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동아리 선배인줄" 21살에 사시 패스, 90년대생 교수가 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제가 수강생이라는 생각으로 공부하면서 강의를 준비합니다. 수업 내용을 완전히 외워서 줄줄 읊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면 쉽게 설명할 수 없거든요"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만난 임재혁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그의 강의는 학생들 사이에서 쉽고 재미있기로 유명하다. 지난달 세법 수업 오리엔테이션에서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겠다"는 임 교수를 보고 '동아리 홍보하는 선배'같다는 반응도 나왔다. 한 3학년 학생은 "교수님이 너무 젊어서 놀랐는데 수업을 들어보니 열정이 넘쳐서 좋다"고 했다.

 임재혁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가 지난달 21일 서울 서대문구 이대 법학관 회의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임재혁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가 지난달 21일 서울 서대문구 이대 법학관 회의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베이비부머 세대 퇴장…90년대생 교수 등장

90년대생 교수가 오고 있다. 대학가에서는 베이비부머 세대 교수의 정년퇴직과 맞물려 2~3년 전부터 90년대생 교수가 등장했다. 지난 2월 이대에 부임한 임 교수는 90년 1월생으로 32살이다. 2008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한 그는 2011년 21살 나이에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생일이 빠른 탓에 단 한명에게만 주어지는 공식 최연소 타이틀을 달진 못했지만 53회 사법고시 최연소 합격자와 동갑이다. 이후 서울대 법학과 석사·박사 과정과 로펌을 거쳐 전국 최연소 로스쿨 교수가 됐다.

이공계에서는 20대 교수도 나타나곤 한다. 학부 4년, 5~6년의 석박사 통합과정, 짧게는 2년 가량 박사후연구원 과정을 쉬지 않고 거치면 29~30세에 전임교원이 될 수 있다. 특히 기술이 빠르게 바뀌는 인공지능학과 등 공학 계열 신설 학과에서 젊은 교수 채용이 두드러진다. 하순회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학장은 "첨단 학문일수록 최신 기술을 연구한 젊은 연구자를 채용하는 경향이 높다"며 "학생들과 소통이 잘 되고 진로 동향을 잘 알려줄 수 있다는 점도 젊은 교수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실제 서울 주요 대학 공과대학에는 2~3년 전부터 90년대생 교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김영석 연세대학교 인공지능학과 교수와 나종걸 이화여대 화공신소재공학과 교수가 각각 29살(2019년), 30살(2020년)에 교수가 된 동갑내기 90년생이다. 대학 관계자들은 한국 역사상 인구수가 가장 많은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교수들의 은퇴가 본격화하는 앞으로 5~6년 동안 90년생 교수 임용이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본다. 실제 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2018년 8.6%였던 30대 교수 비율은 2020년 9%로 늘어나는 추세다.

2019년 서른의 나이에 교수가 된 김록리(32) 고려대학교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 [사진 고려대]

2019년 서른의 나이에 교수가 된 김록리(32) 고려대학교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 [사진 고려대]

"학생들 미래 동료라고 생각"…MZ 교수 철학은

MZ세대(1980~2000년대생)교수들은 '눈높이 교육'이 가능한 점이 젊은 교수의 장점이라고 말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대학원에 다니며 진로를 고민한만큼 학생들과 공감대 형성이 쉽다. 김록리(32) 고려대학교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는 "석박사 과정에서 연구 과제에 어려움을 느끼거나 졸업 이후 진로 결정을 막막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저 역시 그 시기가 생생하다"고 했다. 그는 또 "대학원 수업을 할 때는 이 학생들이 미래의 동료라고 생각하고 수업을 한다"고 덧붙였다.

MZ 교수들은 학문을 통해 세상에 기여하고 싶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임 교수는 "세법과 회사법이 충돌하는 지점을 연구하고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 신탁이라는 제도가 있어도 신탁을 맡길 때와 찾을 때 이중으로 세금을 내게 된다면 납세자 입장에서는 제도를 활용하기 어렵다"며 "영미법상의 세법과 회사법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충돌이 생겼는데 어떻게 하면 이를 조화롭게 바꿀 수 있을지 연구하고 싶다"고 했다.

김 교수의 꿈은 연구를 통해 개발도상국의 보건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다. 국제기구에 재직했던 부친을 따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김 교수는 "빈민촌과 국제학교를 가르는 높은 울타리와 그 너머로 부러운 듯 학생들을 지켜보는 필리핀 아이들의 모습"이 자신의 유년기의 결정적 장면이라고 회상했다. "개발도상국이 성장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보건"이라는 생각으로 그는 개도국의 산모 건강과 아동 신체 발달 요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