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의 힐링여행 2] 43. 프랑스 - 파리 베르사유궁(2) : 사치와 향락, 화려함에 가려진 이면

2020-11-17     금강일보
쁘티 트리아농

[금강일보] 대 접견실을 나오면 북쪽 전쟁의 방과 남쪽 평화의 방을 연결한 길이 73m, 폭 10m, 높이 12.3m의 넓은 통로인 ‘거울의 방’이 있다.

베르사유궁의 수많은 방 중 가장 유명한 거울의 방은 17개의 창문과 578개의 거울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인데, 아마도 전기가 발명되기 전에 넓은 홀의 조명을 위하여 거울을 많이 사용한 것 같다.

거울의 방 천장에는 루이 14세의 생애를 그린 천장화와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있고, 사방의 벽면에는 중요한 궁중 행사와 왕·왕비들의 모습을 그린 유화가 있다.

또, 나폴레옹이 유럽을 정복하면서 각국에서 약탈한 기념물도 많다. 거울의 방 중앙에 걸려 있는 나폴레옹의 황제대관식 그림은 1830년 7월 부르봉왕조를 무너뜨리고 노트르담 성당에서 즉위한 모습을 궁정화가 다비드(Jacques-Louis David)가 그렸는데, 그는 나폴레옹 실각하자 벨기에로 망명하면서 하나를 더 그려서 베르사유궁과 루브르 박물관에 각각 전시되고 있다.

베르사유궁 전경

루이 14세는 루브르궁에서 베르사유궁으로 옮긴 이후, 이곳에서 중요한 회의는 물론 왕족 결혼식, 외국 사신 접견 등 프랑스를 과시하는 장소로 이용했다.

그렇지만, 매일 밤 수백 명의 귀족과 연회를 즐긴 것으로 더 유명한데, 그 이유는 언제 반역할지 모르는 귀족들의 행동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가 컸다고 한다.


그런데, 베르사유궁을 찾는 관람객은 콩코드광장에서 단두대에서 처형된 사치와 향락의 상징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왕비의 침실(Chambre de la Reine)’에 많은 기대와 호기심을 갖고 찾아보지만, 침실은 의외로 협소하다.

바닥에는 알록달록한 카펫을 깔았지만, 벽면에 붙은 침대는 1인용이고 커튼으로 삼면을 가렸다. 벽에는 남편 루이 16세, 친정어머니인 마리 테레지아, 그리고 오빠 요셉 2세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대접견실

오랫동안 앙숙이던 프랑스와 독일 합스브르그가 화해하면서 1770년 루이 15세의 손자인 루이 왕자(1754~1793)와 프란츠 1세의 14세 된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를 혼인시켰다.

정략 결혼한 루이는 내성적이고 무뚝뚝한 데다가 외모도 볼품없었고, 미모의 마리 앙투아네트와는 언어도 통하지 않아서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


4년 후 루이 15세의 뒤를 이어 왕자가 루이 16세로 즉위했지만, 정치에 흥미가 없던 그는 선왕들처럼 권력을 행사하지 않고 유일한 취미인 시계조립에 몰두했다.

그런데, 루이 16세가 즉위 후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루이 14세가 애인 망테팡(Madame de Montespan: 1721~1764) 후작 부인을 위하여 정원의 숲속에 지었던 쁘티 트리아농 궁(Petit Trianon)을 주니, 왕비는 궁을 자기 취향에 맞게 연못을 만들고 대리석 바닥 공사를 하느라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었다.

거울의 방

왕비는 마음에 없는 결혼생활과 궁중 생활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사치에 몰두했고, 밤마다 쁘티 트리아농에서 귀족들과 호화로운 파티를 열었다.

왕비는 결혼 7년째 되던 해 루이 16세가 포경수술을 한 뒤 부부 사이가 좋아져서 세 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부부생활에 무관심한 남편과 이국 생활의 외로움에서 시작된 방종한 태도는 수많은 애인을 침실에 불러들여서 자신이 낳은 자식이 누구의 소생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왕비의 사치와 낭비벽은 프랑스 재정을 바닥나게 할 정도여서 프랑스대혁명의 원인이 되었는데, 루이 16세와 함께 오스트리아로 탈출하려다가 체포되어 1793년 39세와 38세의 나이로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유해는 몽마르트르 언덕에 있는 사크레쾨르 대성당(성심성당)에 안치되어있다.

거울의 방 천정벽화

베르사유궁의 정원은 원래 왕실의 사냥터였던 만큼 울창한 숲이 특징이다.

정원은 1682년 베르사유궁과 함께 조성된 뒤 망사르(Jules Hardouin-Mansart)가 보수하고, 르 브랑(Charles Le Brun)이 조각품과 분수대 등을 설치하는 등 20년에 걸친 궁전 공사보다 두 배인 40여 년이나 걸려서 완성되었다.

