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단독]기적처럼 南의 혈육 상봉한 태영호

입력 | 2018-05-30 03:00:00

쓴 책에 등장하는 5촌 아저씨, 책읽고 연락… 부둥켜안고 눈물





“아버지 사진이 여기 있네! 나도 여기 있어!”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56·사진)는 29일 수도권의 한 아파트 거실에서 이렇게 외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가 손에 든 갈색빛 낡은 사진에는 일곱 살 당시의 자신과 아버지 태형길 씨 등 가족 친지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는 사진 속 아버지와 친척들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태 전 공사에게 귀중한 선물을 준 주인공은 이날 기적처럼 상봉한 남한 내 혈육 A 씨였다. 북한 권력 핵심부의 비밀을 폭로한 태 전 공사의 증언록 ‘3층 서기실의 암호’ 470쪽에 ‘아버지의 이모의 아들’로 등장하는 A 씨는 태 전 공사의 5촌 아저씨뻘이다. A 씨는 최근 발간된 증언록을 사서 읽고 태 전 공사가 5촌 친척이라는 사실을 확신했다고 한다.

A 씨가 태 전 공사의 전 직장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 전화를 걸면서 이날 만남이 성사됐다. 2016년 8월 가족과 함께 탈북한 그가 한국에서 혈육을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 “탈북때 사진 못 챙겨왔는데…” 아버지 모습 어루만지며 눈물 ▼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위 사진 왼쪽)가 29일 남한에서 상봉한 5촌 아저씨 A 씨의 거실에 앉아 아버지와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첩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A 씨가 보관하고 있던 사진에는 일곱 살 난 태 전 공사(아래 사진 아래 동그라미)와 그의 아버지 태형길 씨(위 동그라미)가 다른 가족들과 함께 등장한다. 본인의 요청에 따라 A 씨 등의 얼굴을 흐리게 처리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태 전 공사는 70년 가까운 세월을 건너 남한 땅에서 5촌 아저씨 A 씨를 만나자마자 부둥켜안고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다. 혈혈단신으로 온 남한에서 혈육을 만났다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듯했다. 어느덧 80대가 된 A 씨에게 큰절을 올리곤 그리운 가족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6·25전쟁 당시 남한으로 내려왔다는 A 씨는 태 전 공사 아버지와의 추억과 친척들 이야기를 쏟아냈다. 태 전 공사는 아버지에게서 들었던 이야기와 일치하는 대목이 나올 때마다 탄성을 지르며 신기해했다.

태 전 공사는 A 씨에게 “아버지께서 생전에 그토록 만나고 싶어 하셨던 분이었는데 기적처럼 남한에서 뵙게 됐다”며 “아직도 남과 북이 혈육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A 씨는 “남한에 있는 가장 가까운 친척이 6촌인데, 오늘 그보다 더 가까운 5촌 조카뻘인 당신을 만나 정말 기쁘다”고 화답했다.

A 씨는 자신의 고향인 함경북도 명천군 위성지도가 담긴 두루마리를 꺼내 태 전 공사에게 보여줬다. 통일이 되면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며 A 씨가 직접 만든 지도였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꿈을 매일 꾼다는 A 씨는 지도 곳곳을 손으로 짚으며 태 전 공사 아버지와의 추억을 들려줬다. 그 직후 꺼내든 사진첩에서 태 전 공사는 생각지도 못한 아버지와 친지들의 사진을 발견해 낸 것이다.

“오늘 큰아버님께서 저에게 아버지 사진을 찾아주셨습니다. 한국에 올 때 가족 사진 한 장 없이 왔는데 오늘 이렇게 온 가문의 사진을 받고 보니 저로서는 정말 기쁩니다.”

태 전 공사는 자신의 증언록에 이렇게 감사의 인사를 적어 A 씨에게 건넸다.

태 전 공사가 남한에서 만난 첫 혈육인 A 씨는 6·25전쟁 때 북진했다가 중공군에 밀려 다시 남한으로 후퇴하는 국군을 따라 월남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월남은 태 전 공사의 가족에게 큰 시련을 가져다줬다. 북한 조선노동당은 1967년 5월 25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4기 15차 전원회의를 통해 전국적인 주민등록 조사사업을 실시할 것을 결정했다. 당국은 A 씨와 가족이 월남했다며 태 전 공사의 아버지를 핵심계층이 아닌 기본계층으로 격하시켰다.

그 결과 건설대학 교수(교원)였던 태 전 공사의 아버지는 중앙과학기술통보사 건설편집부 기자로 좌천됐고 갖은 노력에도 노동당 가입 자격을 얻지 못했다. 태 전 공사는 “할머니는 몸이 아파 당에 보탬도 안 되는 할아버지의 당증을 아버지에게 주면 안 되느냐고 리(里)당위원장에게 물어보기도 했다”고 증언록에 적었다. 아버지는 평양시 건설 현장에 보내 달라고 부탁해 수년간 현장 기사로 일하고 나서야 입당할 수 있었다. 태 전 공사는 “아버지는 월남한 사촌 형을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고 통일이 돼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해왔다”고 말했다.

태 전 공사의 기적적인 혈육 상봉 현장에는 종친회 대표 태모 씨가 동행했다. 태 씨는 혼자 남한에 온 태 전 공사가 지난해 초 찾아간 태씨 종친회에서 처음 만난 집안 어른이다. 6·25전쟁 때 남한으로 내려온 태 씨는 태 전 공사 아버지와 고향이 같았다. 발해를 세운 대조영의 후손인 태씨 종친들은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북한에서 태 씨가 내려왔다”며 태 전 공사를 식구처럼 환대했다고 한다.

한국 생활을 시작하며 주변에 마음을 터놓고 의지할 친척이 없었던 태 전 공사는 종친 어른이자 아버지와 동향인 태 씨를 마음의 안식처로 여겨왔다. 태 씨는 “태 전 공사가 남한에서 혈육을 찾은 건 통일이 돼 고향 갈 날만을 기다리는 실향민들에게 큰 희망을 줬다”며 감격했다.

명절 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1시간 30여 분에 걸친 첫 상봉을 마친 태 전 공사는 “아직 생존해 계시는 실향민 1세들은 물론이고 탈북민들도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자유롭게 만나고 왕래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간절히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