8%로 매년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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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산업계는 가정에 비해 전기요금을 덜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전력이 지난 10년간(2006년~2016년 6월) 연도별 전력 사용 실적과 요금 비중을 비교한 결과 이 기간 전체 전력 사용량 중 주택용이 차지한 비중은 13.3~15.5%였다. 하지만 전체 전기요금 중 주택용이 부담한 비율은 16.6~23.1%를 기록했다. 이에 반해 산업용 전력 사용량은 전체 사용량의 52.8~57.1%를 차지했지만 요금 부담은 43.9~54.8%에 그쳤다.

이병준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과거 산업 발전을 통해 수출과 국부를 일으켜야 하는 산업통상자원부 입장에서 산업 부문에 전기요금 혜택을 준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산업 부문 전력 소비 비중이 50% 넘는 상황에서는 이런 기조를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한전의 전기요금 책정 권한은 산업부(전기위원회)에 있다.

싼 산업용 전기요금은 무역 보복을 당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강승진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는 “미국이 중국 철강에 반덤핑 관세를 물린 이유 중 하나가 전기요금 혜택이었다”며 “최근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맞물려 전기요금을 통한 산업계 우회 지원은 무역 보복의 빌미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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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한 선에서 산업용 전기요금의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2014년 기준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OECD 평균 산업용 전기요금에 비해 19%가량 싸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기 과소비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자원 빈국’ 한국의 산업계에 부메랑이 닥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정은 산업용 전기요금제 개편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새누리당 김광림 정책위의장은 11일 열린 전기요금 관련 긴급 당정협의에서 “산업용 전기요금 개편도 중장기 검토 대상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우태희 산업부 제2차관도 “당·정·전문가 태스크포스(TF)에서 제안하면 산업용 전기요금제 개편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산업계는 산업용 전기 수급체계 개편 방향이 인상으로만 모아지는 데 대해선 경계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기가 나쁜 상황에서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은 국내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현숙·조득진·박수련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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