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의 힐링여행 2] 3. 중국 - 만리장성 : 산 능성 타고 꿈틀대는 용처럼 웅장한 성벽길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2020-01-21     금강일보
만리장성

만리장성(萬里長城)은 중국 대륙을 첫 통일한 진시황제가 북방의 흉노족을 막기 위해서 쌓은 성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실 성의 절반 이상은 전국시대인 연(燕)·조(趙)·진(秦)이 쌓았다. 다만, 대륙을 통일한 진시황제가 전국을 통치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일부를 철거하기도 하고 또 새로 쌓으면서 흉노족 방어나 나선 것이다.

진의 뒤를 이어서 세워진 한 무제도 흉노족을 막기 위하여 난주 북방에서 둔황 서쪽의 옥문관(玉門關)까지 성을 확장했고, 또 남북조시대에 북제는 대동(大同) 북서쪽에서 쥐융관(居庸關)을 거쳐 산둥반도의 산하이관(山海關)까지 장성을 더 쌓았다. 이렇게 오랜 시대에 걸쳐 이전에 쌓은 성들과 잇다보니 성은 여러 가닥으로 갈라지기도 하고 또 중첩되기도 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 쌓은 만리장성의 길이는 만 리가 훨씬 넘는 6354㎞라고 하더니, 2009년 동북공정(東北工程)을 벌이면서 더 늘려서 한반도의 평안도까지 이어진 8851㎞라고 한다. 만리장성은 성의 길이가 1만 리가 아니라 성이 길다는 수사학적 표현인데, 중국에서는 ‘장성(長城)’이라고만 한다.(동북공정에 관하여는 2020. 1. 8. 중국 개요 참조)

성벽길

부족국가 시대에는 나무울타리(冊)로 다른 구역과 구별하는 수단으로 삼다가 성(城)이란 한문자에서 알 수 있듯이 흙(土)으로 담을 쌓게 되었다(成). 삼국사기에도 초기에는 성책(城柵)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며, 서울 송파의 풍납토성 등도 판축토성(板築土城)으로 밝혀지고 있다. 여러 시대에 걸쳐 쌓은 만리장성도 지역에 따라서 흙, 벽돌, 돌 등 여러 재질로 쌓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전쟁이 더욱 격렬해지면서 석성의 견고함은 울타리나 토성과 비교할 수 없지만 성을 쌓는데 막대한 돌, 인력, 자금이 요구되었다. 물론 장성이라 해도 성의 안팎을 완전 차단하지 않고 도로가 교차하는 계곡에는 사람과 물자가 오갈 수 있는 성문을 만들었는데, 이곳을 관(關) 또는 구(口)라고 불렀다. 쥐융관은 북방 이민족이 북경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으로서 북경 시내에서 50㎞ 떨어져 있고, 삼국시대 이래 조선시대까지 사신들이 중국을 가려면 대부분 산하이관을 통과했다.

그러나 만리장성은 쌓은 노력에 비하여 국방에는 별로 효율적이지 않아서 흉노족은 물론 선비족(隨), 몽고족(元), 만주족(淸)들이 만리장성을 넘어서 한족의 중국대륙을 지배했다. 결국 만리장성은 한족의 제왕들이 북방 이민족과 구별한다는 자만심에서 시작된 심리적 방어막에 불과했고,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 중국인들의 허황된 자만심을 보러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만리장성은 2012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성벽길 계단

만리장성 중 현재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는 곳은 대부분 북경에서 가까운 빠다링(八達嶺), 무텐위(茅纏?), 쓰마타이(司馬臺) 등 3군데뿐이다. 팔달령은 북경에서 서북쪽으로 약 70㎞ 떨어졌고, 모전욕은 북쪽으로 약 70㎞, 사마대는 북경에서 북동쪽으로 약 120㎞ 떨어져 있는데, 대체로 팔달령 코스를 많이 찾고 있다. 그것은 중국정부가 1952년부터 팔달령 일대를 관광지로 개발하여 교통이 가장 편리한 탓이 큰데, 본래 교통요지인 이곳은 사통팔달(四通八達)이란 고사성어의 유래가 된 지역이기도 하다. 북경 북부 덕승문(德勝門)에서 팔달령으로 가는 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고속버스(空調豪華快車)와 일반도로를 달리며 중간에 정차하여 승객을 태우는 일반버스가 있다. 고속버스는 약 1시간, 일반버스는 약 1시간 반이 걸린다. 또 북경 북역에서 출발하는 열차도 있으며, 약 1시간정도 걸린다고 한다.