정원은 크게 왕실의 주정원과 외곽에 있는 정원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정원 관람은 뮤지엄 패스나 일일 패스가 없으면 입장권을 따로 사야 한다.

여행객은 산책하듯 정원 구경을 할 수 있지만, 넓은 정원을 모두 돌아보려면 정원 순환 버스를 타거나 자전거를 빌리는 것이 좋다. 순환 버스 요금은 5유로이다.


프랑스식 정원은 영국식 정원이 우거진 자연 상태 그대로인 것과 달리 기하학 문양으로 정원을 구획하고 정원수를 다듬고, 또 각종 조형물·분수대 등을 장식한 것이 특징이다.

나폴레옹 황제 대관식 그림

베르사유궁에는 라톤 분수(Laton’s Foundation)와 숲으로 조성된 4곳의 십자로에 사계절을 상징하는 연못 등 30여 개의 주제로 조성된 정원이 있는데, 라톤은 제우스신의 아내 레토(Leto)의 프랑스식 이름이다.

베르사유궁 정원의 중심인 라톤 분수대의 네 구석에는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등 레토의 자녀들을 조각했으며, 라톤 분수대와 여러 분수대에서는 분수를 이용한 ‘음악과 물의 쇼’가 지금도 주말마다 열린다.

분수는 저수지에서 30km나 되는 수도관으로 끌어온 물의 압력을 이용한 것이다.


녹색 융단(Tapis Vert)이라고 하는 잘 다듬어진 숲길을 따라가면, 원형인 아폴론 분수(Bassin d’Apollon)가 있다.

아폴론 분수는 왕실 주정원과 대운하를 나누는데, 대운하(La Grand Canal)는 습지였던 베르사유궁의 배수를 위한 것으로서 폭 62m, 남북 1560m의 대운하에서는 일반인도 보트를 빌려서 타고, 매점도 있는 관광지이다.

베르사유궁 정원

아폴론 분수는 태양왕 루이 14세의 개인 수영장이었으며, 별궁 그랑 트리아농(Grand Trianon) 옆에 있다.

그랑 트리아농은 1687년 망사르가 이탈리아식 기둥 회랑을 만든 핑크색 대리석의 단층 건물로서 매우 화려한데, 루이 4세는 이곳에서 망테팡 부인과 살다가 식물원 안에 쁘티 트리아농을 따로 지어주었다.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은 쁘티 트리아농은 루이 16세가 즉위 후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선물한 궁으로서 이곳은 1979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당시 왕족이나 귀족은 요즘의 전원주택이나 별장처럼 개인 저택을 갖는 것이 유행이어서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는 쁘티 트리아농 주변에 농가 12채를 짓는 등 ‘왕비의 마을’을 만들고, 이곳에서 직접 젖을 짜고 낚시를 했다.

현재는 ‘왕비의 집’, ‘물레방아 집’, ‘말보루 탑의 집’ 등 10채가 남아 있으며, 근처에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수많은 애인과 밀회하던 ‘사랑의 신전’도 있다.

쁘티 트리아농 가는 길

여담으로 베르사유궁을 일반에 공개한 후 1층 입구와 출구 옆에 화장실을 만들었지만, 원래 베르사유궁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루이 14세는 시종들이 의자형 변기를 들고 따라다녔지만, 다른 사람들은 자기 변기를 갖고 다니거나 넓은 정원에 들어가서 실례(?)를 했다. 그래서 정원에서는 항상 악취가 풍겼는데, 루이 14세는 악취를 덮으려고 당시로서는 희귀한 오렌지 나무를 심었지만 효과가 없었다.

결국 궁중 관리인은 정원 입구에 출입금지 표시판을 세웠다.

이 금지판을 예절(Etiquette)이라고 불렀으며, 이후 에티켓은 ‘궁전을 출입할 수 있는 예의범절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변했다고 한다.


또, 매일 무도회에 참석하는 귀족 여성들은 정원에서 볼일을 볼 때 드레스가 더럽혀지지 않도록 우리네 할머니들이 입던 고쟁이 같은 중의(中衣)를 입고, 드레스를 고쟁이 속에 집어넣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파리의 상류층 여인들은 드레스 속에 중의를 입는 것이 유행했다.

또, 키가 작은 루이 14세가 하이힐을 신고 다녔는데, 여성들은 정원의 숲속에 질퍽한 용변을 밟지 않도록 굽이 높은 하이힐을 신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 하이힐의 유행 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한편, 1970년대 일본 만화 ‘베르사유 장미’는 베르사유 궁전의 화려한 로코코 문화와 장미같이 화사한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별칭으로서 왕비는 당대 유행을 주도한 미의 상징이었으며, 적국 출신의 왕비로서 파리 시민의 증오와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