만리장성 돈대

근래에는 팔달령 일대가 너무 붐빈다고 모전욕과 사마대 일대를 개발하고 있다. 모전욕은 1987년 북경 16경(景) 중 하나로 뽑혔고, 사마대는 만리장성 중 망루가 가장 밀집한 구간으로서 총 35개 망루중 34개가 남아 있다. 그렇지만, 사마대는 산세가 워낙 험해서 해발 295m에서 986m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무척 가파르고, 또 촘촘하게 놓인 계단이 미끄러워서 노약자는 물론 젊은이들도 많은 주의가 필요한 곳이다.

가파른 성벽길

팔달령에서는 장성까지 도보로 올라가거나 케이블카, 혹은 슬라이딩카를 타는 방법 등이 있는데, 대부분 케이블카를 이용한다. 여행객은 장성 입장료 40위안(한화 약 7000원) 이외에 케이블카 혹은 슬라이딩카 탑승료를 따로 내야 한다(케이블카와 슬라이딩카는 왕복 120위안, 한화 약 2만 1000원). 최근에는 헬기를 타고 만리장성을 구경하는 투어도 인기이지만, 10분간 헬기 투어에 1280위안(환화 약 22만 원)으로 너무 비싸다. 터키 카파도키아에서 약 50분 동안 열기구 투어 요금이 25만 원인 것과 비교할 때 더욱 그렇다.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약 5분쯤 올라가면 장성의 성루에 도착하는데, 그 사이에 바라보이는 팔달령 구경은 덤이다.

팔달령 케이블카

케이블카 장성의 승강장에 내리면 꿈틀거리는 뱀처럼 펼쳐진 만리장성의 위용이 해발 1015m 정상까지 한눈에 바라보인다. 만리장성은 기마민족인 흉노족이 말을 타고 뛰어넘지 못할 약 3m 높이로 쌓았다고 하지만, 깊은 계곡에서는 8m가 넘기도 한다.

성벽의 밑바닥은 약 7m이지만, 위로 조금씩 줄어들어서 성벽 위는 약 4~6m인데, 성벽은 양 벽 사이에 약 4~6m의 통로가 있다. 이곳을 병사들이 오가면서 적을 경계하는데, 성벽에는 병사들이 서로 마주 볼 수 있는 거리인 12m 정도마다 망루를 세우고, 120m마다 돈대(墩臺)를 만들었다. 돈대는 병사들의 숙소와 무기고가 있었다고 한다. 여행객들은 이 구간을 거닐면서 흉노적과 중국의 역대 왕조들을 상상하게 되지만, 관광객에게 개방된 구간은 고작 3.7㎞ 정도이다.

돈대와 성벽

그런데, 비좁은 성벽 길은 케이블카로 쉴 새 없이 실어 나르는 관광객들로 시장 안보다 더 붐비고 복잡하다. 험준하고 가파른 능선을 따라 급경사와 급강하가 반복되는 성벽의 계단 길은 워낙 가파르고 비좁아서 어린이나 노약자에게는 매우 힘들 뿐만 아니라 젊은이라 하더라도 구두나 하이힐은 절대 금물이고, 운동화를 신는 것이 필수적이다. 게다가 생리현상을 해결할 화장실 같은 공간도 매우 부족해서 불편한 점이 많아서 군데군데 구석마다 악취가 진동한다.

능선을 따라 쌓은 가파른 성벽

한없이 펼쳐진 만리장성을 바라보면서 한족의 웅장함보다는 헬기나 중장비도 없던 시대에 험준한 산맥을 따라 성을 쌓느라고 고생했을 수많은 백성과 포로들의 희생이 절로 느껴졌다. 남북통일이 되면 분단의 상징 휴전선 일대도 세계적인 관광지가 될 날을 생각해보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상상일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한반도 내륙 깊숙이까지 만리장성이 이어졌으며, 고구려를 자국의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하는 중국의 야심은 북한이 무너질 때 곧 자국영토로 삼으려고 하는 야욕인 동북공정을 깨뜨려야 할 것이다.
<정승열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